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災)에서 시작돼 인재(人災)로 커진 인도의 코로나 위기
  • 김응기 신남방정책특위 자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6 10: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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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정부의 수준 낮은 공공행정은 오래된 적폐
그나마 성장과 개혁 이끌어온 민간부문에 기대

이른 아침 앰뷸런스가 질주하는 소리에 눈을 뜨고, 경광등 소리는 밤늦도록 들려온다. 이곳 인도에서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지난 3주 동안 계속되던 것이지만, 5월11일 이날은 더욱 유난했다. 전날 인도에서 20여 년 동안 사업을 이어오던 한국인 한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후 돌연 심장마비로 운명했다는 비보를 들은 탓이다. 인도 코로나19 2차 대유행 중 두 번째 체류 한국인 희생이다.

인도는 산소통과 병원 침대 부족으로 많은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 5월1일 뉴델리의 화장장에서 가족들이 시신을 옮기고 있다.ⓒAP 연합
인도는 산소통과 병원 침대 부족으로 많은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 5월1일 뉴델리의 화장장에서 가족들이 시신을 옮기고 있다.ⓒAP 연합

해외 긴급 원조 장비, 일주일이나 창고 방치

앰뷸런스 질주는 필자가 머무르는 수도권 산업 중심지 노이다(Noida) 외 기타 대도시에서도 비슷하다. 구급차에 탑승한 환자는 그나마 다행이다. 수송해야 할 환자는 늘어나는데 구급차가 부족해 이용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급기야 정부가 요금 통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공공 응급 시스템이 실종된 상태다.

하루 확진자가 40만 명을 넘어서자 연방정부 수도인 뉴델리와 주요 지역 거점들이 전면 봉쇄령을 선포했다. 이때만 해도 곧 상황이 정리되면서 비극적 사태는 수그러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공공조직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드러난 인도의 코로나19 대응 현실은 국가행정이 작동하는지조차 의심될 정도다. 이대로라면 인도라는 거대한 선단 전체가 좌초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들었다. 응급 시스템 운영의 난맥은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의 코로나19 위기가 알려지자마자 이를 세계의 위기로 인식한 미국·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방역제품을 항공으로 긴급 제공했다. 첫 구호품이 도착한 때가 4월25일이다. 뉴델리 국제공항에 도착한 구호물품은 단 1초라도 빨리 현장에 분배돼 상황을 억제하도록 사용되어야 할 것인데, 어떤 영문인지 일주일이나 공항 창고에 묶여 있었다. 방역제품 긴급 통관 명령이 있어도 단계마다 지침이 미비한 상태에서 이를 긴급하게 처리할 소신 있는 현장 책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 공공조직의 민낯이다.

산소호흡기 부족으로 한국인도 사망하는 등 비극적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해외로부터 긴급히 원조받은 장비가 도착 후 패스트트랙을 통하지 못하고 일주일이나 창고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은 코로나19 2차 대유행에 직면한 인도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필자는 이번 2차 대유행의 원인을 정치에서 비롯된 인재에 초점을 두고 언급한 바 있다(시사저널 1646호(4월30일자) ‘인구 대국의 코로나 참사, 모디 정부의 무책임한 정치가 불렀다’ 기사 참조). 대유행 유발 책임뿐만 아니라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공공조직의 무능과 비효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제2차 ‘인재(人災)’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는 인재에서 시작되어 인재로 커졌다.

함선 일부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를 긴급 진화해야 할 지휘부가 부재한 것이 지금 인도의 상황이다. 소화 시스템을 작동할 명령체계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소화 시스템에 진화물질이 충전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재유행의 원인이 인도의 정치라는 인재인데,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인재의 연속으로 상황이 미증유의 혼란 속에 빠져버리면서 비효율적이고 나태한 인도 공공조직의 실상이 드러났다. 그동안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준 낮은 공공행정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구분 없이 인도의 오래된 적폐다. 인도인 스스로도 이를 인도의 고질적 문제로 꼽고 있다.

농수산축산물에 대한 국가의 검역 주권이 엄중한데도 뉴델리와 첸나이 등 국제공항을 통해 쇠고기·돼지고기 등 축산물이 개인 수화물로 무단 반입되고 있다. 검역필증이라는 것은 아예 없는 보따리 통관이다. 개인 자가소비가 아니고 대부분 인도 현지 상당수 한국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만 보면 인도엔 검역 시스템이 없는 줄 착각해 아예 보따리 통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식품 수입에서 세상 까다롭게 장치된 나라가 또 인도다. 엄격한 관리 시스템이 있다. 심지어 이제는 제조업체 사전등록제라는 것을 입법화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 시스템에선 포장 내용이나 식품 성분 하나라도 규정과 일치하지 않으면 귀중한 식품이 한두 달 세관에 묶여 있다가 폐기될 정도다. 그런 인도인데도 공항에서는 한국발 항공기가 도착할 때마다 수십 킬로그램의 축산물이 반입되고 있다. 그렇다고 공항 세관원이 매번 이를 적발해 뒷돈을 챙기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그냥 통과다. 이처럼 시스템이 있어도 운영에 나태한 일선의 공공조직이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에서도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나태의 원인은 인적자원의 부실에서 찾을 수 있다.

 

백신 제조 능력과 방역 의식 환기에 기대

지금 인도에서는 전체 코로나 환자의 3.5%만 산소포화도 저하에 따른 산소 공급을 받을 수 있으며, 1.34%만 집중치료 시스템에 수용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0.39%라는 소수만이 의료용 산소호흡기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의료체계가 붕괴했고 의약품 등 의료용품 공급에서도 공공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항바이러스 치료제인 미국산 수입 렘데시비르는 통제는커녕 정부 보유 재고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암시장에서는 고시 가격의 몇 배에 유통되고 있다.

일단 체제를 구축하는 법률적 근거는 있어 조직은 세웠지만 정작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 요소, 즉 적정 자격과 권한을 가진 인원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들 시스템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최근 인도 대법원에서 정부 내 연방정부 차원의 코로나19 대응 국가 위기관리 부서를 갖추라고 직접 지시하고 나섰겠는가. 이렇게 보면 인도는 침몰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함선이다. 부족한 공공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제대로 작동될 리 없을 테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민 생활기반이 무너지고 경제가 추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게 항간의 현실이다.

지금 세계는 인도 사회가 회복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지, 아니면 극복해 낼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인도 침몰은 단지 인도만의 문제가 아닐 정도로 글로벌 의미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GDP 세계 6위이고 구매력평가지수(PPP)에선 세계 3위인 인도가 무너진다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많은 국가에 큰 타격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을 받았던 인도가 아닌가.

위기에서 벗어날 저력을 위기를 초래한 공공조직력에서 구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성장과 개혁을 이끌어온 민간부문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인도의 눈부신 성장은 정부 주도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잠재력 풍부한 펀더멘털을 활용하면서 관료주의 걸림돌을 치고 나간 민간 생존력에서 비롯된 결과이기에 이 위기 또한 이겨낼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 유행을 제어할 수 있는 백신 제조 능력과 방역 의식 환기에서 돌파구를 찾고, 이어 뒤늦게나마 공공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지금의 희생과 고통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인도는 그나마 희망을 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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