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불역 낙호아'
  • 김상익 <시사저널> 편집장 (kim@e-sisa.co.kr)
  • 승인 200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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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삼이사의 드잡이가 아니라 '먹물'들의 치열한 논쟁은 보기에 즐겁다. 그것을 통해 한 사회의 소중한 지적 재산이 대중에게 공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요즈음 우리 사회의 지적인 논쟁거리를 제공한 도올의 존재는 '불역 낙호아'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텔레비전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해설하는 <청소년 음악회>를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왜 몇 번인가 하면, 나는 그때 영국과 미국의 록 음악에 빠져 클래식 음악이라고는 전혀 듣지 않았고, 사실은 이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인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연속극을 물리치고 한 시간 동안 음악 프로그램을 보고 앉을 만한 전투적 채널 선택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레너드 번스타인이 미국의 한 방송국과 배짱이 맞아 <청소년 음악회>를 기획했을 때 클래식 음악계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금 살아서 도올 김용옥의 <논어 이야기>를 시청했을 때 과연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에 대해서도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청소년 음악회>를 좋아했듯이 <도올의 논어 이야기>를 <모래 시계>보다도 더 즐겨 본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도올과는 일면식도 없고, 더군다나 그의 내면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가 유치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속된 말로 뻥이 심하고 제 잘난 맛에 취해 유치하게 자기 자랑을 일삼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요즘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의 발언들, 예컨대 '9급이 9단한테…'랄지, '공자가 나한테 점수 땄어'랄지 하는 말은 유치하고 생경하고 치졸하고 경솔해서 책을 잡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마저 농담쯤으로 받아들여 깔깔 웃어넘길 수도 있는 말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이 나의 엄격하지 못함에서 말미암은 불찰 탓일까?


인간적 흠결 때문에 영향력까지 과소 평가되어서는…


나로서는 가방 끈이 워낙 짧아서 도올의 학문 깊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국립 타이완 대학과 도쿄 대학과 하버드 대학을 나왔다는 그의 학력에 지레 겁먹고 주눅이 들지도 않지만, 나름으로 자기 분야에서 수십 년간 공부한 그의 열심을 폄하하지도, 의심하지도 않는다. 요컨대 원전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가 공자를 주제로'개그'를 한들 나는 솔직히 그것이 <서세원 쇼>에 단골로 등장하는 '개인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일종의 품질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 땅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 중에 '맹자=성선설, 순자=성악설'을 무턱대고 달달 외운 사람이 태반일진대, 도올의 논어 이야기가 학교 교육의 직무 유기를 '보충 수업'해 주고 있다는 고마움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괴짜가 사회에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믿기에, 과도하게 주관이 개입된 그의 해석과 주장에 대해서도 지적으로 청소년 수준인 대중에게 발상을 뒤집어 보게 만드는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 뜻에서 국민의 공유 재산인 공중파를 KBS가 1년에 무려 100시간이나 할애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긍정적인 점수를 얹어 주게 된다(오히려 그런 프로그램도 대중에게 먹힐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더 공영적인 진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일방으로 도올을 편들자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어느 평자가 꼬집었듯이 도올의 공부가'학문'에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인간 됨됨이에 대해서도 실망할 처신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의 저서 목록을 보면 웬 관심사가 그리 많은지, 도대체 해박하다고 해야 할지 '주의 산만'이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여러 권짜리 책이라고 공언해 놓고서도 첫째 권만 내놓고 마무리짓지 못한 책들이 있다. 이런저런 면에서 '학자 김용옥'을 나무랄 소지는 수두룩하다. 다만 그가 대중을 자극하는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속된 취미인지는 몰라도, 나는 논쟁 붙는 것이 보기에 즐겁다. 장삼이사의 드잡이가 아니라 '먹물'들의 치열한 말싸움이면 더욱 그렇다. 그것을 통해 한 사회의 소중한 지적 재산이 대중에게 공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요즈음 우리 사회에 지적인 논쟁거리를 제공한 도올의 존재는'불역 낙호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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