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기울어가는 패권국’으로 치부하는 시진핑의 시선
  • 이성현 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30 10:0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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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의 본질, ‘무역 전쟁’ 아닌 ‘미래 전략 전쟁’
차기 한국 정부, 선택 압력 더욱 거세질 듯

11월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상 정상회담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양국은 서로 간의 언론인 비자 제한을 완화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기자를 추방했던 조치를 거둔 것이다. 양국은 또한 며칠 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2021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깜짝 한편을 이뤄 출전해 50년 전 ‘핑퐁외교’를 재현했다. 냉전 시기 미·중 탁구선수들 간의 스포츠 교류가 양국의 적대관계를 해빙시키는 단초가 된 것처럼 이것이 재차 미·중 갈등 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될까 하는 기대가 모아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미국이 주요 석유 소비국들에 전략비축유(SPR) 방출을 요청했는데 놀랍게도 중국도 이를 전격 수용해 미국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중이 언제 다투었느냐 싶게 이토록 네 것 내 것 없이 마치 《오징어 게임》의 ‘깐부’처럼 밀월 모습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미·중이 남들 앞에서는 으르렁대고 뒤로는 사이좋게 지내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는 얘기가 나왔다. 저잣거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대국이 서로 ‘쇼’한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이면에서는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1월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블링컨 국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회담을 하고 있다.ⓒAP연합

바이든의 화전양면 전술에 시진핑 당황

정상회담 후 바이든은 12월에 열리는 ‘민주주의 정상회담’에 중국을 빼고 대만을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즉각 격렬히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대만 독립세력’과 같이 불장난하면 끝내 제가 지른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바이든은 또한 내년 2월 열리는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중국의 인권 상황을 거론하며 그 가능성을 더 강조했다. 같은 주에 미 상무부는 중국 기업 12곳에 대해 “미국 안보에 위협”이라며 수출 통제 기업으로 지정했다.

실로 미·중 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모양새다. 이는 최근 양국 간 첨예한 대립을 보인 대만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10월26일 미 국무부는 유엔 회원국들에 대만의 유엔 체제 참여를 지지해줄 것을 촉구하는 공식 ‘언론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대만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도 처음이고, 특히 이를 공식 ‘문서화’한 경우도 처음이다. 대변인 명의가 아닌 국무부 수장인 토니 블링컨 장관 명의로 발표해 권위를 더했다.

당시 많은 이가 의아해했던 것은 바이든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판국에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일까였다. 바이든 또한 정상회담 전에 가진 CNN 미팅에서도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이 방어할 것”이라고 취임 후 처음으로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막상 정상회담이 열리자 시진핑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여전히 지킨다고 말을 바꾸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와 관련한 질문에 “미국은 대만의 현상 유지가 중국과 대만 그리고 미국의 이익과 지역 안보 및 안정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고수한다”고 재천명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널뛰기를 하는 미·중 관계를 보면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영리한 ‘화전양면’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 외교부 기록에 의하면 지난 9월11일 바이든이 시진핑과 전화통화를 했을 때도 바이든은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변경할 의도가 없다”고 시진핑을 안심시킨 후 바로 4일 후인 15일, 미국·영국·호주의 3개국 간 오커스(AUKUS) 동맹 출범을 선언해 중국을 당황케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11월11일 베이징에서 속개된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에서 거수하고 있다.ⓒxinhua 연합

장기적으로 시간은 자기 편이라고 믿는 중국

강대국은 화전양면 전술을 원래 잘 쓴다. 이는 강대국의 기본 전략 매뉴얼에 다 들어있다. 한국에 가장 근본적인 것은 미·중 양국의 갈등이 심화하거나 완화할 때마다 그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화전양면 전술의 목적은 상대방의 혼란을 가중시켜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양국은 서로 견제의 끈을 놓지 않는 가운데 필요할 때만 전략적으로 협력해 왔다. 그때마다 국내에서는 이를 미·중 갈등 종료로 받아들여 낙관론에 치우치곤 했다. 지난해 1월 있었던 미·중 무역 전쟁 ‘1단계 합의’도 유사한 사례다. 합의 후 미·중 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한국은 종종 보이게 될 미·중 갈등 ‘봉합’을 ‘해결’로 오판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도 미·중 모두 서로의 필요성에 따라 열린 것이다. 중국은 시진핑의 내년 3연임을 위한, 미국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표심 관리 목적이 있었다. 상호 중요한 국내 정치 일정을 앞두고 숨 고르기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는 바이든이 미·중 관계의 위험을 관리할 “트레일이 필요하다”고 한 말에 요약돼 있다. 필자가 미국 현지에서 보는 관찰에 의하면, 미국은 민주당·공화당 상관없이 워싱턴 조야 모두가 중국에 대한 강경론에서 일치하고 있다. 다만 대중(對中) 강경책의 속도와 공세에서 전술적 ‘미세 조정’이 있을 뿐이다.

향후 미·중 갈등은 끊임없는 진화 과정을 겪을 것이다. 미·중 갈등은 무역 분쟁으로 시작되었지만, 본질은 ‘무역 전쟁’이 아니라 미래를 둘러싼 ‘전략 전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전망해 보자. 첫째, 미·중 갈등은 ‘봉합 후 악화’ 그리고 ‘다시 봉합 후 다시 악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 포물선을 그리는 장기전 양상이 유력하다. 그리고 그 기간은 한 세대 이상이 될 것이다.

둘째,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은 무역·통상, 첨단기술, 금융, 군사안보, 이념 갈등 등 전역에 걸친 장기적 갈등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엄중함, 신중함, 중장기 전략 모색의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 이슈가 점차 안보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 일부 예측과 달리 중국은 항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미국과의 경쟁에서 자국 쪽에 승산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코로나19 사망자 74만 명을 내고(11월25일 현재) 민주주의의 취약함을 드러내자 바이든의 미국을 기울어가는 패권국으로 보고 있다. 무역·기술 경쟁에서 단기적으로는 밀리겠지만, 장기적으로 ‘시간은 중국 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의 71%에 처음으로 도달했다. 냉전 시기 미국과 경쟁한 소련(러시아)의 경제는 당시 미국의 40% 수준이었다. 미·중 양국의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넷째, 중국이 코로나19 방역과 플러스 경제성장(2.3%)을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국가가 됨에 따라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 중국이 느끼는 ‘국운 상승’의 기회 의식은 더욱 상향 추동되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자국 내 반미(反美) 감정을 전체주의 강화를 위한 여론 조성에 활용하고 있다.

다섯째, 미·중 관계 악화로 한국은 입지가 가장 어려운 국가가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세력 전이’ 과정에서 가장 취약했다. 한국은 한·미 동맹과 중국이 가지는 지정학적 중요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으며, 미·중 사이 선택의 문제는 향후 한국에서 북한 문제를 둘러싼 진영 갈등에 버금가는 가장 사회 분열적인 담론으로 등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수직적 위계질서에 기반한 신중화(新中華) 질서 회복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과거 조공국이었던 한국은 주변국 중 가장 먼저 ‘복귀’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회유’보다는 사드 사태에서 봤듯 보복성 조치로 한국의 의지를 조종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제2위의 패권국은 관용의 여유가 없다.

 

미·중 갈등 장기화할 듯…한국, 장기적 준비해야

차기 한국 정부는 현 정부의 미·중 갈등 선택의 압력을 고스란히 상속받게 될 뿐만 아니라 압력의 강도는 더욱 세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잘사는 사회주의’ 중국을 보면서 가치관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민주주의 내실을 더욱 다지고, 현대 한국 지도자가 한 번도 실행하지 않은 사회 역량의 통합력과 혼란의 시기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중 갈등의 원인이 단순히 무역 분쟁이 아니라 근본적인 이념과 가치관 대립이라는 것을 한국 정부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이 위기를 슬기롭게 타개할 준비가 미흡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지체되었으니 그만큼 준비할 필요성이 더디게 다가왔을 것이다. 미·중 갈등은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이는 한국이 장기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는 이 역시 취약점이다. 한국은 장기전에 약하다.

이성현 

이성현 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미국 그리넬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중국 칭화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페어뱅크센터 방문학자로 연구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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