[주장] 기성 정치가 먼저 젊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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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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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의 정치적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성 세대가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의해 자신을 새롭게 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아직도 지방자치 선거 결과를 생산적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 이후 상처가 깊어진 민자당은 국가 리더십의 미래를 ‘세대 교체’의 기본 방향 위에서 설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민자당의 세대교체론은 자신의 패인을 성찰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하려는 전진적인 모색이라기보다는, 우선은 야당의 지도력을 교란해 보려는 정략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민자당의 세대교체론은 자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야당을 향해서 하는 소리일 터인데, 자신의 내부에서는 교체의 주체와 객체를 사실상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 구호의 공허함만을 드러낸다.

여권 내부의 권력 분해 작용에 의해 떨어져 나온 자민련은, 자신들의 고토를 득표로 탈환함으로써 지역 정치 세력으로 재집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민련의 태동을 가능케 했던 애초의 분해 작용은 오로지 패배한 권력 투쟁의 결과물이었으며, 그후 지방 선거에서 이들이 획득한 지역 입지는 아무리 민의에 따른 결과라 할지라도 그 구도 자체로서는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지방 선거 결과, 이제 정치 현실에서 진보 대 보수의 대립이나 계층과 계층의 대립,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은 사실상 퇴장했거나, 그같은 대립을 통한 시대의 진전을 이끌어 나갈 정치 집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젊은층의 저항은 기성 정치의 비생산성에 대한 분노

정당들의 정치 권력은 다만 대중의 정치정서에 기생하고 있다. 지역 감정이 되었건 탈정치 정서가 되었건, 대중의 정치 정서를 거역하고서는 정치 세력의 결집이 불가능하리라는 점에서 정치는 겨우 민주적일 뿐, 그렇게 집결된 정치력으로 다시 대중을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는 여전히 생산성이 없어 보인다. 지역 등권이건 지역 분할이건 말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지역 구도 안에 시대를 진전시킬 만한 동력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을 전국민이 공유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지방 선거 이후 정당들은 더욱 지역 구도에 밀착되어 가고 있다.

지방 선거와 총선 사이의 전환기에서, 각 정당들이 일제히 젊은 세대의 정치적 열망을 수용하기 위하여 젊은이들을 향해 보내는 포용의 손짓은 정당 나름의 절박한 위기 의식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20, 30대 청년층이 전체 유권자의 60%에 육박하는 ‘청년 유권자의 나라’에서, 이제 서서히 집결하기 시작한 청년들의 정치 의식은 기성 정치권과 매우 심대한 괴리 현상을 보이고 있다(16쪽 커버 스토리 참조).

기성 정치권의 손짓에 대한 젊은이들의 선언적 답변은 매우 거칠다. 그들은 ‘아니올시다’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동참을 거부할 뿐 아니라, 지역 구도에 기생하는 정치 권력의 존립 근거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긍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면 어김없이 손을 내미는 기성 세대의 보조자나 수혈 대상자로 전락하지 않을 것임을 엄숙히 천명한다’(‘해방 50주년 청년선언’ 중에서)는 그들의 노기 서린 외침은, 선언적 과장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세대 간의 ‘전쟁’을 선포하려는 듯이 격렬하다.

청년들이 다만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년배 집단을 정치 세력화하는 일은 아마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그러한 동년배 정치 집단은 조화로운 사회를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을 인식하는 데 그들과 기성 정치권과의 화해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방 선거 이후, 지역 구도에 의한 권력 분할이 한국 정치의 피치 못할 숙명으로 굳어져 가는 지금, 젊은이들의 이 분노에 찬 정치적 목소리는 결국 올 것이 왔구나라는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지역 구도 위에 서 있는 기성 정치권이 이 젊은이들의 정치적 욕구의 정당성을 수용해 나갈 만한 탄력성을 회복하기 어려우리라는 점에서 이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기성 정치권이 젊은 명망가 몇 명을 데려다가 외형적 구색을 맞춤으로써 이 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또 기성 정치권이 지역 분할 구도를 더욱 강고하게 운영해서 이들의 현실 정치권 진입을 좌절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세대 간의 정치적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성 세대가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의해 자신을 새롭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유(幼) 쪽에서 말할 때 아름답고, 장(長) 쪽에서 말할 때 추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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