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언니’ 김연경이 있어 더 환호했던 올림픽
  • 성백유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대변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8 14:00
  • 호수 16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약체 평가’ 여자 배구의 눈물겨운 투혼에 찬사…은퇴선언 불구, “2024 파리올림픽까지 뛰어주길” 기대도

“오빠, 진짜 저 너무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개그맨 김영철은 방송활동으로 친하게 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주장 김연경에게 대회 중 이런 문자를 받았다. 도쿄올림픽 4강 진출의 위업을 이끈 김연경에게 보낸 “연경아, 정말 너무 잘한다. 2024년 파리올림픽도 가도 될 것 같아”라는 문자메시지에 대한 답이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전 세계 배구팬에게 ‘마지막 댄스’를 선보였다. 대표팀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양효진·김희진 등 11명의 후배와 함께하는 명품 댄스의 그 화려함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짙게 배어 나온다.

한국 여자 배구가 올림픽 4강에 진출한 것은 세 번째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처음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최강 팀으로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아쉽게 4위에 그쳤다.

배구인들은 한국 여자 배구가 올림픽 4강에 오른 것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올림픽 직전에 벌어진 네이션스리그에서 한국은 16개 참가국 중 15위에 머물렀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이 물리친 상대는 모두 세계랭킹에서 앞선다. 13위의 한국은 도미니카공화국(7위)과 홈팀 일본(10위)보다 세계랭킹에서 뒤진다. 조별 예선에서 한국에 패배를 안긴 브라질(2위)과 세르비아(6위) 경기를 제외하면 한국은 대부분의 경기를 풀세트 접전 끝에 힘겹게 승리했다.

장윤희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김연경이 이전보다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김연경이 자신의 배구 인생 마지막 올림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게 보인다. 선수들은 그런 김연경을 믿고 따르는 중이고, 김연경이 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다. 장 위원은 2017년 국가대표팀 코치로 있으면서 김연경을 지도했던 선배다.

ⓒ연합뉴스
7월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김연경(왼쪽) 등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적을 낳은 12명의 여전사, 그 중심에 선 김연경

터키와의 8강전에서 한국은 경기 내내 추격하는 팀이었다. 세트 스코어 1대1로 팽팽히 맞선 3세트, 김연경은 24-23으로 앞선 상황에서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듀스가 되자 강력한 항의를 하면서 후배들의 투혼을 불러일으켰다. 김연경이 주심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고 나서 선수들은 더욱 똘똘 뭉쳤다. 이후 박정아의 강타와 김희진의 블로킹 등으로 28-26으로 3세트를 가져왔다. 그러나 4세트에서 터키의 미녀 스파이커 보즈 선수의 공격이 폭발하면서 세트스코어 2대2가 되자 코트는 양팀 선수들이 내뿜는 긴장의 열기로 넘쳤다. TV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은 숨을 멈추고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5세트 9-10으로 뒤진 한국은 이때부터 김연경의 원맨쇼가 시작됐다. 5세트 9점에서부터 15점을 따내는 상황에서 김연경은 한국의 6득점 중 혼자 5득점을 책임졌다. 나머지 1점도 터키의 공격 실책이었으니 사실상 혼자 책임진 셈이다. 최고의 조력자는 박은진이었다. 박은진은 10-10으로 팽팽하던 상황에서 두 개의 강서브를 터뜨려 김연경의 두 차례 다이렉트 공격 성공을 이끌어냈다. 여기서 터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표팀 막내 박은진은 “감독님과 연경 언니가 자신 있게 서브를 때리라고 해서 편하게 때렸던 것 같다. 연경 언니가 다이렉트로 득점을 잘 내줘서 좋은 서브를 더 때릴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감독님이 손가락으로 사인을 주는데 그쪽을 보고 때리려고 했다. 리시브가 바뀌었을 때는 공격수 위주로 때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많이 떨렸다. 안 떨렸다면 거짓말”이라면서 “(교체돼 코트에 들어갔을 때) 언니들이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해 하면 된다고 했다. 언니들을 믿고 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다른 대회와 달리 정말 더 떨리고,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연경은 경기 후 KBS와의 인터뷰에서 “준비를 많이 한 사실을 모든 선수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감이 있다. 원팀이기 때문에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 누가 우리가 4강에 갈 거라고 생각을 했을까 싶다. 후배들에게 한 포인트 한 포인트 해내자고 했고 모두가 잘 따라와줬다”고 했다.

ⓒ연합뉴스
한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김연경이 3세트를 따낸 후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국제배구연맹도 김연경 칭찬에 열 올려

2019년 3월부터 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어온 사령탑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42)은 “김연경의 플레이는 100점 만점에 5000점”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언론 ‘라 스탬파’는 “포기하지 않는 자의 승리”라면서 “라바리니 감독이 같은 이탈리아 출신이자 자신이 한때 보좌했던 터키의 지오반니 구이데티 감독을 제치고 4강에 올랐다. 그가 도쿄에서 누려야 할 마땅한 노력의 결과”라고 평했다.

라바리니는 선수 경험이 없는 독특한 경력의 지도자다. 이탈리아에서 유소년팀 스태프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이탈리아 키에리에서 구이데티 현 터키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한국은 2016 리우올림픽 8강에서 네덜란드를 만나 무릎을 꿇은 바 있는데, 당시 네덜란드 감독도 구이데티였다. 라바리니 감독은 처음 한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한국이 날 선임해 이루려는 목표보다 내가 갖고 있는 개인적인 목표가 더 크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 목적은 이제 달성됐다.

터키 선수들은 한국에 패하고 나서 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다. 터키 대표팀 주장 에다 에르뎀은 터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준결승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 내 감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응원해 주셨던 모든 분께 정말 죄송하다. 엄청난 압박이 우리 팀을 무너뜨렸다”고 전했다. 에르뎀은 김연경과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다.

국제배구연맹(FIVB)도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을 올림픽 4강 무대에 올려놓은 ‘배구 여제’ 김연경을 극찬했다. FIVB는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연경은 이미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에 더해 ‘10억 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FIVB는 조별 예선 4차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꺾자 김연경을 향해 “올림픽에 한 번 더 나오면 안 되겠느냐”며 환호했다. 또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 후에는 “김연경은 자신이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이유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끝나고 준결승전을 하루 앞둔 8월5일 점심시간. 국내에서는 직장인들이 몰리는 도심 식당을 비롯한 전국 식당이 배구 이야기로 술렁거렸다. 큰 인기만큼이나 많은 기대를 모았던 축구는 8강에서 멕시코에 완패해 일찌감치 탈락했고, 야구 역시 일본에 패해 결승전 직행에 실패했다. 이구동성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대한 찬사 일색이었다. ‘과연 김연경은 파리올림픽에서도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까?’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 1988년 2월생인 김연경의 올해 나이는 33세. 김연경은 3년 뒤 열리는 파리올림픽에서는 36세가 된다. 배구팬의 입장에서는 김연경이 한 번 더 뛰는 것을 보고 싶을 것이다. 김연경은 8월8일 세르비아와의 동메달결정전서 패한 뒤 국가대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식빵언니’ 김연경을 향한 박수는 끝나고 난 지금도 현해탄을 건너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