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주 ‘버블’에 무너진 개미의 꿈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8 09:00
  • 호수 16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디톡스·코오롱생명 이어 신라젠까지
제약·바이오주 거품 논란 다시 수면 위로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11월30일 한국거래소가 신라젠에 대한 상장 적격성 실질검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나온 금융권의 반응이다. 최악의 상황은 일단 넘겼다. 상장폐지 대신 경영개선 1년을 부여하면서 개미투자자 16만 명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위기는 모면한 것이다.

하지만 경영개선 기간에는 주식 거래를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자들은 주가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은 상태다. 이 중 상당수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투자자들인데, 1년간 거래마저 할 수 없게 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성호 신라젠 행동주의 주주모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거래소의 요구는 최대주주를 바꾸라는 것인데, 거래가 정지된 기업에 과연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면서 “거래소가 현실을 외면하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신라젠 거래 재개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신라젠 거래 재개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하고 있다. ⓒ연합뉴스

1년간 거래 정지당한 신라젠 투자자 ‘멘붕’ 

문은상 전 대표를 포함한 신라젠 경영진이 보유 주식을 현금화해 적지 않은 시세차익을 거둔 후여서 냉랭한 분위기는 더하다. 그동안 문 대표 등이 현금화한 신라젠 주식만 25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임상 중단 사실이 공시되기 전 주식을 대거 팔아치운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신라젠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올해 중순 문 대표 등을 자본시장법 위반과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신라젠 사태가 이미 예고된 ‘인재’였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2006년 설립된 신라젠이 투자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은 것은 2015년부터다. 그해 4월 신라젠이 개발 중이던 간암 치료제 펙사벡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3상 시험허가를 받았다. 이듬해 12월에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고, 1년 동안 주가가 급등하면서 코스닥 시가총액 2위 업체로 발돋움했다.

2019년 8월 글로벌 임상시험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실망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거품 꺼지듯 폭락했다. 한때 15만원대에 이르던 이 회사 주가는 2년여 만에 1만원대로 주저앉았다. 2016년 상장 과정에서 리스크가 전혀 걸러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악재가 터지면 오른 속도보다 더 빨리 꺼지는 게 제약·바이오주의 특징”이라며 “신라젠의 경우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상장을 승인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라젠은 2016년 기술상장특례를 통해 코스닥에 입성했다. 당시 매출 18억원에 영업손실 238억원으로,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신약인 펙사벡의 3상 임상시험 통과 기대감으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적자 상태였던 만큼 공모가 역시 2020년 2322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해서 잡았다. 벡사벡의 임상 3상이 실패할 수 있다는 가정은 없었던 것이다. 그 피해가 결국 개미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사실은 제2, 제3의 신라젠 사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속에서도 국내 증시는 최근 사상 최대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3월 1457.64까지 추락했던 코스피지수는 12월2일 현재 2675.90으로 장을 마쳤다. 주요 증권사들은 내년 코스피가 30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같은 기간 400선 붕괴를 걱정했던 코스닥은 899.34로 두 배 이상 올랐다.

국내 증시 상승을 주도한 업종이 바로 제약·바이오주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5곳 중 2곳(우선주 제외)이 바이오 업체다. 코스닥은 더하다.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 모두가 제약 및 바이오주다. 그만큼 바이오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K바이오가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 제약·바이오주의 몸값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바이오=투자대박’이라는 공식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들 종목 중 상당수의 실적이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2월2일 기준으로 시가총액 5조233억원으로 코스닥 3위 업체인 에이치엘비의 경우 지난해 384억원의 매출과 48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시가총액 4조7404억원으로 코스닥 5위 업체인 알테오젠 역시 지난해 292억원의 매출과 23억원의 영업손실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코스닥 7위(시가총액 3조1986억원) 업체인 제넥신의 경우 지난해 113억원의 매출과 44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 감소했지만, 최근 1년간 주가가 151.6%나 상승하면서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코스피도 마찬가지다. 뇌전증(간질) 치료제를 주력 상품으로 삼은 SK바이오팜은 지난 7월 코스피에 상장하며 대박을 터트렸다. 공모가는 4만9000원이었지만, 4일 만에 주가가 27만원대에 육박하면서 쟁쟁한 기업인 포스코와 KB금융, 기아차 등을 제치고 코스피 16위에 랭크됐다. 최근 들어 조정을 보이고 있지만 실적(매출 1239억원, 영업손실 793억원)에 비해서는 기대치가 과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 “해외 기업 비해 프리미엄 과다” 

실제로 코스닥 시총 7위였던 메디톡스는 지난 2017년 중국과 미국 등에서 보툴리눔(보톡스) 임상 3상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주가가 60만원대를 찍었다. 하지만 최근 원액 및 시험성적서 조작 사건마저 불거져 9만원대까지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한때 코스닥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코미팜과 헬릭스미스 역시 신약 임상이 좌초되는 등 여러 악재로 인해 주가가 오른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하락했다.

코스피에 상장된 한미약품의 경우 지난 2015년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등 글로벌 계약사들과 잇달아 수출계약을 맺으면서 주가가 7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체결했던 계약들이 이후 계속 파기되면서 주가가 30만원대로 반 토막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한미약품은 일부 투자자들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김학주 한동대 교수(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는 최근 보고서에서 “아직 한국의 바이오 업체들은 역량이 부족한 만큼 신약 파이프라인이 단순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럼에도 해외 기업에 비해 과도한 프리미엄으로 거래되는 사실을 투자자들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