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열풍] ‘경력직’ 받는 오디션…프로그램이 지켜야 할 것은 ‘진정성’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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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요소는 ‘절실함’과 ‘스토리’
변주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과제

아무런 기반이 없지만 재능만 있다면 스타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식이었다. 2009년 《슈퍼스타K》로 시작된 이 믿음은 서인국과 허각이라는 무명 가수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놨고, 《K팝스타》의 제이미와 이하이를 대중으로부터 조명받게 만들어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발라드, 록, 댄스,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입고 1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오면서 이 공식은 변주됐다. 기성 가수들도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면서다. 그 중심에는 2016년 엠넷의 《프로듀스101》와 지상파의 《K팝스타6》가 있었다. 아이돌 가수로 데뷔했거나 연습생 신분인 참가자들로 구성된 《프로듀스101》은 이미 트레이닝을 받은 참가자들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했다. 《K팝스타》는 마지막 시즌의 참가 자격을 연습생과 기성 가수까지 파격적으로 확대해 화제를 모았다. 이제 연습생 뿐 아니라 기성 스타들이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2016년  《K팝스타6》는 오디션 참가 자격을 기성 가수까지 확대했다. ⓒSBS 홈페이지 캡쳐
2016년 《K팝스타6》는 오디션 참가 자격을 기성 가수까지 확대했다. ⓒSBS 홈페이지 캡쳐

기성 가수들이 오디션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이유는 뭘까. 《K팝스타6》의 양현석 심사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너무 깊은 산 속에 묻혀있는 보석을 찾겠다고 고생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좋은 재능에도 기획 때문에 잘 안된 친구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땅을 파서 보석을 찾기보다 이미 나와 있는 친구들이 더 빛나게 잘 닦아주는 게 이번 시즌의 목표다.” 기획사에 소속돼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수의 다양성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수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오른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실력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더욱 부각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화제성이다. 실력이 보장된,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한다는 사실은 시청률을 담보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오디션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들은 기성 가수들을 출연시켰다. 일부 프로그램은 애초 연예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JTBC 《힙합의 민족》이나 MBC 《복면가왕》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실력자들을 발굴하겠다는 취지가 오디션 본연의 취지이기에, 기성 가수들의 오디션 진입이 그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TV조선의 《미스트롯2》은 15년 이상 연예계 유경험자로 구성된 ‘왕년부’, 현역 가수로 구성된 ‘현역부’를 참가자 라인업에 포함시켰다. 씨야 출신의 김연지, 스페이스A 출신의 김현정 등 이미 가창력을 인정받고 히트곡까지 보유한 가수들이 다수 참가했다. 실력자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신선함은 없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선배 가수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자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었다.

익숙한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범위를 한정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MBN 《보이스트롯》은 ‘명절 연예인 장기자랑’ 같다는 혹평을 받은 바 있다. 신예 스타 탄생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신선함보다 진부함을 느꼈다. 프로그램 중간에 무명 신인들이 탈락하면서 기존 유명인들이 상위권을 차지하자 공분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마치 기존의 유명한 스타들이 무명 신인들의 간절한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참가자의 실력을 중요하게 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참가자가 가지고 있는 서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빛을 보지 못했던, 무대가 절실했던 무명 가수의 등장에 대중들이 환호하고 응원을 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미 성공을 거둔 스타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기고 싶은 무대’이지 ‘절박한 무대’가 아니다. 무명 가수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절실함은 없었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을 꾀했지만 오히려 오디션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를 찾기 어려워진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싱어게인》은 기성가수들의 절실함을 무대에 담아내면서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jtbc제공
《싱어게인》은 기성가수들의 절실함을 무대에 담아내면서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jtbc제공

《싱어게인》이 대중들에게 통한 이유 

그럼에도 기존 가수들을 유입시켜 성공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JTBC의 《싱어게인》이다. 《싱어게인》은 왜 ‘경력직’들을 대거 영입하고도 호평을 받았을까. 영리했다. 아예 ‘리부팅’을 내걸었다. 한 장이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는 가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한 덕에, 날 것 그대로의 원석을 발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여기에 참가자들의 이름을 지우면서 ‘재조명’에 초점을 맞춘 점도 유효했다. 대신 스토리가 있고, 무대가 절실한 기성 가수들을 참가자로 받았다. 포크 듀오인 자전거를 탄 풍경의 김형섭,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 가수 유미 등이 ‘번호’를 달고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을 주니어 심사위원단이 평가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물론 존재했지만, 진정성 있는 평가와 감상으로 비판은 잠재워졌다. 심사위원인 선미는 “너무도 무겁고 어려운 자리인걸 알고 있다”며 “참가자 한 분 한 분이 진심을 다해 준비해준 무대를 나 또한 진심을 다해 눈에 담고 귀에 담아서 매 순간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을 공유하고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노래는 유명하지만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가수, 히트곡은 있지만 더 이상 노래를 받을 수 없었던 가수의 사연도 시청자들에게 통했다.

더 이상 ‘무명’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가 아니다.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가수들의 ‘절실함’과 ‘실력’, 그들이 성장하는 ‘서사’다. 이 요소들이 존재하는 지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흥망을 가른다. 엠넷의 《포커스》에 등장한 울랄라세션의 박광선이 ‘음악의 동기’를 찾아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응원을 보내고, 무대에 서거나 곡을 받을 기회가 없던 가수 유미의 《싱어게인》 결승 진출을 시청자들이 염원했던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다양한 포맷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변주하고 있지만,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아닌 ‘진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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