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열풍] 왜 오디션에 열광하고 왜 오디션을 비난하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9 10: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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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에 빠진 대한민국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르는 3가지 시크릿 코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기쁨과 눈물이 교차한다. 출연 전까지 ‘무명(無名)’이었던 가수가 단계를 올리며 인지도를 높이고, 급기야 우승까지 거머쥐며 유명해진다. 성장 드라마를 지켜보는 재미일까, 경쟁이 주는 묘미일까. 2020년부터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전 호평과 함께 막을 내린 JTBC 《싱어게인》, 시청률 30%를 쥐고 달려 나가는 TV조선의 《미스트롯2》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력에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빠져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발라드는 물론 힙합, 록, 댄스, 트로트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우후죽순 등장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방송가의 성공 방정식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양새다. 왜 한국에서 오디션은 통할까.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한국의 시청자들을 ‘안방 1열’에 앉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기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을 견인하는 코드들이 있다. 이 코드가 어긋나면 시청자들은 돌아선다.

연출과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참가자들의 다양한 장르를 존중한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사진)은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왼쪽부터 MC 이승기, 유희열 심사위원, 이승윤, 정홍일, 이무진, 이정권, 요아리, 이소정ⓒJTBC 제공

1. 공정성 : 경쟁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한국 사회

우리는 ‘시험’에 익숙하다. 수능이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믿음, 공개 채용을 통해 선발되는 과정이 가장 투명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일명 ‘금수저’와 ‘부모 찬스’가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시험과 경쟁만큼 공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출신, 배경, 학력, 외모와 관계없이 실력과 미션 결과로만 평가한다는 것이 오디션의 공식적인 룰이다. 이 룰에 따라 공정하게 스타가 배출될 수 있다는 믿음은 시청자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게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된다. 단순히 음악을 듣고 무대를 보는 것을 넘어, 원석이 발굴되고 재능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하나 더. ‘투표’다. 대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청자 참여를 유도한다. 스타가 발굴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내 ‘최애’에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투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참가자에 대한 관심은 방청, 팬카페 가입, 굿즈 제작 등 팬덤을 형성하는 활동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기능은 분명히 있다. 무명의 가수 지망생을 스타로 발돋움시키는 착한 역할을 한다. 음악과 방송의 장르도 다양하게 만든다.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은 ‘스타 사관학교’라고까지 불렸다. 그만큼 다양한 장르의 인재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빛을 봤다. 《슈퍼스타K》가 배출한 서인국, 허각, 버스커버스커가 있었고, 《K팝 스타》를 통해 조명된 제이미(박지민), 이하이와 백아연, 악동뮤지션이 있었다.

익숙해진 포맷이 이어지면서 참가자나 우승자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정체기도 있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시 부활했다.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끌어올렸고, 《프로듀스101》 시리즈는 아이돌 팬덤을 30~40대로까지 넓혔다. 지금도 오디션은 걸출한 스타를 배출하고, 대중문화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내일의 미스트롯》은 송가인이라는 트로트 가수를 탄생시키며 뒤이은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르를 바꿔놨다. 《미스터트롯》의 임영웅은 예능판까지 트로트로 적시며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제2의 서태지’라는 극찬을 받았다.

오디션의 순기능은 선발 과정의 공정함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불공정’은 시청자들을 돌아서게 한다. 일명 ‘대국민 프로듀서 오디션’이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던 엠넷의 《프로듀스101》이 비난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당 PD는 시청자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했고,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아이디를 사들여 소속 연습생에게 온라인 투표를 했다. 대국민 프로듀서 오디션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승자가 될 수 있었으나 억울하게 패자가 돼야만 했던 연습생의 모습에 불공정한 사회의 모습이 투영됐다. 국민 프로듀서로 자부심을 느끼던 시청자들은 극도의 배신감을 갖게 됐고, 그것은 프로그램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지금 시청률 30%를 견인하는 《미스트롯2》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참가자 모집 기간이 끝나기 전에 티저 촬영과 불합격 통보를 마쳤다는 주장 등이 나오면서 공정성이 흔들렸다. TV조선은 “근거 없는 사실과 무분별한 억측으로 프로그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최근에는 제작진이 특정 출연자의 음이탈 실수를 보정해 줬다는 논란까지 일었다. 일부 시청자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서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미스트롯2》의 ‘효녀 가수’로 각인된 양지은(사진)이 다시 방송에 등장하자 시청자들의 응원이 이어졌다.ⓒTV조선 《미스트롯2》 화면캡처

2. 스토리 : 시청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

공정한 과정이 전제된다면, 오디션에 임하는 참가자들의 노력과 결과물에 집중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가 보고 듣는 것. 바로 참가자의 ‘스토리’다. 어려움 속에서 꿈을 접지 않고 노력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대중은 감정을 이입한다. ‘나도 꿈이 있다’ ‘나도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참가자가 살아온 사회적 환경과 개인사에 대한 공감과 지지가 함께 이뤄진다. 어려운 환경과 긴 무명 시절을 버티며 떳떳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임영웅의 노래가 그런 역할을 했다. 역경을 헤쳐온 서사가 담긴 노래는 진정성이 돼 시청자들을 감응시켰다.

《미스트롯2》 참가자 양지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픈 아버지로 인해 전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사에, 기사회생을 하는 드라마틱한 서사까지 더해졌다. ‘효녀 가수’로 각인된 그가 다시 방송에 등장하자 응원이 이어졌다. 물론 실력은 기본 요소다. 스토리는 그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다. ‘실력’과 ‘사람’이 겹쳐질 때 대중은 반응한다. 시청자들은 참가자의 노래와 사연에 함께 몰입하며 같이 커나간다. 그것은 팬덤을 구성하면서 시청자와 참가자 사이의 일체감을 만들어낸다.

참가자들의 인성 논란이나 과거 문제가 터졌을 때 대중이 돌아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력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사람이 돼야 한다’는 우리의 기본 정서가 함께 작용한다. 2019년 엠넷 《프로듀스X101》에 출연 중이던 JYP 연습생은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프로그램에서 빠졌고, 최근 《미스트롯2》 참가자 진달래는 학폭 사실을 인정하며 중도 하차했다. 《싱어게인》의 TOP 6 요아리도 학폭 논란에 휩싸였지만 직접 해명에 나선 바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지만, 그 인물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논란이 되면서 추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응원을 보내던 대중이 느끼는 배신감과 실망감은 더 크다.

엠넷의 포크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포커스》의 참가자 송인효씨(사진)의 아버지에 따르면 제작진은 참가자에게 교통비 3만원만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엠넷 《포커스》 화면캡처

3. 경제성 : 왜 제작사는 오디션을 포기할 수 없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은 제작사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광고다. 시청자들은 경쟁의 한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승자를 보기 위해 중간 광고를 기꺼이 본다. 김성주의 ‘60초 후에 공개합니다’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 삽입되는 광고는 짜증 나지만 당연하고 익숙하다. 출연자들이 사용하는 제품, 부상으로 수여하는 제품, 마시는 음료, 건강 제품을 모두 광고로 활용 가능하다.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PPL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디션 광풍을 몰아왔던 엠넷을 보자. 대국민 사기극으로 곤욕을 치른 엠넷은 또 다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인 《걸스 플래닛 999》를 준비 중이다. 왜 엠넷은 오디션을 포기할 수 없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은 단순히 시청률과 문자 투표 수익, 광고료라는 이득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작사는 음원을 내고 콘서트를 여는 모든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만들어진 팬덤을 기반으로 참가자들을 소비할 수 있다. 음원과 굿즈를 만들어내면서 새롭게 생산된 대중문화의 시작과 중심을 확보할 수 있다는 너무나 큰 장점이 있다.

새로운 얼굴을 가장 싼값에 발굴해 낼 수 있다는 점도 제작사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요한 이유다. 유명한 가수를 섭외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도 들지 않는다. 사실상 무명 가수들은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것도 어렵기에, ‘기회’를 잡기 위해 ‘대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제작사의 경제적 논리는 출연자에 대한 푸대접으로 돌아오고, 이를 알게 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비판한다. 더 이상 ‘열정페이’가 용인되지 않는 시대에도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고질적인 출연자 대우 문제는 계속 불거진다.

최근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포커스》에 참가한 뮤지션 송인효가 4번의 무대에 참가하는 동안 김밥 두 줄과 도시락 하나, 교통비 3만원만을 받은 것이 알려졌다. 《미스터트롯》은 지난해 불공정 출연계약서 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회당 지급하는 10만원의 출연료는 본선 이상 선발된 출연자들로 한정했고, 출연자들이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도록 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동의한 사항이고 다른 오디션과 유사한 출연계약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절박한 출연자들의 동의를 앞세운 계약서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일반적인 표준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대부분의 포맷은 식상해졌다. 트로트에 다양한 음악과 무대를 접목한 《미스터트롯》의 시도나, 연출과 개입을 최소화하고 참가자들의 장르를 붕괴해 버린 《싱어게인》이 시청자들에게 새로움을 준 배경도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걸고 오디션에 임하는 참가자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위로와 공감을 얻는 시청자들이 있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은 계속 등장한다. 참가자들의 노력과 시청자들이 보내는 응원이 헛되지 않도록, 공정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이 대우받을 수 있도록,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화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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