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코트가 말해 주는 ‘김정은의 남자’ 조용원의 위상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7 08:00
  • 호수 16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의 남자’로 급부상
권력 핵심인 조직지도부서 ‘2인자’ 굳혀

드레스코드는 김정은 시대의 권력 상징 중 하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자신뿐 아니라 이른바 ‘백두혈통’으로 불리는 김씨 일가의 절대 권위를 옷차림새나 스타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할아버지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인 김일성 주석의 패션이나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도 카리스마를 차용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방편일 수 있다.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른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 여동생 김여정의 패션 스타일과 말 장식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월14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은 8차 노동당 대회 개최를 통해 새로운 집권 비전을 드러낸 김정은 체제 파워엘리트의 면면을 한눈에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조용원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그가 입고 나타난 가죽 롱코트는 그동안 김정은 총비서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였다. 다른 노동당 간부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당연히 김정은의 지시나 승인 없이는 조용원이 이런 옷차림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김정은의 곁을 수행하는 측근 참모 중 하나로 여겨져온 조용원이 권력 핵심에 자리했음을 가죽코트는 말하고 있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1월18일 당대회에서 조용원 당비서(왼쪽) 쪽으로 몸을 틀고 무언가 말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1월18일 당대회에서 조용원 당비서(왼쪽) 쪽으로 몸을 틀고 무언가 말하고 있다.ⓒ연합뉴스

파격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한 약진

조용원의 약진은 파격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8차 당대회 이전 그의 직책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다. 당내 핵심 부서인 데다 조직지도부의 실무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제1부부장은 실세 중 실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사실상 조직지도부를 직할 체제로 운영하고 있고, 여동생 김여정도 이곳의 제1부부장을 맡고 있다. 제아무리 실세 관료라 해도 운신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용원은 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에 머물러왔다.

그런데 1월10일 노동당 8차 대회 제6일차 회의에서 조용원은 노동당의 최고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전격 발탁됐다. 후보위원이 정위원도 거치지 않고 상무위원이 된 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김정일 총비서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덕훈 총리와 조용원 등 5인으로 구성된다. 정치국 위원은 상무위원을 포함해 19명, 후보위원은 11명이다. 상무위원회는 북한 권력을 움직이는 최고의 협의체라고 볼 수 있다. 상무위원 임명과 함께 조직담당 비서를 맡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까지 담당하게 돼 명실상부한 김정은 권력의 최고 실세로 떠올랐다.

1957년생으로 알려진 조용원은 출신 성분과 관련해 특별한 이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나 수재들이 진학한다는 김일성대 물리학부에서 공부했다고만 전해진다. 그런데 이공계 출신인 그가 조직지도부에서 일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와 관련해 당시 북한 내 사정을 알고 있는 한 탈북 인사는 “조용원이 대학을 졸업하던 당시 김정일 지시로 머리 좋고 치밀한 사고와 논리를 갖춘 이공계 출신들을 당 조직에 적극적으로 배치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조용원을 비롯한 김일성대 이공계 수재들이 조직지도부를 비롯한 당 핵심 부서에 진출하게 된 사정을 설명했다.

 

‘오버하지 않는’ 처세와 부드러운 카리스마

대학 졸업 후 지방 노동당에서 조직사업을 줄곧 담당하며 잔뼈가 굵은 조용원은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지도원으로 발탁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두뇌 회전이 빠른 데다 기획력이 좋아 당 조직 관리뿐 아니라 검열 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성과를 거두면서 부부장 자리까지 올랐다. 김정은 정권의 등장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현지지도로 불리는 최고지도자의 군부대나 공장·협동농장 등의 방문에는 조직지도부의 부부장급 인사가 반드시 수행하도록 돼 있는데 조용원이 ‘시찰 수행 담당’으로 낙점받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집권한 직후인 2012년 4월 조용원에게 김일성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일찌감치 두터운 신임을 보였다.

조용원의 가장 큰 장점은 이른바 ‘오버하지 않는’ 처세와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최측근으로 수행하면서도 그는 늘 김정은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다른 간부들이 밀착해 뭔가 보고하고 말을 섞으려 애쓸 때 조용원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빙긋이 웃으며 지켜본다. 노동신문에 등장하는 김정은의 현지지도 사진을 보면 조용원이 늘 앵글의 구석진 곳에 있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꼼꼼히 김정은의 언급 내용을 메모하고, 밀착 보고 시에는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는 등의 모습에서 다른 간부들과 차별화된 ‘수령에게만 충실히 하는 충성스러운 간부’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이는 조용원이 10년 가까운 김정은 집권 기간에 단 한 번의 부침 없이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에서 자리를 유지한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조용원이 급부상한 8차 노동당 대회는 김정은이 당 총비서 자리에 오르며 차기 당대회까지 향후 5년 동안의 통치 노선이나 비전을 밝힌 자리다. 적어도 이 기간에 조용원은 승승장구하며 북한 권력의 핵심 중 하나로 기반을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조용원보다 한발 앞서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한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경우 핵·미사일 등 담당 분야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빨치산 2세로 탄탄한 기반을 가진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경우는 권력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권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과거 견제를 받아 혁명화 책벌을 받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절제력을 보이는 것이란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김정은 권력에서 ‘2인자’란 지위로 인식된다는 건 곧 몰락이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게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처형에서 확인됐다. 김정은 체제 들어 많은 권력 핵심 인사가 명멸했다. 조용원도 예외일 수는 없다. 김정은의 애정이 식거나 신뢰를 잃게 된다면 하루아침에 몰락할 공산도 있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고 부드러운 스타일로 보좌하는 조용원의 모습은 그가 ‘조용한 김정은의 남자’로 꽤 오랫동안 머무를 가능성을 높여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