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이익치 회장 “온 국민을 ‘주식 부자’로 만들겠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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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을 4%대로 낮추려면 백만명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합니다. 어렵다고 보세요? 바이 코리아 펀드에 백조원이 모이면 해결됩니다. 만개 기업에 백억원씩 지원하면 한 기업이 백명씩 고용을 못 늘리겠습니까.”
요즘 주식 시장의 화두는 ‘바이 코리아(BUY KOREA)’이다. ‘한국을 사자’는 도발적인 이름을 붙인 주식형 펀드(수익증권)를 내놓은 이는 현대증권의 사령탑 이익치 회장. 그의 ‘3년내 100조원 펀드’라는 거대한 구상은 성공할 것인가.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서 출신으로 대북 사업에도 자금 조달책으로 깊숙이 간여한 그는 현대그룹을 움직여온 핵심 인물. ‘이익치 주가’라는 말을 만들 만큼 한국 증시의 거물로 떠오른 그를 3월17일과 19일 두 차례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주식)을 사자”라며, 그의 표현을 빌리면 ‘노래를 불렀다’.

바이 코리아 광고를 보고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상품을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금융업이 아닌) 산업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때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라는 위기를 맞았지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산업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이라는 게 뭡니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상장되어 있는 곳 아닙니까. 국부가 모인 곳입니다. 한국 증시에 세계적 기업이 즐비한데 주가가 마냥 떨어지겠습니까. 반드시 오릅니다. 저는 지난해 직원들을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보내 그 사람들에게‘바이 코리아’를 외치게 했습니다. 당시 우리를 믿고 투자했던 외국인들은 평균 130%라는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 때 외국인들에게 한국 주식을 파는 것이 애국이었듯이, 지금은 한국인들이 한국 주식 사는 게 애국입니다.

바이 코리아 펀드를 한 기업의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정부가 독려해 현대가 나섰다는 이른바 ‘총대론’입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정부 말이 나온 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옛날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의 유가 증권 투자 한도를 자기 자본의 100%로 막은 규정이 좋은 예죠. 증시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제도를 고치지 않고 있어 불만입니다. 이름만 안 붙였지 우리가 먼저 바이 코리아를 한 것은 채권 쪽입니다. 98년 초부터 공사채형 펀드를 팔아 한국을 구하자고 외쳤습니다. 한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에서 30%대 금리로 1년 이상 버틸 기업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당시 금리가 40%, 심지어 50%대로 치솟을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저는 금리가 떨어지리라고 믿고 채권형 펀드로 승부를 건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우리가 채권 붐을 일으키자 투신사와 증권사에 무려 1백50조원이 몰렸습니다. 이 돈이 어디로 갔습니까. 기업에 지원되었죠. 웬만한 기업은 다 살아났고 금리(채권 수익률)도 뚝뚝 떨어졌죠. 그것이 첫 번째 바이 코리아입니다. 두 번째 바이 코리아인 바이 코리아 펀드가 실업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책인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이 코리아 펀드가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까?

지난해 유로 아시안 비즈니스 컨설턴시(EABC)가 펴낸 〈100만 일자리 만들기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흔히 우리가 상충한다고 보는 구조 조정과 실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처지에서 눈이 번쩍 뜨였죠. 이거다. 우리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가 대량 실업 아닙니까. 8∼9%대 실업률을 4%대로 끌어내리려면 백만명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합니다. 백만명, 어렵다고 보세요? 바이 코리아 펀드에 백조원만 모이면 일거에 해결됩니다. 만개 기업에 백억원씩 지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기업이 백명씩 고용을 못 늘리겠습니까. 이 일을 이미 미국은 해냈습니다. 정확히 말해 메릴린치·골드먼 삭스·모건 스탠리 같은 미국 투자 은행들이 해냈죠.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일자리를 3천2백만개 만들어 실업률을 10%에서 4%대로 끌어내렸는데, 미국 투자자들이 투자 은행에 가서 주식을 사준 덕분입니다. 미국은 전체 금융 자산(8조 달러, 보험 제외)의 65%가 투자 은행에 가 있고 이 가운데 55%가 주식에 투자되어 있습니다.

3년내 백조원은 어려운 목표 아닙니까? 게다가 올 1년에 60조원을 끌어들일 작정이라면서요?

대한민국에는 고금리를 쫓아다니는 돈이 4백30조원 가량 있습니다. 전체 금융 자산의 절반이 넘죠. 이런 돈들은 수익성을 쫓아 순식간에 질풍 노도처럼 밀려듭니다. 기존 금융 상품에 들어 있는 돈이 바이 코리아 펀드에 옮겨오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발매한 지 13일 만에 1호 펀드에 1조원이 들어왔고, 2호 펀드에도 매일 7백억∼8백억 원씩 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 매년 새로운 유동성이 백조원 가량 생기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한국의 신용 등급이 투자 적격이 되었으니까 외국 돈도 10조원은 들어올 겁니다. 시중에 돈이 없다면 어렵겠지만, 돈이 철철 넘치지 않습니까.백조원 달성은 주식 시장이 좋아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종합주가지수가 올해 1000 포인트, 3년내 2000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신다면서요?

우선 환경이 놀랍도록 좋아졌습니다. 구조 조정에 따라 기업의 부채가 줄고 기업 경영이 투명해졌습니다. IMF가 이렇게 싸고 좋은 주식을 그득히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말 한국 주식들은 싸도 너무 쌉니다. 가령 일본전신전화(NTT)라는 한 회사 주식의 시가 총액이 1백57조원인데 우리는 상장 회사의 시가 총액을 모두 합쳐도 1백37조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가수익비율(P ratio)도 일본은 2백30배나 되는데 우리는 겨우 17배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아무리 일본만 못하다 해도 세계 10등 안에 들어가는 산업이 7개나 되는데 너무 과소 평가되어 있습니다. 제가 한국 증시를 낙관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외국 투자자라면 누구나 묻는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첫째가 국가 위험도입니다. 남북 관계가 잘될 것이냐이죠. 제가 북한에 다녀왔잖아요. 저는 이 점을 남보다 빨리 판단할 수 있어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노사 관계입니다. 제가 분규가 많았던 현대중공업에 있었을 때 대변인을 1백80일 동안 한 적이 있어 잘 아는데, 김대중 대통령만큼 노동자를 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외국인들이 과실(시세 차익)을 다 가져갔어요. 구조 조정이라는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은 우리 국민들도 과실을 맛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려면 주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제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은 주식 시장밖에 없습니다. 금리가 더 떨어질 테니까 은행에서는 기대할 게 없습니다.

은행 상품을 너무 폄하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투자 시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수익을 기대한다면 위험도 짊어지는 것이 온당합니다. 그런데 직접 투자보다 위험을 줄여 주는 것이 펀드라는 간접 투자 상품 아닙니까. 일반 투자자들은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듯 자기 입맛에 맞는 펀드를 고르면 됩니다.

‘이익치의 현대증권’은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3월 안에 펀드 수탁고가 30조원이 되는 등 정상이 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결과는 현대라는 그룹의 공신력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아직 몇 가지 질적 지표 면에서 개선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증권을 한국의 메릴린치로 만들 것입니다. 바이 코리아 펀드도 미국을 대표하는 피델리치의 마젤란 펀드처럼 한국 대표 펀드로 만들 것입니다. 최종 목표는 한 가구가 한 계좌씩 트게 하는 천만 계좌 운동을 벌여 우리 국민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좀 건방진 얘기지만 30년 동안 한국 경제를 일궈 온 우리 세대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 있습니다(무슨 일이든 잘해야 재미있다는 소신을 갖고 일에 몸을 던지는 그의 별명은 ‘잘났어’와 ‘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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