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대표 “굶는 북한 동포 도와주면 안보에도 도움”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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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북한 동포를 아사 상태에서 구출하자는 민간 차원의 모금 운동이 국민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의 불을 지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서영훈 상임 대표는 마냥 고무될 수만은 없는 처지이다. 요원의 들불처럼 번진 북한동포돕기 운동에 놀란 일부 반공단체와 언론, 정부 일각에서 이 운동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원로 인사로서 정부와 사회 지도층 사이를 오가며 협조와 이해를 이끌어내 그 지지를 바탕으로 이 운동을 끌어가고자 하는 서영훈 대표를 만나 운동의 진로를 들어 보았다.

현재 북한 식량 사정의 심각성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유엔 기구와 북한측 발표, 우리 통일원 및 농수산부의 분석을 종합하면 북한은 현재 2백만t 정도 식량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겪는 기아의 참상은 요즘 국내외 언론이 보도하고 있듯이 대단히 끔찍한 상황입니다. 봄철이 되었으니 어른들은 새로 돋은 풀이나 나무뿌리 같은 것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영·유아들은 여전히 대책이 없습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옥수수 10만t어치(1백70억원)를 모금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무난히 달성되겠습니까?

북한 동포를 돕는 순수한 인도적 사업에 많은 국민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을 정도로 과소비를 일삼는 우리 국민들이 당장 죽어가는 북한 동포를 살려놓고 보자는 운동을 외면한다면 말이 안되지요. 다행히 정부도 민간의 대북 식량 지원을 일부 허용했고, 각종 단체에서 참여하고 있어 목표 달성은 어렵지 않으리라 봅니다.

이 운동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요?

냉전 시대가 물러가면서 우리를 갈라놓은 세력은 평화 공존의 국제 질서에서 살아가는데 우리만 아직도 냉전의 고도에 갇혀 있습니다. 남북 간에는 정치 이념뿐만 아니라 의식과 문화의 이질성이 심각합니다.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겹쳐 원한과 의구심 또한 여전합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평화 공존을 통한 민족 공동체 회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하나하나 그 기반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그 과제에는 민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현재 극에 달한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돕는 일은 그 과제를 푸는 데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동포돕기 운동이 전국민적으로 번지니까 다른 한편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남북 정치 관계가 안 풀린 현실에서 조심할 것은 조심하라는 충고는 좋습니다만 너무 지나칠 정도로 몰아붙이는 분위기에는 섭섭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섭섭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일부에서 이 운동을 두고 안보 불감증이라든지 감상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 방지와 남북 상호 간의 누적된 의구심을 씻는 데 당장 식량 지원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안보는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면 그만큼 더 튼튼해지는 것이지, 죽어가는 동포에게 식량 지원을 외면함으로써 안보가 강화된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가 안보를 해치려는 불순한 동기로 이 운동을 벌이는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어 국민의 참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까 봐 염려됩니다.

“전쟁 방지와 남북 상호 간의 누적된 의구심을 씻는 데 당장 식량 지원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식량 지원을 외면함으로써 안보가 강화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국민 모두에게 우리가 경제적인 면에서 굶는 동포를 도울 수 있다는 긍지를 갖게 하면 정부에도, 안보에도 유리합니다.”

북한 돕기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지원된 식량이 군량미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보이는데요.

물론 우리도 보내는 식량이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대남 전력 증강에 사용된다면야 그걸 환영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옥수수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구심과 불신이 없어져서 하루빨리 쌀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와야지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당장 굶어 죽는 동포들을 살려야 한다는 목적으로 운동을 벌이는데, 그걸 지나치게 공격하는 면이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사설까지 동원해 우리가 초호화판 63빌딩에서 강냉이죽을 먹는다고 비아냥거려요. 그러나 건물이라는 건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고,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하루 저녁 식사로 수십만원짜리를 먹는 현실에서 사회 지도층의 동참을 이끌어 내고자 강냉이죽 2백g을 놓고 모금을 하는 것이 그렇게 우스꽝스런 일입니까.
운동이 확산되니까 정부도 최근 민간의 가두 모금을 규제한다고 했는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정부는 현재 북한과 추진 중인 4자 회담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데 민간의 식량 지원 운동이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8개 중앙 일간지 중 보수 여론을 주도하는 신문이 많다 보니 그런 여론에 정부도 곤란하겠지요. 그러나 정부가 이 문제를 좀더 전향적으로 보아주었으면 합니다. 국민 모두에게 우리가 경제적인 면에서 굶는 동포를 도울 수 있다는 긍지를 갖게 하면, 정부에도, 나라의 안보에도 유리하고 기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민간의 식량 지원을 권장하되 어떤 점만 주의하라고 당부해 주는 선에서 그쳐야 하리라 봅니다.

한편으로는 외국의 양심 세력이 우리나라 민간 사회의 몰인정을 비판하는 분위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일이죠. 물론 남북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안정된 선진국 수준에 못미치는 점도 있고, 정부와 국민 사이에 통일 문제에 대해 합의된 컨센서스가 없다는 현실도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번 북한 지원 운동은 그런 국제적 비난도 면하고 우리가 자랑하는 5천 년 문화 민족의 긍지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쌓여온 남북 간의 이질성을 이 운동으로 하루아침에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환상은 갖지 말아야 합니다. 차근차근 접근해야지요.

현재 모금 운동이 서민들의 푼돈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기업들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낼 복안은 없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원로 인사들이 전경련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도와야 한다고 느끼고는 있으나 정부의 4자 회담 추진 문제가 걸려 있어, 당장 큰 규모의 지원은 어렵다고 합니다. 전경련의 경우 우선 옥수수 만t을 보내기로 했답니다. 북한도 4자회담에 호응하는 추세니까 정치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기업들이 나서 단숨에 백만t 보내는 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모금액을 단일 창구인 적십자사를 통해 북에 전달하는데, 교류 확대 면에서나 분배의 투명성 면에서나 직접 민간이 북한 지원 창구를 개설할 필요성은 못느끼십니까?

적십자사를 통해 보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돈을 모아 중국 단동에 들어가 양곡을 고른 뒤 사서 보내고, 명의만 적십자사로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북에 들어가 분배 상황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기울입니다만 투명성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식량이 절대 부족해 주민이 집단으로 죽어가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 보낸 걸 일일이 우리가 체크하겠다고 나가면 사실 그건 안 돕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사 관계자 일부가 평양에 있으니 거기에 맡겨야지요.

종교·사회 단체는 물론 노동·재야 단체까지 가세해 이 운동의 열기가 무척 뜨겁습니다. 참여 단체에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북한동포돕기 운동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문자 그대로의 인도주의 운동이자 민족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국내에서 모든 국민과 단체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해 나서야 합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현실은, 저도 실향민이지만 북한에 가족 친지를 두고 온 실향민 중 상당수가 참여를 망설이는 것은 물론 이 운동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극이 아닐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쌓인 원한과 피해 의식이 크다는 반증입니다. 따라서 언론이나 운동에 참여하는 조직은 이것을 바로 정치적 통일 운동이라고 인식하지 말고 진정한 동포애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 나가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접근해야 합니다. 그게 잘돼야 훗날 역사가 이 운동의 큰 뜻을 평가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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