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TPP)과 중국(RCEP) 사이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6 10: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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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 RCEP 출범했지만…여전히 미․중 사이에서 갈피 못 잡는 한국

드디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했다. 인도는 결국 빠졌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 국가 지도자가 협정에 서명했다. 취지는 가맹국 간 관세 문턱을 낮추고 체계적인 무역·투자 시스템을 확립해 교역 활성화를 이뤄내자는 것이다.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FTA(자유무역협정)다. 참여한 15개국 인구는 22억70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30%다. 수출 총액 역시 5조2000억 달러로 전 세계 수출의 30%를 차지한다.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26조 달러로 세계 전체의 29.3%다. 앞으로 각국은 RCEP가 조기에 발효될 수 있도록 국회 비준 등 국내 절차를 추진하게 된다.

실제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다. 역내 통일원산지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과 한·아세안 FTA를 개선해 자동차와 부품, 철강 분야에서 추가 개방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국제문제연구소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10년 동안 6.5%의 성장률 제고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장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가장 큰 파이는 중국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서명식에 참석,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에게 서명서가 전달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서명식에 참석,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에게 서명서가 전달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RCEP 출범의 최대 수혜국은 한국

원래 RCEP는 2011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가 제안했다. 그러나 실제 협상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그런 만큼 RCEP 체결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 역시 중국이 주도한 협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RCEP는 사실상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세 나라가 낮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것이나 다름없다. 3국이 경제적으로 가까워지면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난다.

역시 중국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RCEP 서명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승리”라고 자축했다. 중국 매체들도 이구동성으로 RCEP 서명을 찬양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 이래 ‘중국 최대의 외교적 승리’”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협정이 체결되면 중국의 FTA 체결국가는 기존 19개국에서 26개국으로 늘어나고, 체결국가와의 FTA 무역 비중도 지금의 27%에서 35%로 커지게 된다.

RCEP가 공식 타결되면서 이제 관심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쏠린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예정된 등장 때문이다. CPTPP는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이 탈퇴하면서 일본,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칠레, 베트남 등 나머지 11개국이 결성한 무역협정이다. 비교하자면 RCEP는 중국 주도의 다자 FTA이고, TPP는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FTA라고 할 수 있다. 수준은 다르다. RCEP는 개방 수준이 낮고 노동·환경 기준이 없으며 서비스·투자 부문도 제한적이다. 대폭적인 관세 폐지와 투자 자유화를 표방하는 CPTPP와는 비교가 안 된다.

당초에 미국이 TPP를 추진했던 것은 중국 봉쇄 전략의 일환이었다. TPP는 환태평양 지역 국가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제외됐다. 그러나 2017년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애써 추진한 TPP에서 탈퇴했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면서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TPP 체결 당시 바이든은 부통령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바이든 집권 이후 미국이 다시 TPP에 복귀할지 주목되고 있다. 물론 후보 시절 바이든이 명시적으로 TPP 복귀를 공언한 적은 없다.

사실 미국의 TPP 복귀가 곧 이뤄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급격하게 재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불길을 끄는 일이 급하다. 미국의 여론도 갈라진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확대하는 무역협정은 논란거리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국이 TPP로 회귀하는 것은 시간문제고, 언젠가는 복귀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미국 내 여론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극도로 분열돼 있음에도, 중국에 대해 견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합의가 형성돼 있다. 바이든이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중국으로서는 불편한 의제가 될 수 있는 인권·환경·노동 기준을 추가한 무역협정을 추진한다면 야당의 협력까지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주도 RCEP vs 미국 주도 TPP

미국의 복귀로 TPP가 부활하면 중국 주도의 RCEP와 미국 주도의 TPP가 충돌하게 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RCEP 서명을 환영하면서 CPTPP에 가입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해석을 낳는 발언이다. 미국의 TPP 복귀는 아시아 복귀를 의미한다. 중국으로서는 TPP가 적진이다. 중국의 TPP 가입 추진은 미국의 아시아 지역 패권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게다가 지금까지 중국이 선진국과 FTA를 맺은 적이 없다는 걸 감안한다면, 개방 수준이 높은 TPP는 중국에 버겁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중국의 의도가 더욱 잘 드러난다. 중국은 미국이 TPP에 복귀해 예전처럼 중국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치기 전에 안정적인 위치를 선점해 미리 중국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협정 내용에 영향을 미쳐 아예 개방 수준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RCEP에서도 지식재산, 국유기업 보조금, 노동자 인권 등의 기준은 결국 협상을 주도한 중국의 입장이 채택됐다.

청와대가 밝힌 우리나라의 입장은 ‘CPTPP와 RCEP는 대결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로, 필요하다면 CPTPP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범생 같은 답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보완적 관계라면 굳이 한쪽만 가입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문제는 우리에게 큰 숙제다. 처음부터 우리나라는 TPP 가입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중국과의 FTA 협상이 우선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남북 갈등 완화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중 FTA는 타결됐지만, 서비스와 투자 분야 개방은 이뤄지지 않았고, 중국은 사드 배치를 이유로 FTA 협정 상대국인 한국에 통상보복을 했다. 한·중 FTA는 중국의 한한령을 막지 못했다. RCEP로도 막지 못할 것이다. 일본과 호주, 싱가포르, 베트남은 RCEP와 CPTPP에 동시에 가입해 놓고 있다. 우리도 최소한 미리 손익 계산 정도는 해 둘 필요가 있다. 사실은 미리 움직이는 게 더 낫다. 나중에는 중국이든 미국이든 입장료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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