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퇴임한 이용훈 전 중앙선관위원장 "판사들이여, 사회지도층 범죄를 엄벌하라"
  • (hschung@e-sisa.co.kr)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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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사회의 기본 약속인데 매사를 집단 행동으로 풀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집단이기주의에 얽매이는 풍조를 보면서 이러다간 사회가 붕괴할지 모른다고 우려해 공동 퇴임사를 썼습니다.”
평균 30여 년씩 판사 생활을 마친 대법관 6명이 사회를 향해 고언을 했다. 지난 7월 10일 대법관 공동 퇴임사를 통해 이들은 “국민의 이름으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국민 여론을 내세워 법의 권위를 짓밟는 사회 현상에 냉철한 판단으로 대응할 때도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사법부가 급변하는 사회 현상을 맞아 어느 선에 법의 잣대를 맞추어야 바른 것인지 고뇌가 연속된 세월이었다는 회고도 덧붙였다. 퇴임 대법관 6명 중 최연소자인 이용훈 전 선관위원장(58)을 만나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게 된 배경을 들어 보았다.

공동 퇴임사는 어떻게 작성하게 되었습니까?

법이 사회의 기본 약속인데 이를 지키지 않고 매사를 집단 행동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외환 위기 때는 아무 소리 않고 있다가 좀 살 만하니까 너무 집단이기주의에 얽매이는 사회 풍조를 보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내부 충돌로 사회가 붕괴하는 사태가 오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습니다. 이런 공동 인식을 가지고 퇴임사를 연장자인 이돈희 대법관이 직접 작성했습니다.

대법관들의 이번 일침이 정부 고위층도 겨냥한 것은 아닙니까?

지금은 권력과 제도가 대법원 판결을 자기 뜻대로 좌우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대법원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1972년 유신헌법이 제정되고 나서 긴급조치라는 압박 수단이 나왔을 때였습니다. 사법부의 고뇌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절 대법관은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판결 몇 건만 남기면 유명해졌습니다. 요새는 튀는 대법관이 있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제야말로 대법관이 법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집단 행동 때문에 고뇌했습니까?

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는 동안 선거법을 위반해 가며 펼친 시민운동도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시민운동은 법의 한계 내에서 하되 법이 부족하면 법개정 운동을 병행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거 기간 초기에 시민단체들이 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갈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국민이 시민단체의 선거 참여에 호응했고, 선거 개혁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 법 테두리 안에서 운동을 펴면서 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시작했다면 더욱 돋보였을 것입니다.

여론이 판사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예가 많습니까?

판사들이 주로 곤혹스러운 경우는 판결 과정보다는 판결 후에 여론의 질타를 받을 때입니다. 철학이 없는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거나 사회 지도층 인사를 지나치게 봐주었다는 식의 여론이 그렇습니다.
사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세간에 나돈 것은 사법부의 태도에서도 비롯된 것 아닙니까?

형사 재판에 대해 국민의 불신이 특히 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유전무죄라는 말은 죄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을 지칭합니다. 지금 국민의 불신은 사회 지도층 인사의 범법 행위에 대해 법원이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고 보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사회 지도층이 재판에 연루되면 일반 국민에 비해 직·간접으로 판사와 접촉할 기회가 더 많은 것도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면도 있겠으나, 더 큰 이유는 그들이 재판을 받음으로써 명예를 잃는다는 것을 참작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국회의원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의원 직을 박탈당하고 다음 선거에도 못나오게 됩니다. 여기에 실형까지 살려야 하느냐를 놓고 재판부가 주로 고민합니다. 그러나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배 법관들은 앞으로 엄중하게 판결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사회 지도층이 잘못을 저지르면 일반인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진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지도층도 존경받고, 실추한 법원의 권위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일부 변호사와 판사의 잘못된 유착 관계가 사법부를 불신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닌가요?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제가 초임이던 시절만 해도 판사가 외부에 나가 밥 한끼 얻어먹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변호사가 대부분 일제 때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어서 존경받았기에 아무 부담 없었습니다. 그분들이 법원을 감쌌습니다. 지금은 변호사와 법원의 사이가 이익 집단과 관료의 대립 관계처럼 변했습니다. 변호사와 밥 한끼 먹는 것도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법원이 상대적으로 깨끗해졌는데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후배 법관들은 그것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저는 법원이 직접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판사가 판결 로만 말한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라고 봅니다.

사회 현상과 법의 괴리 문제는 법을 개정해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우리의 법규 중 전근대적인 것이 꽤 많습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일본 법을 베끼는 사례가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법을 너무 자주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약속을 자주 바꾸면 신뢰가 깨집니다. 특별히 세법이 너무 자주 바뀌어 재판 과정에서 어렵고 혼동스러운 경험을 자주 합니다. 민법·상법 등 기본법은 만든 지 오래되어 사회 변화에 맞춰 바꿔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후임 대법관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갔는데, 이 제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동안 국민이 판사를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인사청문회 제도는 법원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도 봅니다. 그런 점에서 청문회를 거친 분들은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첫 청문회여서인지 대법관들이 앞으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재판할 것인지 묻고 답하는 면은 미흡해 보였습니다. 대법원은 국민 생활에 필요한 구체적인 법의 준칙을 제정하는 기능을 하므로 대법관에게는 나름의 철학을 물어야 합니다. 어떤 철학으로 판례를 남기느냐가 국민의 법률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법관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1981년 사법연수원에서 신임 법조인을 양성한 일이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대법원에서 12·12 사건 재판을 할 때 전두환·노태우 씨를 내란음모죄로 처벌하면서 그 전에 같은 대법원에서 광주 사태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내란죄로 규정한 판결을 그대로 둔 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양측 모두 내란죄로 유죄 판결한 상호 모순된 판결문을 그대로 두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해서 대법원이 재심을 하자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쉽습니다.

16대 총선 때 선관위원장을 지냈는데, 선거 개혁을 위해 시급히 개선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앞으로 크게 세 가지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지역주의 선거를 방지해야 합니다. 또 국민이 체감하는 선거 비용과 정당 활동 비용을 일치시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정치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만드는 장치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 기부 행위를 금지한 선거 전 6개월만이라도 정치 자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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