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혈세로 지은 ‘썰렁한’ 대통령 기념관…누구를 위한 기념관인가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2 10:00
  • 호수 16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1790억·박정희 1680억 등…전국에 지어진 전직 대통령 기념관 찾아봤더니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전직 대통령의 과거 목소리가 담긴 영상이 쓸쓸히 반복 재생됐다. 공간은 넓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는 전시관은 썰렁했다. 시사저널은 7월6일과 7일 양일에 걸쳐 서울에 위치한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들을 직접 방문했다. 최근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김대중·김영삼·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을 차례로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은 그의 생애, 업적 등을 여러 시각자료, 실물 재현 등을 통해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2년 전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 했기 때문인지 그 어떤 박물관, 전시관 등보다도 세련돼 보였다. 빠르게 둘러본다고 하는데도 1시간 가량 소요됐다. 그러나 전시 수준이 무색하게 전시관은 텅텅 비어있었다. 관람 동안 기자가 마주친 건 노령의 관람객 단 4명뿐이었다. 기념관 관계자는 “일 평균 관람객은 평일 60~70명, 주말 100명 정도”라고 했다. 코로나19로 방문객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많다고 단정짓기 힘든 숫자다.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김영삼 기념도서관은 현재는 구립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2층부터 7층엔 서재는 물론 카페 등 휴게 공간도 잘 마련돼 있다. 도서관 이용객은 평일 오후임에도 꽤 많았다. 관계자에 따르면 일 평균 300명 이상의 시민이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서관 1층엔 김 전 대통령의 업적 등을 다룬 전시관이 있다. 어린 세대들을 배려한 것인지 원색 등이 많이 활용됐고, 쉬운 언어로 김 전 대통령을 소개했다.

그러나 역시 공간은 공허했다. 약 30분 이상의 시간 동안 전시관 내 관람객은 기자 혼자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 업적, 문헌 등을 전시해 놓은 동교동의 김대중 도서관은 현재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하루 3번 관람객을 받고 1회당 최대 4명이 방문할 수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1회당 평균 2명, 하루 10명 안팎이 다녀간다고 한다. 

박정희 하룻밤 묵고 간 군수 관사가 기념관으로

전직 대통령 기념시설은 끊이지 않고 때 되면 도마에 오르는 대상이다. 전직 대통령 재단, 같은 진영의 지자체장, 국회의원 등은 세금을 들여 기념시설을 만들려 하다가 언론과 국민의 질타를 받는다. 그럼에도 계획이 바뀌진 않는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기념시설들이 전국에 생겨났다. 전국에 세워진 역대 전직 대통령 기념시설은 얼마나 되며 거기에 세금은 얼마가 들어갔을까.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해선 우선 종로구에 위치한 사저 이화장 기념관이 있다. 서울시는 1982년 이화장을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했고, 지금도 관리해오고 있다. 2011년 집중호우로 이화장과 그 안의 이 전 대통령 유품들이 피해를 봤다. 국가기록원 등은 약 5억원을 들여 보수 및 복원작업을 실시했다. 이 외에 지역 곳곳에 있던 이 전 대통령의 별장이 각 지자체에 의해 기념시설로 복원돼 있다. 대표적으로 고성군의 화진포 별장은 군비 7억원, 제주시의 귀빈사 별장은 도비 3억원 가량이 투입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시설은 서울 상암동 기념관을 비롯해 구미, 문경 등 다수 지역에 세워져 운영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기념관 설립에 들어간 세금만 약 16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상암동 기념관엔 208억원의 국비가 지원됐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엔 생가를 중심으로 공원, 기념관 등이 위치해 있으며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바로 얼마 전인 6월30일에도 숱한 논란이 중심이었던 박 전 대통령 역사자료관이 개장했다. 국비 등이 200억원 이상이 들어간 사업이다. 

경북도와 구미시 등은 박 전 대통령 생가 일대를 새마을운동테마공원으로 꾸몄다. 총 900억원 이상의 엄청난 세금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공원은 끊임없이 적자, 방문객 부족, 콘텐츠 미비 등의 논란을 겪고 있다. 새마을운동테마공원, 민족중흥관, 역사자료관 등 생가 주변에만 쓰인 세금이 1445억가량으로 추산된다. 울릉군에도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관이 있다. 옛 울릉군수 관사를 기념관으로 꾸린 것인데 다름 아니라 1962년 박 전 대통령이 하루 묵고 간 곳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박 전 대통령의 하숙집이었던 문경의 청운각 근처가 기념관을 갖춘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관은 상도동의 기념도서관과 거제의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이 있다. 각각 50억원가량의 세금이 투입됐다. 기념도서관엔 추후 사료 수집 등 목적 사업에 대해 약 25억원이 추가 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기념관들을 짓는데도 1700억원이 넘는 세금이 쓰인 것으로 계산된다. 동교동에 위치한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은 지난 2003년 김 전 대통령의 외곽 조직이었던 아태평화재단이 연세대에 기증된 이후 김 전 대통령 관련 전시관 등으로 탄생했다. 여기엔 국비 60억원이 지원됐다. 

광주와 목포 등 전라도 일대에 김 전 대통령 기념시설이 다수 지어져 운영되고 있다. 광주 치평동에 위치한 김대중컨벤션센터에는 기념시설의 경우, 제2센터까지 합쳐서 약 1500억원가량의 사업비가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목포시 산전동의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에도 약 200억원의 국비 등이 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은 서울과 김해시 봉하마을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종로구 원서동에선 가칭 ‘노무현 시민센터’가 국비 45억원 지원을 받아 현재 건축 중이다. 봉하마을 기념관은 가칭 ‘깨어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으로 완공됐지만 아직 개관은 하지 않고 있다. 국비 등 약 140억원 이상의 세금이 쓰였다. 사실 김해의 기념관 이름을 두고 논란이 있다. 국비를 들여 중복 사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 이름을 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건뿐 아니라 앞서 다른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 건축 등의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있는데 왜 또 짓냐’는 비판은 끊이질 않았다. 

기자는 7월6일과 7일 양일에 걸쳐 서울에 있는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 외부 및 전시관엔 관람객이 거의 없었고 한산했다.ⓒ시사저널 이종현·이원석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시사저널 이종현·이원석
상도동 김영삼 기념도서관ⓒ시사저널 이종현·이원석

기준·제한 없이 지어지는 기념관

법적으로 우리나라는 대통령 기념사업을 정부에서 지원하게 돼 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다. 관련법 시행령에는 국고 지원 대상으로 ‘전직대통령 기념관 및 기념 도서관 건립 사업’이 명시돼 있다. 이를 주관하는 건 행정안전부다. 그런데 지원 액수의 기준이나 제한은 없을까. 
 
행안부에 확인한 결과, 액수의 기준이나 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자체적으로 판단하되 최종적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결정한다. 다만 기념관을 짓는다고 할 때 통상 총 예산의 30% 정도를 지원한다. 또한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 관련 기념관 건립에 대해 법률에 따라 지원한 횟수는 각 대통령 당 1회였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박정희 기념관, 김영삼 기념도서관, 김대중 도서관, 노무현 시민센터에 지원된 국비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에 지어져 있는 여러 기념시설들은 무엇일까. 시의회 등에 확인한 결과 대통령,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이 예산을 배정해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예산 심의가 있긴 하지만 그 외엔 몇 개를, 얼마나 크게 짓든 별다른 기준이 없는 실정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의원은 “이미 있는 걸 또 짓고, 또 지으려고 한다. 정치적 의도와 목적이 다분하다. 가봤자 관람객도 별로 없고 적자만 크다”며 “전직 대통령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국민 혈세가 쓰이고 있다는 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