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색 살리는 '질경이 여사' 이기연
  • 宋 俊 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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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민중미술가 거쳐 10년 간 전통 색깔 재현에 앞장
천연염색연구소 이기연 소장(41)은 주위 사람들에게 ‘순악질 여사’로 통한다. 고약스럽게 군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 아니다. 무모한 일도 마다 않는 추진력과 생산에 대한 열정, 역경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악바리 근성을 일컫는 애칭이다. 그 불굴의 기질로 이소장은 망설임 없이 고되고 실속 없는 천연 염색의 길로 들어섰다.

경제성만 놓고 볼 때 천연 염색은 ‘미련퉁이 사업’이다. 염료를 추출하고 염색하는 과정이 복잡한 데다 일일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자동화 양산 체제를 갖춘 화학 염색에 비해 상품성과 가격 경쟁력이 한참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이소장이 천연 염색에 집착하는 까닭은 천연 염색이 인체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전통 문화를 되살린다는 의의도 숨어 있다.

“색깔 이름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이소장은 그동안 추출해온 천연 염색 색채들을 정리해 올해 안에 ‘전통 색채 체계표’ 1차 시안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오방색(다섯 방위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색상. 동쪽-청색, 서쪽-백색, 남쪽-적색, 북쪽-흑색, 중앙-황색)을 중심 축으로 마흔아홉 가지 기본 색을 정한 다음, 명도와 채도를 조금씩 달리하며 2배수(98색) 3배수(1백47색) 4배수(1백96색)짜리 세 가지 색채표를 만드는 것이다.
전통 색채는 단순히 시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색채의 대부분을 식물에서 짜내다 보니, 본래 식물이 지닌 성분이 염색물로 옮아간다. 천연 염색은 요리에 색을 내는 데도 쓰인다. 색깔이 맛으로, 한방 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황색 염료인 치자는 이뇨·해열·지혈·해독에 효과가 있다. 홍색 염료인 꼭두서니와 잇꽃은 각각 신경통과 골다공증에 유용하다. 청색 원료인 쪽의 항암 효과는 의학계도 인정한 바 있다. 색채표를 만들면서 방위·절기·한방·맛·음양 오행을 같이 검토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소장은 “색깔 이름을 정하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라고 말한다. 자료를 뒤지고 학자들에게 자문하고 있지만, 재현한 색채가 옛 기록에 쓰인 이름과 일치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거의 같은 색에 여러 이름이 붙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 해도 색채표의 의의가 감소하지는 않는다. 색채표에 꼽힌 색채는 모두 고스란히 재생산이 가능한 것들이다. 만에 하나 이름을 바꿔야 하더라도 색채 자체는 바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기연 소장과 천연 염색의 만남은 변증법적 인연의 소산이다. 홍익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씨는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촉망받는 민중 미술가였다. 학창 시절에는 민중의 삶이 녹아든 판화·민화·탱화에 심취했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어서는 노동자와 함께 걸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씨는 84년께 새로운 표현 방식을 발견했다. 티셔츠가 훌륭한 전시장이자 선전 매체임을 깨달은 것이다.

생활 한복 전문업체 ‘질경이’ 세우기도

민화·판화 등을 그려넣은 티셔츠는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직접 디자인한 생활 한복을 처음 선보인 것도 그 즈음이다. 내친 김에 봄·가을 두 차례씩 새 작품을 발표하면서 ‘우리 옷 입기 운동’을 벌였다. 민주화운동의 공간을 생활 문화 차원으로 옮긴 것이었다. 민족생활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생활문화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생활 한복을 본격 연구해 시판하기 시작했다. 87년 생활 한복 전문 업체인 ‘질경이’를 설립하면서 이씨는 미술가의 꿈을 접었다.
같은 해 이씨는 처음으로 천연 염색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화학 약품의 폐해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처음 몇 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같은 옛 서적은 물론 관련 석·박사 논문을 두루 참조했지만, 맥이 끊긴 전래의 천연 염색은 좀체로 재현되지 않았다.

치자·쑥·봉숭아·구기자·지초·감물 등 안해 본 염색 실험이 없다. 끓여도 보고 즙에 담가도 보고, 너무 답답해 염료를 마셔 보기도 했다. 특히 쪽 염색이 어려웠다. 쪽은 재배하기가 까다로운 데다가, 염료를 추출하는 발효법도 생소했다. 94년 한상훈씨(57)를 만나면서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징광에서 천연 염색·전통 차·옹기 등을 연구해온 한씨는 80년대 초반부터 염색 작업을 해 왔다.

우여곡절 끝에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단순히 색을 내는 목적이 아니라, 언제라도 원하는 색을 뽑을 수 있게끔 안정된 염색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천연 염색은 물 온도, 염액 젓는 방법, 잿물·백반의 양과 질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짙은 색을 내려면 몇 번이고 되풀이해 염색해야 한다. 10여 차례 되풀이 염색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쪽을 발효시킨 용액은 독해서 손이 퉁퉁 붓고 시커먼 물이 든다. 똥·오줌이 함께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도 나는데,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설 무렵 그 냄새가 향긋하게 느껴졌다”라고 이씨는 회상했다.

이씨는 올해 쪽 씨앗을 춘천 인근의 한 골짜기 4천 평 정도에 뿌렸다. 대풍이었다. 파종·모종·수확·발효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농사에 참여한 주민들 반응도 좋았다. 두 청년이 내년부터 쪽을 경작하겠다고 자원하기도 했다.

이씨는 몇 년 안에 골짜기 전체를 천연 염색 연구 단지로 조성할 예정이다. 주민과 함께 쪽·꼭두서니·치자 따위를 경작하면서 염색연구소를 운영하고, 생활문화학교 활동을 통해 일반인에게 문화 답사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농촌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농촌 문화가 천대받은 탓이다. 농촌이 문화의 근거지로, 도시민의 교육장으로 공식 인정받게 되면 농촌이 되살아나리라고 믿는다.” 이씨는 골짜기 안에 연구소를 신축하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이같은 성과에 부응하여, 지난해 9월에는 천연염색연구소와 질경이가 통상산업부로부터 ‘전통 문화 산업화 프로젝트’의 천연 염색 부문 공식 선정 업체로 지정을 받았다. 기계화 추진·기술 개발이 주요 연구 과제인데, 올해 실험작을 테스트하고 있다. 민족생활문화연구소를 살림집연구소·우리놀이연구소·우리무예연구소 등 여섯 분과로 늘리면서 확대 개편한 민족생활문화연구원(원장 연성수)이 지난해 사단법인으로 승격된 것도 이씨에게는 커다란 경사였다. 천연염색연구소는 이 연구원의 분과 가운데 하나이다. 이씨는 오는 12월5일부터 스승 한상훈씨와 함께 <천연 염색·스승과 제자展>(가칭)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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