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지자체 간 싸움 볼모 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6 14: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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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6개월 이상 '물고문' 되풀이…“상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바위의 기록은 염원의 기록이었다. 문자가 없던 고대인들은 바위에 그림을 그렸다. 바로 울산 반구대 암각화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지기 시작해 청동기시대에 가장 활발했다. 사슴·고래·코끼리·물소 등 동물과 선사시대 사람들의 일상사를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한 반구대 암각화는 7000년 전의 숨결을 오롯이 오늘에 전하고 있다. 선사인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풍요를 기원했다.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1971년 12월25일 문명대 전 동국대 교수에 의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가 거북이 엎드린 모양과 같아 이름 붙여진 반구대 암각화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3000년 전의 고래 사냥 모습이 담겨 있다. 2004년 BBC 인터넷판은 “반구대 암각화에는 배 위에서 작살과 낚싯줄을 사용하는 모습이 보인다”면서 “이것이야말로 고래 사냥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 고래 그림을 그린 사미족이 고래잡이의 시원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엎은 것이다.

2009년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 가치를 4926억원으로 국내 문화재 중 가장 높게 부여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를 종이 삼아 쓴 최고(最古) 역사책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국보 중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가 물고문으로 심하게 훼손돼 흔적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장마 때마다 물에 잠기는 반구대 암각화 ⓒ울산시 제공

암각화 보존한다며 수백억 예산 낭비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화재청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8년간 106억원을 투입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면서 “훼손 우려가 많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전담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12일 울산시 행정사무감사에서도 반구대 암각화의 예산 낭비가 도마에 올랐다. 이미영 울산시의원은 “울산시가 2000년부터 올해까지 18건에 200억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도 아무런 대책을 못 찾고 있으니 암각화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월13일 국정감사 중이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기념촬영을 했다. 현장을 둘러보고 보존 방안을 찾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과거에도 수없이 봤던 모습이라 식상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반구대 암각화가 정치인들의 홍보용 ‘포토존’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호근 울산시의원은 “수많은 정부 인사가 반구대 암각화의 대책 마련을 공언했지만 이행되지 않았고, 울산시는 들러리만 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반구대 암각화를 다녀간 유력 정치인은 한둘이 아니다. 이낙연 의원은 당 대표 출마를 앞두고 지난 7월 울산을 찾아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의지를 거듭 밝혔다. 총리 시절에 이어 두 번째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민주당 대표 시절에, 2013년에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2010년에는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방문했다. 그때마다 반구대 암각화를 물속에서 건져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지난 7월22일 폭우가 어둠을 뚫고 몰아쳤다. 다음 날 반구대 암각화는 완전히 물에 잠겼다. 점점 태풍은 거세졌다. 장대비에 반구대 암각화는 속수무책, 잇따른 태풍과 집중호우로 계속 침수돼 있다가 92일 만인 10월23일 다시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 상류에서 4.6km 떨어져 있다. 사연댐에 물이 가득 차면 수위는 해발 60m까지 올라간다. 댐 수위가 56.7m까지 올라가면 암각화는 완전히 물에 잠긴다. 1965년 댐 건설 이후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개월 이상 '물고문'을 당하는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dp도 제5호 태풍 다나스(7월), 제13호 링링(9월), 제17호 타파(9월), 제18호 미탁(10월) 등으로 인해 침수가 반복됐다.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암석은 점토가 굳어 생성된 셰일로 물과 바람에 취약하다. 물에 잠길 때마다 광물이 녹아 구멍이 나거나 그림이 그려진 일부 암석이 떨어져 나간다. 또 물이 빠지면서 암면도 함께 부스러지고 유속에 의해 충격을 받기도 한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물에는 산소·수소·탄산 등 여러 원소들이 녹아 있어 암반의 부식과 풍화작용이 가속화되고 수축과 팽창이 반복되면서 암각화는 상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겨울철 ‘동결쐐기작용’은 암각화에 치명적이다. 암석 틈 사이의 물이 얼면서 부피가 팽창하고 압력 증가로 암석들이 쪼개진다. 손 교수는 “이암으로 구성된 반구대 암각화는 화강암보다 ‘풍화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겨울철 암석 파괴 현상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2010년 반구대 암각화의 표면 중 23.8%가 훼손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 암각화 상태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10년 동안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질전문가들은 풍화등급 5단계인 암각화 바위 면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40% 정도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위에 새겨진 300여 점의 그림 중 정확한 형체가 남아 있는 건 20~30점에 불과하다.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거듭하면서 풍화작용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반구대 암각화 ⓒ울산시 제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밀어붙이다 ‘망신’

그동안 반구대 암각화를 보전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암각화 앞에 투명 댐(카이네틱댐)을 설치해 하천과 단절시키는 방안은 실패로 돌아갔다. 생태제방을 축조하는 방안도 없던 일이 됐다. 최근에는 사연댐 물을 강제로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을 하는 사이펀(siphon·음압원리를 이용해 물을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U자형 대형 파이프)을 만들자는 울산시의 제안에 수자원공사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무산됐다. 이런저런 방법이 동원됐지만, 모두 돈만 쓰고 암각화를 물속에서 구해 내지 못했다. 

반구대 암각화의 수난은 끝날 수 있을까. 정부의 최종 구상은 인위적인 구조물 설치 없이 사연댐 수위를 낮추고 청도 운문댐의 물을 울산에 공급하는 방안이다. 그러려면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야 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댐 설계 전문업체 용역 결과 “수문 설치 과정에서 댐 붕괴 위험이 매우 크다”고 진단했다. 수자원공사가 정밀분석을 실시해 결정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수문 설치가 성공해도 문제는 또 있다. 줄어드는 사연댐 물만큼 깨끗한 운문댐 물을 먹는 울산시는 환영하지만, 물을 빼앗기는 대구·경북은 불만이다.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지난 십수 년간 국토부-환경부-문화재청-울산시의 사각관계 속에서 반구대 암각화는 ‘인질’로 잡혀 있었다. 이들 기관이 반구대 암각화를 ‘볼모’로 서로에게 유리한 샅바싸움을 펼치는 사이 반구대 암각화는 물속에 갇혀 만신창이가 됐다. 부처 간 이견 충돌로 49년 동안 반구대 암각화 보전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런 와중에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밀어붙이다 또 망신을 당했다. 신석기시대 유산을 입증할 학술적 연구가 부족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해 퇴짜를 맞은 것이다. 올해만 벌써 두 번 거절당했다. 울산시는 "다시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10년 동안 아무런 학술적 가치도 정립하지 못한 채 시민운동을 하듯 당위성만 주장하며 허송세월을 했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선사인들의 체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지경”이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보다 하루빨리 반구대 암각화를 물속에서 건져내야 한다”고 말했다. 선사인들의 역사를 품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개월은 수장(水葬)돼 있다. ‘하늘이 감춘 그림’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가 흔적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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