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정유경, 어느 쪽 추가 무거울까
  • 유혜림 이투데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30 10: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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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교환→증여’로 경영 승계 속도…남매 사이에 묘한 긴장감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올해 성공한 ‘승부사’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마트가 최근 ‘영원한 맞수’인 롯데와 맞붙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공격적인 사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 부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지지 않는 싸움을 하겠다는 과거의 관성을 버리고 반드시 이기는 한 해를 만들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세계그룹에 묘한 긴장감이 돈다.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호텔 사업에 다시 뛰어들면서 두 남매 간 경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남매의 경영 능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신세계그룹의 승계 구도 역시 재계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2011년 계열 분할을 계기로 ‘이마트’와 ‘신세계’라는 두 축을 만들었다. 그룹의 식품과 호텔 사업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맡고, 면세점과 패션 사업은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담당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남매 분리 경영, 닻을 올리기까지

정 부회장의 경우 1998년부터 승계 구도가 그려졌다. 그해 1월25일 이명희 회장이 정 부회장에게 신세계 주식 50만 주(지분율 4.46%)를 증여하면서다. 앞서 1997년 9월 정 부회장은 기획조정실 그룹 총괄담당 상무로 진급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나섰다. 당시 1%대에 불과했던 정 부회장의 지분율이 6.16%로 오르면서 한동안 승계 구도는 정용진 독자 체제로 움직였다.

남매 경영 체제가 가시화된 시점은 2015년 말이다. 당시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하면서다. 경영 전면에 나섰던 정 부회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정 총괄사장이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도 이때부터다.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센텀시티점 증축의 마무리 작업을 주도하면서 경영 활동에 나섰다.

2016년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은 각각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맞교환하면서 지금의 분리경영 체제를 만들었다. 그해 4월 정 부회장은 보유 중인 신세계 지분 72만203주(7.32%, 약 1523억원) 전부를 정 총괄사장에게, 정 총괄사장은 이마트 지분 70만1203주(2.51%, 약 1287억원) 전량을 정 부회장에게 각각 넘겼다. 정용진 부회장의 이마트 지분은 7.32%에서 9.83%로, 정유경 총괄사장의 신세계 지분은 2.51%에서 9.83%로 늘어났다.

당시 시장에선 ‘맞교환’이라는 지분 조정 방식에 주목했다.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의 지분만 오갔을 뿐 이마트와 신세계의 최대주주인 이명희 회장의 지분 변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명희 회장이 두 사람의 경영 성과를 면밀히 따져보고 지분 증여에 나설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이 회장은 침묵을 깨고 두 남매에게 각각 이마트·신세계 지분 일부를 나란히 증여키로 했다. 이 회장은 정 부회장에게 이마트 지분 8.22%(3190억원), 정 총괄사장에게 신세계 지분 8.22%(1741억원)를 증여했다. 정 부회장의 이마트 지분율은 18.55%,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 지분율은 18.56%로 오르면서 각각 회사 최대주주가 됐다. 남매가 내야 하는 증여세만 총 2962억원 규모에 달한다.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세금은 각각 1917억원, 1045억원으로 집계된다. 주식으로 증여세를 납부했던 과거(2006년)와 달리 이번에는 주식을 담보로 맡기고 나눠서 내기로 했다.

두 남매의 후계구도는 명확해졌지만, 아직 승계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두 남매가 호텔 사업에서 맞붙으면서 묘한 긴장감도 나타나고 있다. 2008년까지 호텔 부문을 이끌다 분리경영으로 손을 뗐던 정 총괄사장이 다시 사업에 뛰어들면서다. 일각에선 경영 승계 작업이 현재진행형인 만큼 남매가 서로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맞붙었다는 해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신세계는 오는 8월 대전에서 ‘오노마’ 오픈을 앞두고 있다. 정 부회장 또한 지난 5월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으로 럭셔리 호텔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아울러 올해 들어 두 남매는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남매의 사업 성적표 비교도 단골 소재가 될 전망이다. 올해 들어 두 계열사는 공격적인 M&A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SSG닷컴 포함)는 올해에만 SSG랜더스, W컨셉,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다. 또 정유경 총괄사장 역시 조 단위 M&A에 뛰어들었다. 지난 6월17일 신세계는 국내 보톡스 1위 업체인 휴젤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남은 숙제는 계열사 지분 정리

다만 정 부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게 유통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지난해 이마트는 코로나 팬데믹을 뚫고 사상 최대 매출(22조33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고전을 겪은 신세계(4조7692억원)를 크게 앞지르는 데다 주력 계열사들도 이마트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분 증여를 계기로 ‘이마트는 정용진, 정유경은 백화점’이란 승계 공식도 뚜렷해졌다는 평가에도 힘이 실린다.

분리경영 체제가 견고해지면서 시장에선 계열사 지분 정리를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꼽았다. 증여세 마련을 위해서라도 남은 계열사 지분 정리는 필요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통정리의 핵심으로 꼽히는 곳은 광주신세계다. 사실상 경영과 소유가 일원화되지 않은 유일한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지분 절반 이상(52.08%)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출 대부분은 백화점 사업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2018년 말 광주신세계는 대형마트 사업부문을 이마트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백화점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에서다. 이에 정 부회장이 보유 지분을 신세계에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광주신세계를 증여세 재원으로 사용할 경우 매각처는 신세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신세계는 광주신세계 지분율이 10.4%에 이르고, 광주신세계 매출의 약 70%가 백화점 사업부문에서 나오기 때문에 명분도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SSG닷컴, 신세계의정부역사도 지분 정리가 필요한 곳으로 꼽힌다. 업계에선 신세계가 보유 중인 SSG닷컴 지분과 신세계건설이 보유한 신세계의정부역사 지분은 맞교환 형식으로도 정리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승리’를 외친 정 부회장이 그려낼 ‘신세계’가 궁금해지는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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