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4차 한류붐’의 기폭제 된 《사랑의 불시착》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7 12: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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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소재 ‘북한’으로 일본에서 인기몰이
日 드라마와 다른 한국 여성 활약에 매력 느끼기도

넷플릭스 일본 법인은 지난 12월14일, 2020년 ‘TOP 10’에 가장 많이 진입한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 드라마가 1위를 차지했는데, 바로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2위도 한국 드라마로 《이태원 클라쓰》가 차지했다. 이 외에 《사이코지만 괜찮아》(6위), 《청춘기록》(8위), 《김비서가 왜 그럴까》(9위)도 순위에 들었다. TOP 10 절반을 한국 드라마가 차지한 것이다. 순위에 진입한 다른 드라마들의 인기는 이 중 제일 먼저 공개된 《사랑의 불시착》이 견인했다. 이런 인기를 반영해서인지 ‘사랑의 불시착’은 올해의 유행어 대상에 뽑히기도 했다.

매년 그해의 세태를 반영한 유행어를 선정하는 유행어 대상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3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방지를 위해 밀폐·밀집·밀접을 피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일컫는 ‘3밀’은 올해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말이다. 지난 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사랑의 불시착》의 초반 인기도 코로나19 유행으로 재택근무, 외출 자제를 요구한 긴급사태 선언 기간에 형성됐다. 이른바 ‘집콕’ 생활에 즐거움을 선사한 것이다.

ⓒtvN 제공

세대와 연령 관계없이 인기 끌어

일본에서는 2020년 일어난 한국 대중문화 유행을 제4차 한류붐으로 부르기도 한다. 제1차 한류붐은 ‘욘사마’ ‘지우히메’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2003년 《겨울연가》가 그 중심에 있다. 2008~10년의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의 인기 열풍이 제2차 한류붐, 2017년 이후의 트와이스·방탄소년단(BTS)의 인기가 제3차 한류붐으로 일컬어진다. 제4차 한류붐은 한국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 《기생충》, 소설 《아몬드》와 《82년생 김지영》 등 한국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일본 서점 대상 번역소설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82년생 김지영》은 약 20만 부가 팔렸다. 제4차 한류붐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사랑의 불시착》이다. 2019년 아베 정권 때부터 현재까지 일본 외무상을 맡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도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를 챙겨 봤다고 했을 정도다.

제1차 한류붐은 중년 여성이 이끌었다.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은 세대와 연령에 관계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도쿄에 거주하는 20대 대학원생 A씨는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랑의 불시착》은 재미있게 봤다. 같이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드라마를 보고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문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랑의 불시착》에 관한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사랑의 불시착》이 인기를 끌고 한국 드라마 시청률이 급상승하자 그 인기 요인을 분석하는 기사를 다투어 실었다. 북한 장교와 남한의 재벌 상속녀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이면서도 북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성 역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사랑의 불시착》은 주인공 윤세리(손예진 분)가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따라서 많은 부분에서 북한을 배경으로 북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이 흥미로웠다는 평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평양의 현대적인 백화점과 장마당의 묘사는 사실적이고 신선했다. 북한의 보통사람들을 그려낸 드라마는 일본 시청자들에게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 ‘인정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고, 부정적인 북한 인식에 대한 변화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등 한국 드라마 붐을 다룬 6월16일 아사히신문 지면

다른 한국 드라마 인기로도 이어져

프랑스 현대사상을 전공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田樹)는 지난 7월 아사히신문에서 《사랑의 불시착》의 북한 묘사를 ‘타자 이해의 표본’이라고도 평했다. 주인공 주변 북한 인물들의 ‘매력’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하며 인물 묘사 방식에 주목했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북한 군인과 주민들의 언동이나 행동은 처음에는 사회주의 독재국가, 교조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함께 표현된다. 어딘가 귀여운 모습에 이끌리고 어쩌면 좋은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시청자들은 드라마 시청 전에, 그리고 드라마 초반에 가졌던 공포감과 혐오감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처음부터 북한 사람들을 ‘좋은 사람’으로 묘사했다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을 테지만 그동안의 ‘전형’으로 시작해 시간을 들여 매력을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타자’를 이해하는 데는 반드시 공감과 가치관의 일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대학원생 A씨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남한과 북한으로 나뉜 휴전선, 남녀 주인공을 이별하게 하는 분단이 현실 세계의 인간을 가로막는 가장 높은 벽을 상징하는 것 같다며 “미국의 트럼프 정부나 유럽 극우 정당의 약진, 인터넷 우익 등이 상징하듯 남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문화가 만연하는 오늘날 추세에서, 분단이 진행되는 현실 세계 속에서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원래는 만날 수 없는 인간이 만나 마음이 통하게 되는 스토리가 현재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이라 인기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남녀 성 역할 표현도 인기의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한자와 나오키》는 그 후속편이 올해 방영되었는데, 이 드라마 속의 성 역할과 종종 비교된다. 실력으로 재벌 후계자의 지위를 쟁취한 《사랑의 불시착》 속 여자 주인공은 《한자와 나오키》의 여성들과 비교된다. 항상 보좌역이고, 일에 지친 남편을 위로하는 역할에 그치는 일본 드라마의 여성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 내 인기와도 겹쳐지는 부분이다. 여성에게 헌신적이고 자상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배하려 하지 않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남자 주인공도 인기의 요인이다.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의 주된 요소인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재벌의 등장을 유지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전개, 신선한 소재를 강점으로 인기를 얻은 《사랑의 불시착》. 이는 다른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도 일본 넷플릭스 일일 TOP 10에는 《사랑의 불시착》을 비롯해 《스타트업》과 《스위트홈》이 포함돼 있다. 가나가와현에 거주하는 60대 주부 B씨는 새해 연휴에 남동생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B씨는 원래부터 한국 드라마 팬이었지만 동생은 《사랑의 불시착》을 계기로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여러 작품을 섭렵 중이다.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공통의 대화 주제가 없었던 남매에게 한국 드라마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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