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리 간사장 등 거물급 줄줄이 낙선…日 정계 ‘지각변동’
  • 임수택 아시아미래연구원 자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6 14: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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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같았던 일본 정치에 드디어 ‘세대교체’ 변화의 바람
급진적 진보 피하면서도 개혁적 보수 원해

10월31일 치러진 일본 총선(중의원 선거)은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입장에선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 도쿄올림픽 개최에 대한 비난, 각종 보궐선거 패배 등으로 인해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자민당의 인기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구원 등판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자민당 지도부는 취임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 중의원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어 선거 결과를 낙관하지 못했다. 선거일 직전까지 과반 획득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이어졌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예상과 달리 자민당의 선전으로 끝났다. 전체 465석 중 261석을 얻어 자체적으로 과반을 넘겼다. 연립정권인 공명당의 32석을 합하면 291석이다. 절대 안정적인 의석수를 차지한 것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10석에서 96석으로 줄었고,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는 11석에서 41석으로 약진하며 일약 제3당이 됐다. 국민민주당은 3석 늘어 11석이 됐고, 공산당은 2석 줄어 10석이 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입헌민주당의 패배, 일본유신회의 급부상, 그리고 가장 크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뚜렷한 세대교체 움직임 등으로 요약된다.

ⓒAP 연합
10월3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오른쪽)와 아마리 아키라 간사장이 선거 개표센터 현황판 앞에 서로 엇갈린 채 서있다.ⓒAP 연합

입헌민주당이 세대교체 진원지 될 전망

이번 총선의 최대 이변은 여야를 막론하고 거물 정치인들이 지역구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점이다. 일본 중진 정치인들의 경우 당선 횟수가 10선 이상인 의원이 적지 않다. 정치 신인들이 이런 중진의원들과 경합해 당선되기가 어려운 게 일본 정치의 현실이다. 특히 이변 중 이변은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간사장의 낙선이었다. 간사장은 원내 최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이런 간사장이 44세의 젊은 정치인에게 패배한 것이다.

아마리 간사장이 비록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비난을 받아왔기는 했지만, 집권당 현역 간사장이 낙선하는 예는 거의 없었다. 특히 아마리는 현재 자민당 정권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아소 다로 부총재와 함께 ‘3A’로 거론되는 거물이다.

이 외에 가네다 가쓰토시 전 법무상(장관), 노다 다케시 전 국가공안위원장, 히라이 다쿠야 전 디지털청상, 시오노 야뉴 전 문부과학상 등 화려한 경력의 중진의원이 줄줄이 낙선했다. 거물 정치인들의 낙선은 비단 자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에서도 18회 당선으로 일본 정치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입헌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의원(18선)을 비롯해 나카무라 기시로우(15선) 전 건설상도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했다.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은 일본 정치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 그간 아베 전 총리 시절 모리모토 학원, 가케 학원, 벚꽃을 보는 모임 등 각종 스캔들과 내각 인사들의 잇따른 비리 의혹, 미숙한 코로나19 방역 대책 등으로 인해 국민 사이에서 지지의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일본 국민은 성향상 급변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지금의 정치체제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급진적 진보 성향의 정부를 피하면서 개혁 성향의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과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특히 입헌민주당이 세대교체의 진원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에다노 유키오 대표가 사임했다. 차기 대표로 6~7명의 후보가 거론되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서 세대교체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여름 실시될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쓰이 이치로 일본유신회 대표ⓒEPA 연합

‘보수’ 일본유신회, 與 부패 공격하면서 대승

사실 이번 총선에서도 집권 자민당의 실정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자 에다노 대표는 국민민주당·사민당·공산당·레이와신센구미당과 후보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기대가 컸으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패인은 정책이었다. 많은 유권자가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의 정책적 연대에 회의를 느꼈다. 특히 입헌민주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 구성원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 안보정책에서 공산당의 정책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입헌민주당 지지자들이 일본유신회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입헌민주당의 정책도 문제였다. 이번 선거 공약으로 ‘소비세 5%로 감세’ ‘연수 1000만 엔 이하 소득세 1년 면세’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재원 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 부족으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비록 의석수는 줄어들었지만, 야당 공조의 부분적인 효과는 있었다. 후보 단일화 결과 지역구 선거에서 48석을 57석으로 늘린 것이다. 이를 통해 자민당의 거물 정치인인 아마리 간사장, 이시하라 파벌의 좌장인 이시하라 노부테루 등을 낙선시켰다. 도쿄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 나름대로 성과도 올렸다.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의 연대가 정책과 이념에서 실패한 것과는 다르게 오사카 지역을 기반으로 탄생한 일본유신회는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를 입은 정당이 됐다. 대승의 요인은 중앙정부의 코로나19 대책과 다르게 독자적이고 신속한 조치로 좋은 평가를 받은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의 인기도 한몫했다. 선거 전 의석수에 비해 4배 늘었다. 특히 오사카 19석 중 공명당의 4석을 제외한 15석을 전부 차지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전국 정당의 면모도 갖췄다. 전국 11개 블록 중 홋카이도를 제외한 10개 블록에서 비례대표를 당선시켰다. 비록 도쿄도 지역구에서는 한 사람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지만, 비례대표에서 전국적으로 지지를 얻었다.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이 진보적인 정책으로 자민당을 공격한 것과는 다르게 마쓰이 이치로 당 대표는 자민당 정권의 정책과 스캔들의 실정을 비판하면서도 보수적 정책을 꾸준히 실천해온 점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원인이다. 코로나19 대책에서 자민당의 중앙집권 중심의 톱다운 해결책보다는 오히려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는 게 효율적이었다는 점도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유신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유신회가 성공한 이유는 이념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립했기 때문이다. 보수의 정치 기조를 유지하면서 자민당의 금권정치 타파를 주장하는 개혁적 보수의 노선을 지향하고 나선 게 주효했다. 일본유신회의 성공에 비해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의 선거 공조가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민당의 진보적 공약과 차별화를 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안전보장과 경제 문제에서는 보수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진보적 성향의 정책을 상당히 취하고 있다. 1960년대 국민개보험과 연금제도, 1970년대의 환경정책과 복지정책, 그리고 최근엔 교육 무상화와 전방위 사회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내년 선거 때 정치 신인 돌풍 더 거셀 듯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정치 신인에 의한 세대교체 바람이 지금보다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를 역임했던 간 나오토 의원은 “이제는 젊은 정치인들을 양성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 결과로 정치 개혁과 세대교체가 정치권의 화두로 부상했다. 물론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은 세대교체보다는 당분간 국정 현안 처리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겨울로 들어서면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양극화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기시다 정부는 성장과 분배, 신자본주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국민에게는 생소하고 막연하다.

국내 문제로 인해 외교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아베·스가 전 정부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를 안정적으로 관리한 후 대한민국 차기 정부가 들어서야 구체적인 논의가 진전될 것이다. 향후 한·일 관계는 지금보다는 다소 유연한 관계가 전개되리라 예상되지만 당분간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韓 차기 정부 구성-日 참의원 선거…내년 여름 한·일 관계 변곡점 나타날까

10월31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한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는 본격적인 국정 운영에 시동을 걸었다. 국정의 최우선 과제는 6번째로 맞이하고 있는 코로나19 대책이다. 동시에 코로나19 영향으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아베 정권에서 5년간 외무상을 역임한 기시다 총리의 강점은 외교 전문가다. 아베 정권 시절 내각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루어낸 당사자다. 이 합의가 백지화돼 한·일 문제 해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관계 개선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중요성도 잘 알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외교 문제에 대해선 온건파로 알려져 있다. 그가 좌장으로 있는 고치카이 파벌이 전통적으로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

양국의 관계 개선은 사람·시기·환경·전략 4가지에 달려 있다. 첫째는 사람이다.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재의 지지로 총리가 됐기 때문에 두 사람의 영향력이 크다. 정권의 2인자인 마쓰노 히로가즈 관방상도 아베의 복심으로 통한다. 그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인물이다. 현재 기시다 총리 주변은 강경파 일색이다. 모테기 외무상이 자민당 간사장으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공석이 된 차기 외무상으로 어떤 인물을 임명할지가 중요하다.

두 번째는 시기다. 강경파의 영향에서 벗어나 양국의 관계 개선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이 중요하다. 또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한·일 관계 개선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시기는 대한민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는 3월 시점이다.

세 번째는 환경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매각 집행의 향방이다.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반도체 소재로 시작된 경제보복에 대해 기시다 정부가 어느 정도 해결 의지를 갖느냐다. 무엇보다 기시다 정부가 일본 내 점증하고 있는 혐한 감정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통제하는가도 중요하다.

네 번째는 전략이다. 현시점에서 양국 정부는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재개 명분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의 여지가 있다. 북한은 최근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한·일, 한·미·일 공조가 필요한 시기다. 과거사 문제와 별도로 관리하며 대화를 재개하고 이를 통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전략적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일본 정부의 핵심 과제인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우리의 협력도 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정부 간 채널이 경색될수록 민간경제 채널을 활용하는 방식을 한·일 관계에 적용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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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수택 아시아미래연구원 자문위원은

김영삼 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고, 일본 마쓰시다정경숙 연구원, 와세다대학 시스템공학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활약한 일본 전문가이다. 시사저널 편집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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