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프랜차이즈 스타들,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을까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7 14:00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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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시기마다 구단과 갈등 되풀이

이대호가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2년 26억원)을 마쳤다. 롯데 잔류에 안도하는 팬들도 있고, 2년 보장에 자못 의아한 팬들도 있다. 2017 시즌을 앞두고 미국에서 돌아온 이대호가 역대 최고액인 4년 150억원에 계약했으나 지난해까지 활약이 미미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대호 계약은 구단과 선수의 눈높이가 달라 계약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전망됐으나 그룹 차원에서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대호처럼 베테랑 프랜차이즈 스타의 은퇴 시기가 닥치면 늘 잡음이 생긴다. 은퇴 시기를 놓고 구단과 선수는 갈등을 빚곤 한다. 구단은 팬들의 눈치까지 볼 수밖에 없다. 나름 프랜차이즈 스타의 대승적 결단을 바라지만, 아쉽게도 그런 스타는 국내에 거의 없었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연합뉴스

양준혁도, 이종범도 아름다운 끝은 없었다

한국 야구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양준혁(전 삼성)이나 이종범(전 KIA) 은퇴 때도 구단과 심한 마찰이 있었다. 양준혁·이종범 모두 현역 연장을 원했으나 구단의 생각은 달랐다. 구단은 감독을 통해 1군 경기 출전 시간을 줄여가며 선수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했고, 종국에는 선수들이 결단을 내리는 식이 됐다.

양준혁은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다. 이종범은 스프링캠프 동안 몸을 열심히 만들었는데도 개막 직전 그에게 들린 소식은 1군 엔트리 제외였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은퇴뿐이었다. 양준혁·이종범 모두 등 떠밀린 은퇴였던 셈. 공교롭게도 그들이 은퇴할 당시 팀 사령탑은 선동열로 같았다.

LG 트윈스 레전드인 이병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이병규는 2016년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된 뒤 2군리그에서만 뛰다가 시즌 최종전 단 1경기만 뛰었다. 2군리그 성적(타율 0.401)이 좋았는데도 양상문 당시 LG 감독은 그를 1군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병규는 비시즌에 은퇴를 선언했다.

김태균은 그나마 팀을 위해 이른 결단을 택했다. 2019년 뒤 그는 FA 자격을 갖췄으나 성적이 내리막을 탔던 터라 한화 이글스는 그와의 장기계약을 꺼렸다. 결국 10억원에 연봉 도장을 찍고 차후 다년계약을 노렸지만, 그에게 ‘다음 시즌’은 없었다. 김태균은 성적 반등이 요원하자 “팀에 부담을 주기 싫다”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마지막 은퇴 경기도 거부했다. “후배들의 기회를 뺏지 않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대호는 김태균의 프로 동기다. 그래서 관심이 더 쏠렸다. 올해 이대호의 나이 마흔. 은퇴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이대호는 “2년 내 우승”을 언급했으나 올 시즌 성적이 나지 않는다면 그의 거취는 시즌 말 또다시 입길에 오를 것이다. 그때 이대호의 선택은 계약대로 “1년 더”일까, 아니면 떠밀린 은퇴의 길일까.

프랜차이즈 스타가 소속팀을 위해 결단을 보여준 사례는 외국에 더러 있었다. 치퍼 존스(미국)와 구로다 히로키(일본)가 그 예다. 존스는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데뷔해 은퇴까지 한 ‘원클럽맨’이다. 2000년 8월 시즌 중에 팀과 6년 9000달러 계약을 한 존스는 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면서 2004년에는 타율이 0.248까지 떨어졌다.

 2004 시즌이 끝난 뒤 애틀랜타는 트레이드로 영입한 투수 팀 허드슨에게 목돈을 쥐여줘야만 했다. 허드슨이 장기계약을 해 주지 않으면 1년 뒤 팀을 떠나겠다며 구단을 압박한 것. 하지만 애틀랜타는 재원이 마땅찮았다. 이때 존스가 나섰다. 자신의 연봉을 삭감해 팀 필요 전력인 허드슨을 붙잡으라고 한 것. 존스의 양보 속에 애틀랜타는 허드슨과 4년 4700만 달러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존스는 약속한 대로 3년간 총 1500만 달러의 연봉을 포기했다. 거액의 계약 뒤 부진한 성적에 따른 미안함도 섞인 결단이었다.

미국 애틀랜타에 존스가 있었다면 일본 히로시마 도요카프에는 구로다가 있었다. 구로다는 1997년 히로시마에서 프로 데뷔를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7시즌(2008~14년) 동안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다. 그는 2014 시즌 뒤 일본리그로 돌아왔다. 다저스 등에서 2000만 달러(약 220억원) 안팎의 연봉을 제시했지만 거부했다. 그가 히로시마에서 보장받은 연봉은 4억 엔(약 40억원). 미국 구단 제시액의 5분의 1에 불과했으나 구로다는 선수생활 마지막을 히로시마에서 보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 그의 복귀와 더불어 히로시마 연간 회원권은 전석 매진됐다.

히로시마는 2016년 구로다의 도움 속에 25년 만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맛봤다. 그리고 구로다는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친정팀에 보은하기 위해 거액을 마다하고 돌아온 베테랑 투수, 그리고 우승 뒤 현역 마감. 만화 같은 이야기 아닌가.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꽤 이름 있는 선수들이 은퇴하는 시즌에 ‘은퇴 투어’라는 행사가 마련된다. ‘은퇴 투어’라고 하지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은퇴를 예고한 선수가 원정 경기를 치를 때 그날이 해당 구장에서 치르는 마지막 현역 경기라면 상대 팀이 이를 축하해 주고 의미 있는 선물 등을 건네는 것이다.

이승엽이 2017년 10월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넥센과 삼성의 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서 동료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국내에서 ‘은퇴 투어’ 한 선수는 이승엽이 유일

국내 리그에서 ‘은퇴 투어’를 한 선수는 이승엽(2017년)뿐이다. 이승엽이 시즌 전 은퇴를 언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양준혁이나 이종범, 이병규 등은 은퇴 투어를 계획할 수조차 없었다. 자신이 원치 않은 은퇴였기 때문이다.

물론 김재현(SK 와이번스) 같은 선수도 있기는 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아쉬워했던 그는 2010 시즌이 시작되기 전 “우승하고 은퇴하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항상 등 떠밀려 은퇴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박수받을 때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2010년 팀이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왕좌를 탈환하는 데 힘을 보탰고, 우승 직후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미련은 늘 있게 마련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 선수는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선택이 곧 구단의 짐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구단을 위한 양보도 필요하다. 그게 베테랑의 명예를 완성한다. 국내 리그에서도 치퍼 존스, 구로다 같은 선수를 보고 싶다면 욕심일까. 마지막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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