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철새들도 다시 돌아오는 철원 양지리 마을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4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새 이동로 막지 않고 먹이도 남겨두고…양지리 주민들이 철새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

겨울 철새들이 돌아오는 계절이다. 딱 이맘때, 철원 민간인통제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양지리 마을 옆 토교저수지에서 아침에 다 같이 비상하는 수십 만 마리의 기러기 떼를 본 적이 있다. 질서정연하게 먹이활동을 떠나는 철새들의 출근 러시를 보고 있자니 인간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괜히 더 정감이 갔다. 특별히 새를 보는 것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서라도 꼭 한번 봐야할만한 장관이었다.

양지리 마을은 ‘철새마을’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겨울철새들이 많아지자 덩달아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많아졌고, 1990년대부터는 마을에서도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숙식을 제공하고, 철새탐조를 위한 시설도 따로 마련했다. 그렇게 양지리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탐조관광지가 됐다. 이 모든 것은 한국전쟁 이후 마을이 생기고 경작지와 저수지를 만들게 되면서 시작된 변화였다. 먹이와 잠자리가 풍부한 민간인통제구역은 철새들이 월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겨울철 철원의 토교저수지에서는 아침마다 한꺼번에 비상하는 쇠기러기 떼를 볼 수 있다. ⓒ김지나
겨울철 철원의 토교저수지에서는 아침마다 한꺼번에 비상하는 쇠기러기 떼를 볼 수 있다. ⓒ김지나

그러던 지난 2017년, 양지리 마을에 큰 변화가 있었다. 마을 안에 있던 양지초등학교 건물이 ‘DMZ철새평화타운(현 DMZ두루미평화타운)’이란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양지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면서 폐교가 됐었는데, 이제는 철새와 더불어 사는 철원의 삶과 자연환경을 배우는 곳이 되고 있다. 건물 내부와 외부 모두 세련된 디자인이 덧대어졌지만, 옛날 학교건물의 복도와 교실 구조가 남아 있어 이 공간의 과거를 드문드문 상기시킨다. 단층이었던 양지초등학교의 나지막한 높이 또한 여전히 고수돼 철새들의 이동길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심도 엿보였다.

이때부터 철원군 탐조관광의 출발지점이 고석정에서 이곳으로 변경됐다. 덕분에 엄청난 방문객들이 양지리를 찾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후 조류독감, 아프리카 돼지열병, 그리고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안타까운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철새’가 조류독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해 철새평화타운에서 두루미평화타운으로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이번 팬데믹 앞에서는 그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옛 양지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DMZ두루미평화타운. 그 옆으로 국제두루미센터가 들어서고 있다. ⓒ김지나
옛 양지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DMZ두루미평화타운. 그 옆으로 국제두루미센터가 들어서고 있다. ⓒ김지나

주민들도 감동시킨 두루미 부부의 사연

지난 11월 초, 오랜만에 양지리 마을을 찾았다. 국제두루미센터가 들어오게 된 DMZ두루미평화타운 주변은 공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예전부터 운동장 한 켠에 다치거나 병들어서 날지 못하는 철새들을 위한 우리가 있었는데, 조금 회복된 두루미들이 따로 지낼 수 있도록 넓은 공터를 따로 마련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전에 없던 변화였다. 작은 연못도 만들어 최대한 야생의 환경을 재현하려 한 노력이 느껴졌다. 철새마을로서 양지리의 하드웨어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이곳에는 한 쌍의 두루미가 살고 있었다. 두루미는 원래도 가족애가 강한 새로 유명하지만, 양지리 마을의 두루미 부부는 그 사연이 조금 특별하다. 상처를 입고 요양하던 두 마리 중 수컷 두루미는 지난 봄 다시 시베리아로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됐었다고 한다. 하지만 날개를 크게 다친 암컷 두루미는 끝내 함께 떠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올 겨울 수컷 두루미가 다시 양지리 마을을 찾으면서 재회하게 됐다는 것이다. 새들은 워낙 민감해서 사람 사는 곳 가까이에는 잘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짝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일부러 돌아왔다며, 마을 주민 분이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소식을 들려주셨다.

DMZ두루미평화타운 운동장에 마련된 두루미 쉼터 ⓒ김지나
DMZ두루미평화타운 운동장에 마련된 두루미 쉼터 ⓒ김지나

관광은 그저 따라오는 것일 뿐

철원 사람들은 철새와 함께 살아간다. 철새가 돌아오는 것은 겨울 한 계절이지만, 그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1년 동안 많은 수고를 마다 않는다. 철새들을 위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한 다음에도 철새들이 먹이를 구할 수 있도록 볏짚을 남겨둔다. 수컷 두루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철원 사람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동안 양지리는 진짜 ‘철새마을’이 돼가고 있었다. 관광은 그저 따라오는 결과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자연과 공생하는 삶의 지혜가 마을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온갖 재해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그것이 철새마을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우두커니 세워져 있는 가짜 두루미 조형물보다, 마을을 찾아 일부러 돌아온 두루미의 이야기가 더 감동적인 이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