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도 못 말리는 ‘아베 걸스’ 다카이치 후보의 선전 의미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14 07:30
  • 호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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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총재 선거 의원투표에서 고노 제치고 2위에 오른 다카이치, 극우 성향 드러내

지난 9월29일 실시된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가 승리했다. 일본의 코로나19 백신 정책을 담당해 대중적 인기를 얻은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과의 치열한 대결이 예상되었던 만큼 1차 투표는 기시다 256표, 고노 255표 등 단 1표 차 박빙의 승부였다. 최다 득표자인 기시다가 과반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해 결선투표로 이어졌고, 결선에서는 전체 428표 중 기시다 257표, 고노 170표로 기시다가 압승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에서는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 지명 선거를 통해 총리로 선출되기 때문에, 10월4일 실시된 중·참의원 총리 지명 선거를 통해 기시다 후미오는 일본의 100번째 총리가 되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인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9월20일 열린 자민당 청년국·여성국 주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EPA연합

“총리 돼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겠다”

이번 총재 선거의 주인공은 기시다지만, 의외로 선전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하게 드러낸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다. 다카이치는 1차 투표에서 의원표 114표에 당원표 74표를 합한 188표를 획득해 기시다·고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고노 다로가 획득한 255표 가운데 의원표가 86표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서 고노보다 다카이치가 더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이다. 지난 아베 내각에서 총무상을 역임하는 등 각료 경험은 있지만, 소속도 파벌도 없고 지명도도 높지 않은 다카이치였다. 그런 그가 외무상·방위상·행정개혁상 등 요직을 역임하며 일본 국민들로부터 차기 총리 후보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히기도 했던 고노에 비해 자민당 의원표에서 앞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카이치 사나에는 우익 성향의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経塾·일본 보수우익 정치인을 다수 배출한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학교) 출신으로 1993년 중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당선 후 약 3년이 지나 자민당에 입당한 다카이치는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으로 임명되어 2006년 처음으로 각료로서 입각(入閣)했다. 다카이치가 아베 내각에서 각료로 임명된 배경에는 그가 아베와 1993년 함께 정계에 입문한 동기생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베 전 총리가 지난 1차 아베 내각 시절에 국내외 여론 악화를 우려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던 것이 “통한의 극한”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던 것과 달리, 다카이치는 2007년 8월15일에 현직 각료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태평양전쟁 이후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을 기획·주도해 평화를 해친 죄’로 기소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의 ‘종전기념일’(8월15일)에 참배하는 행위는 일본 우익 세력에게 애국심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다카이치는 2007년 참배 이후 매년 8월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이처럼 아베의 정계 입문 동기이자 보수우익 성향을 공유하는 다카이치는 ‘아베 걸스’(아베와 가까운 우익 성향의 여성 정치인을 뜻하는 말)로 알려지며 일본 정계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2012년 말 아베 신조가 두 번째 총리에 취임한 뒤에는 다카이치를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으로 임명했다. 자민당 역사상 최초로 여성 의원이 정조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와 관련해서도, 스가 전 총리의 사임 표명 이후 아베는 다카이치에 대한 지원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아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다카이치는 우익 세력을 겨냥한 각종 발언을 쏟아냈다. 총리에 당선되더라도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거나, 역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중국이 전 세계에 부정확한 정보를 퍼뜨리고 있으므로 역사외교를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다카이치는 여성 의원임에도 남녀가 혼인할 경우 여성이 남성의 성(姓)을 따라야 하는 현행 제도(부부 동성제도)를 변경할 경우 “가족 단위 사회체제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일본의 왕실에서 남성만이 왕위를 승계하도록 한 규정을 수정해 여성 일왕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다카이치와 함께 ‘아베 걸스’로 알려지며 지난 아베 내각에서 방위상을 역임한 바 있는 극우 성향의 이나다 도모미가 부부가 다른 성을 쓰도록 허용하는 ‘선택적 부부 별성(別姓)제도’를 용인하는 등 여성의 권리 및 젠더 문제에서만큼은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것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와 1·2위를 다퉜던 고노 역시도 여성 일왕 및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어, 이번 선거는 다카이치가 자신의 보수우익 성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 우익 세력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어필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의 의원표 부문에서 고노를 제치고 2위에 오른 것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아베 전 총리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민당 내에 아베와 다카이치의 우익적 성향에 동조하는 의원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9월18일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들이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전국언론클럽 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노, 기시다, 다카이치, 노다 후보ⓒAP연합
9월18일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들이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전국언론클럽 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노, 기시다, 다카이치, 노다 후보ⓒAP연합

자민당 의원과 당원들 사이 정서적 괴리감

그러나 다카이치의 득표(총 188표)는 자민당 의원표(114표)에 몰려 있으며, 전국의 자민당 당원표 중에서는 고노의 득표수(169표)의 절반도 되지 않는 74표에 그쳤다. 이는 자민당 의원들과 다른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즉 국회의원들과 당원들 사이에 이념적 거리감이 꽤 크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10월4일자)은 다카이치를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와 같은 남녀 평등 정책에 소극적인 여성 의원이라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정계의 젊은 여성 의원들 사이에서는 다카이치가 여성의 사회 진출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초보수적 인물로 회자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10월4일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 내각에서 다카이치는 자민당 정조회장에 임명되었다. 보수우익 성향이 짙은 다카이치가 여성 의원이자 정조회장으로서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정책을 입안하는 역할을 해내며 대중성을 넓히는 정치인이 될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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