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갈등 속 터진 ‘위생 논란’에 속타는 가맹점주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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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그룹, 파리바게뜨 공급 차질 이어 던킨 위생 문제 돌출
막대한 피해 입은 점주들, 코로나19 속 이중고 호소
9월2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충북 SPC삼립 청주공장 앞에서 집회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2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충북 SPC삼립 청주공장 앞에서 집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최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SPC그룹 가맹점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파리바게뜨에서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제품 공급 문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던킨도너츠 생산공장 위생 논란까지 불거지면서다.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품 위생 리스크’가 터지면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신음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노조와 회사 간 대립 과정에서 터져나온 폭로와 이에 따른 후폭풍으로 애꿎은 점주들만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는 한탄이 쏟아진다. 

 

생산공장 위생 실태 폭로에 휘청

SPC그룹 산하 비알코리아가 운영하는 도넛브랜드 ‘던킨’의 위생 불량 의혹은 폭로와 해명, 재반박이 교차하며 결국 경찰 수사로까지 확대됐다.

던킨 안양 생산공장의 위생 불량 의혹을 처음 폭로한 제보자는 10월5일 서울 중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장 내부 설비 모습이 담긴 영상을 추가로 공개했다. 영상에는 각종 설비에 기름녹과 유증기가 액체 상태로 맺혀 있는 모습이 담겼다. 천장 환풍구에는 먼지가 끼었고, 빵이 운반되는 컨베이어 벨트 아래 쪽에서는 까만 물질이 묻어나왔다.

제보자 A씨는 “2016년 공장을 짓고 나서 단 한번도 (환풍시설을) 청소하지 않았다. 분진이 (도넛이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 제품으로 곧바로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내부 설비의 비위생적인 모습이 담긴 영상은 제보자가 9월29일 KBS 뉴스를 통해 폭로한 ‘기름때 반죽’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지난 7월 말께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영상 촬영 직후 회사 측에 여러 차례 공장 위생 상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0월5일 서울 중구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열린 SPC 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제보자가 던킨 생산공장과 관련한 추가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5일 서울 중구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열린 SPC 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제보자가 던킨 생산공장과 관련한 추가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알코리아 측은 ‘기름때 반죽’ 파문이 일자 촬영 영상에서 조작 정황이 발견됐다며, 이를 ‘식품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제보자를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제보자가 설비 위에 묻어있는 기름을 고무 주걱으로 긁어내는 등 특정한 의도를 갖고 반죽 위로 떨어뜨리려 했다는 것이다.

사측은 “천정 환풍기는 외부 업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고 제보자의 주장 대부분이 허위”라며 경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일단 영상 조작 여부와는 별개로 던킨의 위생 문제는 일부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번에 문제가 된 안양 공장의 위생지도·점검 결과 생산 설비 비위생 상태를 확인하는 등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HACCP) 평가에서도 안양 공장을 비롯해 다른 생산공장 4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비알코리아는 생산 시설과 관련한 위생사항 전반을 점검하고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여진은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9월30일 SPC삼립 청주공장 앞 도로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가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화물연대는 세종공장에서 결의대회를 하다 강제해산 당하자 청주공장 앞에 재결집해 철야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과도한 업무량을 개선하기 위한 증차와 배송노선 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30일 SPC삼립 청주공장 앞 도로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가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화물연대는 세종공장에서 결의대회를 하다 강제해산 당하자 청주공장 앞에 재결집해 철야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과도한 업무량을 개선하기 위한 증차와 배송노선 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탄 맞은 가맹점, 커지는 한숨

생산 공장의 위생 문제가 불거지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전국 각지의 가맹점주들이다. 10월6일 오전 서울과 경기도 일대 복수의 던킨 매장을 둘러본 결과, 전반적으로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뜸한 상황이었다. 방문객이 있더라도 커피 등 음료만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수도권 지역에서 던킨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학원가에 위치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주 고객이기 때문에 제품과 매장 청결에 정말 많은 신경을 쓴다”며 “코로나19로 매장 소독과 방역에도 최선을 다해왔는데, 정작 본사가 관리하는 공장에서 위생불량 문제가 터지니 이렇게 허탈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처음 문제가 제기된 안양공장 인근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점주도 “지난달 말 관련 뉴스가 처음 나오자마자 매장으로 거센 항의가 쏟아졌다”며 ”‘여기서 판매된 제품은 모두 안양공장에서 납품받은 것 아니겠느냐’며 환불을 요구하는 분도 계셨고, 매출도 급감했다”고 말했다. 

일부 점포에서는 점주가 직접 작성한 사과문을 매장 안팎에 걸어놓는 등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포착됐다. 점주들의 고민이 큰 것은 식품 브랜드의 경우 한번 훼손된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그 타격을 자영업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식품 관련 논란은 그 자체로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반면 위생 논란이 본사의 책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정황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던킨 매장 아르바이트생들의 경험담을 통해서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본사인 SPC의 매장 불시점검과 위생 관리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해 점주들의 압박이 상당한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던킨에서 알바를 했는데, 4시간 마다 도넛 집게나 가게에 있는 집기는 모두 소독했고 매달 본사에서 위생점검하러 온 분들이 면봉으로 불특정 장소를 긁어 (시료 채취 후) 밀봉해서 가져갔는데 공장 문제가 터진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자신을 20대 학생이라고 소개한 또 다른 네티즌도 “매장 포스(POS)기 앞에 위생점수 현황이 적혀 있을만큼 신경쓰는 부분“이라며 “본사가 불시점검을 나와 매장 전체를 뒤집어놓듯 검사해 사장님(점주)이 철저히 관리했었는데, 피해를 입게 돼 안타깝다”고 전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9월24일 SPC삼립 세종공장에서 “국민은 민노총보다 빵을 원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자, 증차·배송노선 조정 등을 요구하며 집단 운송거부에 들어간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항의하며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9월24일 SPC삼립 세종공장에서 “국민은 민노총보다 빵을 원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자, 증차·배송노선 조정 등을 요구하며 집단 운송거부에 들어간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항의하며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SPC그룹이 운영하는 파리바게뜨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노조 탄압 등을 이유로 SPC 광주 물류센터의 운송을 한달째 거부하면서 광주 전남·북 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으로도 공급 차질이 빚어졌다. 아직 운송 거부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는데 형제 브랜드인 던킨에서 악재가 또 나오면서 상황이 꼬였다. 

점주들은 운송 거부와 위생 논란 이면에 한국노총·민주노총 간 알력 다툼이 있다며 노조와 노조, 노조와 본사와의 갈등에 애꿎은 가맹점만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도 성명서를 내고 “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으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의 피해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또 다른 약자의 생존권을 침탈하는 방식이라면 이는 적절하지 못하고 자제돼야 한다”며 파업 중단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SPC그룹은 생산설비 개선과 위생 점검·관리를 강화하고 가맹점주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방안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SPC 측은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가맹점주들의 고통에 책임을 통감하며, 향후 가맹점주와 협의를 통해 상생 지원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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