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반대 운동 손봉호 공동 대표 “성추행 혐의자 우상화하면 안된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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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내고 즐기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소년 소녀 가장이 엄연히 존재하고, 교육을 받고 싶어도 학교가 모자라 교육을 받지 못하는 자폐아·장애자가 주변에 수두룩한 현실?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서 또 복병을 만났다. 3년 전에는 한국 정부, 이번에는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그 주인공이다. 불매운동으로 배수진을 친 시민 단체의 공세 앞에 한 기획사는 공동 주관 계획을 철회했고, 시내 주요 예매처 또한 표 팔기를 ‘포기’했다. 그렇지만 공연을 주관한 태원예능(주)측은 공대위의 집요한 반대 공작에도 불구하고 예매 사흘 만에 전체 표의 절반 가량인 6만 장이 팔렸다며 공연 성공을 확신한다.

10월11일과 13일 잠실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마이클 잭슨의 ‘히스토리’(이번 공연 명칭)는 한국 시민운동의 ‘히스토리’로 남을 것인가. 공대위를 이끌고 있는 공동 대표 6명 가운데 손봉호 교수(서울대·철학)를 만나 보았다.

이번 반대 운동으로 얻은 성과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일반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는 개최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전례를 남겼다는 점에 의의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정부가 허가한 행사라고 모두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시민운동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돼 기쁩니다.

성추행 추문과 과소비 조장 우려, 공대위가 마이클 잭슨 공연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추행 사실이 있었는지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혐의’만으로 공연을 막는 것은 지나치지 않습니까?

94년 로스앤젤레스 검찰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민사 소송 또한 당사자간 합의로 취소됐습니다. 그러나 공대위가 면밀히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사자간 합의란 피해자에게 억대 보상금을 주고 무마한 것이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검찰이 기소를 포기한 것도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뿐입니다. 만에 하나 성추행 사실이 없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실 여부를 밝히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몫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추행 혐의자가 지금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강간 발생률 세계 2, 3위라는 한국 사회의 성폭력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런 시기에 성추행 혐의자가 들어와 청소년의 우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형평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당장 문화 부문만 따지더라도 최근 화제가 됐던 한 뮤지컬의 경우 소요 비용이 37억원이었습니다(마이클 잭슨 공연 47억원). 음악회의 R석 또는 S석은 10만원을 넘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대중 문화와 고급 문화를 차별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내용은 대중 문화이면서 비용은 고급 문화인 부조리는 시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중고등학생이 14만원짜리(마이클 잭슨 공연 R석) 표를 사야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면 이미 대중 문화가 아닙니다. 한 예로 일급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섭섭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 공연은 가난한 집 아이들, 소년소녀 가장들도 모두 보고 싶어합니다. 돈이 없어 못갈 뿐이지요.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대중 문화가 아닙니다. 건전한 대중 문화란 일반 대중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판단은 문화 욕구의 특수성을 지나친 것이 아닐까요? 한 시간 공연을 보기 위해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감수할 사람도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 단체가 특정 공연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과소비 조장 우려와 성추행 혐의 두 가지가 팽팽히 얽혀 있기 때문에 이번에 문제를 삼았던 것이지, 한 가지만이었다면 함부로 문제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문화의 자정 논리가 따로 있으니까요.
문화계에서는 마이클 잭슨 공연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이클 잭슨 공연을 추진하는 쪽의 논리이기도 하지요. 솔직히 따져 봅시다. 그 사람들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지 문화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공연을 직접 보는 것과 비디오·음반을 접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요? 어쩌면 심리적인 만족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모든 일은 득실을 따져 보아야 합니다. 노래 한 곡당 4천만원을 지불해야 할 만큼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미칠 부정적인 효과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 11위권(불법 음반 포함 6∼8위)에 달하는 음반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만년 수입국에 머무르면서 표절 시비나 되풀이되는 우리 현실이 관계 종사자들의 안이한 자세에서 말미암는다는 게 문화계의 판단인 듯합니다. 이번 공연이 문화 소비자의 눈을 높이고 생산자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수출해 돈을 버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게다가 엔터테인먼트란 사람이 갖고 있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고급한 문화적 결과물들을 창조해 내지는 않습니다.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필수와 사치로 나눈다면 사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내고 즐기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소년 소녀 가장이 엄연히 존재하고, 교육을 받고 싶어도 학교가 모자라 받지 못하는 자폐아·장애자가 주변에 수두룩한 현실에서 한 곡에 4천만원짜리 공연을 꼭 봐야만 하는 것인지,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만약 공연이 또 무산되면 93년처럼 미국과 외교적 마찰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요.

정부도 시민 단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국회의장·시민 단체가 각각 다른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이 즐겨 쓰는 고전적 수법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정부가 공연 허가를 내준 데 대해 찬동은 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합니다. 문화체육부장관이 공대위 대표들을 초청해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국민이 꼼짝 못하고 따르던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미국도 참 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시민 단체, 나아가 시민 사회가 이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부와 시민 단체가 각각 체면을 세우면서 실리를 찾는 방법입니다.

최근 종교계 일각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느니 뉴에이지 신봉자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공대위에 기독교 관련 단체가 유난히 많은(16개) 데는 이런 이유도 있습니까?

공대위와 따로 공연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순복음교회 쪽은 확실히 그런 이유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공대위가 종교적인 이유를 표면에 내세운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공연이 예정대로 치러진다면 공대위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공연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정도밖에, 더 이상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결정한 원칙은 있습니다. 만약 방송사가 마이클 잭슨 공연을 선전 또는 중계한다면 그 방송사에 대해 시청 거부 운동 등 상당한 압력을 행사할 생각입니다(태원예능은 미국의 케이블 방송사인 HBO만이 공연 중계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공연이 다시 계획된다면 공대위는 또 반대운동에 나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그 문제점에 동의하는 사안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나서겠습니다.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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