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지, 공룡의 심장을 뛰게 하다…NC, ‘최고 포수’ 영입 효과 톡톡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01 12:00
  • 호수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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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양의지 앞세워 첫 정규시즌 우승 찍고, 첫 한국시리즈 정복에 나서

2018년 말 프로야구 FA(자유계약) 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두산 베어스 소속이던 양의지가 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A급 포수 기근에 시달리는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서 양의지는 어느 팀이나 탐낼 만한 대형 선수였다. 양의지는 공인된 공수 겸장의 포수다. 2018년까지 통산 타율이 3할을 넘었고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는데도 2014년부터 매해 두 자릿수 홈런을 쳤다. FA 직전 해였던 2018시즌에는 타격 2위(0.358)에 오르면서 한껏 물오른 타격감을 과시했다.

국가대표 주전 포수답게 투수 리드 또한 뛰어났다. ‘곰탈여(곰의 탈을 쓴 여우)’는 당시 김태형 두산 감독을 칭하는 별명이었으나 양의지를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양의지는 타자들과 수 싸움에 능했고 도루 저지율 또한 괄목할 만했다. 포수 출신인 김태형 감독이 양의지를 가리켜 “두산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던 이유다.

ⓒ연합뉴스

창단 후 첫 꼴찌 기록했던 NC, 양의지 영입으로 반등

양의지의 몸값은 얼추 100억원 안팎으로 점쳐졌다. 두산은 양의지를 눌러 앉히기 위해 처음에는 두 자릿수 총액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FA 시장 ‘큰손’인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가 철수하고 롯데 자이언츠 또한 몸값 부담으로 양의지 영입을 접은 시장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NC 다이노스라는 복병이 있었다.

초대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감독의 시즌 중 사퇴 등의 충격파로 팀이 최하위로 미끄러진 터라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던 NC였다. KBO리그 9번째 심장을 자처하던 NC가 리그 꼴찌로 추락한 것은 2011년 8월 팀 창단 이후 처음 있는 일. NC는 2013년 7위(당시 9개 팀)로 1군 리그 데뷔 신고식을 치른 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시즌 직후 계약한 이동욱 신임 감독 체제에서 분위기 전환이 급선무였다.

더불어 NC는 2019년 새 홈구장인 창원 NC파크 개장을 앞두고 있었다. 경남과 창원이 1200억원을 들여 만든 메이저리그식 구장이다. 프로야구 출범 팀인 롯데 팬들이 경남과 창원 지역 곳곳에 포진한 상황에서 NC는 흥행의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고 양의지는 새 야구장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최고의 스타였다.

NC는 양의지에게 4년 총액 125억원(계약금 60억원+4년 연봉 65억원)의 거액을 제시했다. NC와 뒤늦게 ‘쩐의 전쟁’을 벌이게 된 두산은 부랴부랴 액수를 키웠으나 양의지를 붙들지는 못했다. 125억원은 일본과 미국 무대를 거쳐 롯데로 돌아온 이대호(150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FA 계약액이었다. 게다가 플러스-마이너스 옵션이 전혀 없는 완전 보장 액수였다. NC가 얼마나 간절히 양의지를 원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양의지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김종문 NC 단장은 “막바지에는 두산도 얼추 비슷한 액수를 제시한 것으로 안다. 돈도 돈이지만 양의지가 또 다른 환경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협상 과정에서 그런 점을 느꼈다”고 했다.

10월13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NC 다이노스 경기에 앞서 NC 포수 양의지가 9월 MVP를 수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수 최초 30홈런 등 ‘3할-30홈런-100타점’ 고지 정복

3루수 박석민(2015년 4년 총액 96억원)에 이은 NC의 통 큰 투자는 2019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양의지는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과 주축 타자 나성범의 부상으로 인한 조기 시즌 아웃으로 약화된 NC 타선을 ‘나홀로’ 이끌었다. 1984년 이만수 이후 역대 두 번째 리그 타격왕(0.354)에 올랐고 장타율(0.574), 출루율(0.438)도 1위를 기록했다.

안방마님 역할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2018시즌 5.48(10위)이던 팀 평균자책점은 2019시즌에 4.01(5위)로 떨어졌다. 92개였던 폭투는 68개로 줄었다. 양의지의 리드 아래 구창모(23) 등 어린 투수들도 점차 경기 운영방법을 배워가면서 ‘싸우는 법’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양의지의 공수 맹활약 덕에 전년도에 밑바닥을 경험한 NC는 5위로 뛰어올랐다.

팀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2020시즌에도 양의지의 활약은 이어졌다. 양의지는 KBO리그 포수 최초로 30홈런을 쏘아올리면서 ‘3할-30홈런-100타점’ 고지를 정복했다. 득점권 타율(0.422, 리그 2위)이 보여주듯 팀이 필요할 때마다 적시타를 때려줬다. 양의지를 중심으로 나성범·알테어·강진성이 타선에서 제 역할을 해 주며 NC는 리그 최다 홈런과 최다 타점을 기록했다. 팀 OPS도 당당히 1위다.

마운드에서는 양의지의 도움 아래 구창모를 비롯해 송명기(20)·김영규(20)·최성영(23)·신민혁(21) 등이 만개했다. NC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든든해진 셈이다. 올해 팀 평균자책점은 4.60(5위). 양의지의 도루저지율은 올해 1위(0.434)다.

NC의 정규리그 우승 직후 이동욱 감독은 고마운 선수로 양의지를 꼽으면서 “제일 고생을 많이 했을 거다. 서로 믿고 의지했다”고 밝혔다. 2018년 말 양의지를 영입할 당시 “양의지는 앉아만 있어도, 그리고 라인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상대 팀에 압박을 주는 선수”라고 말한 이 감독이었다. 김종문 단장은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에 빗대 “야구는 의지 놀음”이라는 표현으로 양의지의 팀 내 존재감을 설명했다. 그만큼 그라운드 안팎에서 양의지의 역할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초고액 FA 선수 영입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겨준다. 고액 FA 영입이 실패로 돌아간 사례도 여러 차례 있었다. NC의 2020 KBO 정규리그 우승은 외부 FA 선수 영입에 대한 또 다른 모범 사례가 될 전망이다. 두산이 장원준을 86억원에 영입하면서 2015년 우승했듯이, KIA가 최형우를 100억원에 영입하면서 2017년 우승했듯이, NC도 적시에 필요한 포지션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면서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달디단 열매를 땄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구단주인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의 역할도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구단주의 야구 사랑이 과감한 투자로 이어져 해피엔딩을 맞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2015년과 2016년엔 반달곰 안방마님으로 가장 높은 곳에 섰던 양의지가 2020년 공룡 안방마님으로 NC에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안길지 궁금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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