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건강 이상설 확산…빨라지는 ‘포스트 아베’ 발걸음들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3 10:00
  • 호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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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총리직 사임 원인이었던 궤양성대장염 악화된 듯

“오늘, 총리직을 사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07년 9월12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06년 9월26일 총리에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게이오기주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지병인 궤양성대장염이 원인이었다. 

그로부터 13년 후. 아베 총리는 지난 8월17일 다시 게이오기주쿠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아베 총리는 1년에 두 번 정기 건강검진을 받고 있고, 특히 겨우 두 달 전인 6월13일에 이미 받은 바 있다. 6월 검진의 추가 검사라고 병원 관계자는 밝혔지만, 8월초 일본의 한 주간지는 아베 총리의 토혈을 보도했고, 15일 공식 석상에 나선 그는 부쩍 여윈 모습을 보였기에 총리 건강에 대한 일본 내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가 8월17일 일본 게이오기주쿠 병원에서 나와 관저에 도착하고 있다. ⓒREUTERS
아베 총리가 8월17일 일본 게이오기주쿠 병원에서 나와 관저에 도착하고 있다. ⓒREUTERS

“총리, 강제로라도 쉬게 해야 한다”

일본의 주간지 ‘FLASH’는 8월초 나가타초에 ‘아베 총리가 7월6일 집무실에서 피를 토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가타초는 일본 국회의사당·총리관저·국회도서관 등이 모여 있어 국정의 중심지로 불리며 정부에 관한 정보들이 모이고 유통되는 곳이다. 이 주간지는 궤양성대장염의 합병증으로 위나 십이지장 병변의 가능성과 함께 스테로이드계 약물의 장기 복용이 증상을 악화시켜 출혈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싣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오랜 기간 동안 스테로이드계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8월4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매일같이 (총리를) 만나고 있는데, 담담하게 직무에 전념하고 있다.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건강 악화설을 부인했다. 

궤양성대장염은 대장에 염증 또는 궤양이 생기는 염증성 장질환이다. 원인이 불확실한 데다 증상이 악화할 경우 대장을 적출해야 할 수도 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난병’으로 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17세 때인 중학교 졸업 즈음부터 이 병으로 고생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2007년 사임 전에는 심각한 설사 증상에 시달렸고 화장실도 하루 30회 이상 가야만 했다. 화장실 문제로 수면 부족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2012년 12월 다시 한번 총리직에 오를 때도 건강 문제를 지적받았다. 이에 신약으로 컨트롤하고 있다며 충분히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완치되기 어려운 질환으로,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언제든지 악화할 수 있는 병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2007년 당시에도 각료들의 스캔들로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출발한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 그해 12월에 사타 겐이치로 행정개혁담당상이 정치자금 문제로 사임하고, 2007년 1월에는 야나기사와 하쿠오 후생노동대신이 “여자는 아이를 낳는 기계”라는 발언을 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다.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대신은 사무소 비용 문제, 헌금 문제 등 여러 금전 의혹에 휩싸였고, 결국 2007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게다가 7월29일 참의원 선거에서는 자민당이 대패하고 말았다. 아베에겐 과중한 스트레스였음에 틀림없다. 

지금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구로카와 히로무 검사장 문제, 총리 최측근인 가와이 가쓰유키 중의원과 그의 부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의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내각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지난 2분기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분기의 실질 GDP는 이전 분기와 비교해 7.8% 줄었는데, 이를 1년간 지속되는 것으로 가정해 산출한 연율로 환산할 경우 무려 마이너스 27.8%로 나타났다. 이는 2009년 초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마이너스 17.8%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로 1955년 이후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스트레스 원인은 산재해 있다. 

아베 일본 총리가 8월19일 사흘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관저로 출근하면서 자신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 연합
아베 일본 총리가 8월19일 사흘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관저로 출근하면서 자신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 연합

이시바,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만나

아베 총리가 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기 하루 전인 8월16일, 총리 측근인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한 방송에서 “(총리가) 좀 쉬었으면 좋겠다. 며칠 동안만이라도 괜찮으니 강제적으로 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아베 총리의 건강 이상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롯된 발언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대신은 8월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 이후 총리 자택에서 약 1시간 동안 아베와 대화했다. 이 자리에서 중의원 조기 해산과 총선거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아소 부총리는 17일 밤 기자들에게 “147일 동안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일반적으로 몸 상태가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며 “총리에게 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8월19일 사흘 만에 총리관저로 복귀한 아베 총리는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검사를 받았다. 지금부터 다시 직무에 복귀해 힘을 내고 싶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총리 건강 상태에 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가 중론이다. 야당들은 건강 상태에 관해 확실하게 밝히길 요구하고 있다. 아즈미 준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9월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중 심사를 열어 아베 총리가 직접 출석해 건강 상태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베 내각 지지율 하락 등으로 조기 중의원 해산, 총선거 가능성도 이미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포스트 아베’의 면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유력한 인사 중 한 명인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전 간사장은 8월18일 저녁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해진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국민적 지지는 얻고 있지만,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자민당 의원의 지지를 확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국회 운영을 맡고 있는 모리야마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만약 아베 총리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일단 부총리인 아소 다로가 총리직을 대행하게 된다.

1차 아베 내각은 총리의 지병으로 겨우 1년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꿈꿨지만 정책을 실행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아베 내각은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8월24일이면 연속 재임한 기간을 기준으로 아베 총리는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된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이룬 것은 없다. 염원하던 헌법 개정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현안들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아베 총리 행로에 그의 건강 상태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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