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에서 마요르카로 이적한 이강인, 신의 한 수였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1 12:0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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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공격형 미드필더 입지 굳힌 이강인, 팀의 송곳 돼
카타르월드컵 본선 유력한 벤투호 재승선도 기대

12월5일 열린 2021~22 시즌 스페인 라리가 16라운드의 최대 이변은 마요르카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 이강인의 왼발에서 출발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원정경기에서 마요르카는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를 제치고 우승에 성공한 아틀레티코는 라리가 최강의 짠물 수비로 유명하다. 그런 팀을 상대로 먼저 실점을 하고도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다니 로드리게스, 안토니오 산체스와 함께 2선 공격진을 구축한 이강인은 오른쪽 측면에 서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윙어 역할을 맡았다. 자신이 선 오른쪽 측면 영역을 중심으로 부드러운 탈압박 플레이를 펼치며 아틀레티코의 그물 수비를 빠져나와 동료들에게 찬스를 열었다. 후반 23분 선제골을 허용하며 무너지는 듯했던 마요르카의 답답했던 경기를 바꾼 것은 이강인이었다. 후반 35분 왼쪽 측면에서 팀이 얻은 프리킥의 키커로 나섰고, 골문 앞으로 날카롭게 감아 올렸다. 이 공은 프랑코 루소의 머리에 정확히 배달되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10라운드 발렌시아 원정 이후 5경기 만에 기록한 시즌 2호 도움이자, 3호 공격 포인트였다.

후반 40분에 교체돼 나올 때까지 85분을 소화한 이강인은 슈팅 2회, 드리블 성공 3회, 동료의 슛으로 이어진 키패스 1회를 기록했다. 이강인을 빼고 수비를 강화하며 홈팀 아틀레티코를 초조하게 만든 마요르카는 역습 한 방으로 결국 승부를 뒤집었다. 일본 축구의 미래로 불리는 구보 다케후사가 역전골을 터트렸다. 이날 마요르카는 한·일 영건의 활약에 힘입어 약 두 달 만에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평점에서 7.2점을 받은 이강인은 팀 내 3위를 기록했다. 구보가 7.1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발렌시아 소속이었던 이강인이 2020년 11월8일 스페인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답답해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팀에서 선발 기회와 출전시간 늘어나며 맹활약

이강인은 지난여름 진통 끝에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던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로 이적했다. 프로 커리어 첫 이적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꾸준한 출전과 함께 더 많은 경기시간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시즌의 3분의 1이 지난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이강인의 선택은 신의 한 수다. 현재까지 16경기 중 이강인은 12경기에 나섰고, 그중 10경기가 선발 출전이다. 이적 당시 리그가 이미 3라운드까지 진행된 상황이었고, 지난 10월 발렌시아 원정 경기에서 퇴장당하며 1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던 걸 고려하면 이강인은 실질적으로 전 경기에 나선 셈이다.

출전시간도 크게 상승했다. 초반 두 경기만 적응 차원에서 후반 막판 교체로 나섰고, 그 이후에는 계속 선발로 뛰었다. 그 두 경기를 제외한 10경기에서의 평균 출전시간은 약 77분이다. 지난 시즌 발렌시아에서 이강인은 리그 24경기에서 1267분을 소화했다. 경기당 평균으로 치면 약 53분이다. 마요르카로 와서 경기당 출전시간이 1.45배 늘어나면서 이강인이 지닌 기술적 자신감도 그라운드 위에서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꾸준한 기회는 주머니 속 송곳에 머물고 있던 이강인의 예리함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발렌시아 시절부터 팀 내 최고로 평가받았다. 마요르카 이적 후에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맹활약하며 화제를 모았다. 문제는 왼발에서 나오는 테크닉만으로는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강인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마요르카의 루이스 가르시아 플라사 감독도 그 점을 강조했다. 그는 입단 초기에 이강인의 재능을 칭찬하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팀의 압박과 수비에 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20세 이하)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이강인의 공격적인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그를 최전방 아래의 처진 스트라이커로 활용했다. 돌려서 말하면 그만큼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팀이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며 단점을 감춘 것이다. 하지만 라리가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모든 선수가 수비 마인드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발렌시아에서도 그런 문제가 이강인의 발목을 잡았다.

마요르카는 지난 두 시즌 동안 승격과 강등을 반복한 전형적인 하위권 팀이다. 대부분의 경기를 수세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수비 전환 상황에서의 적극적인 가담, 그리고 빠른 템포의 연계와 공격 전개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이강인은 완성형 선수로서 성인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요르카에서 이강인은 부족했던 부분을 잘 메워가는 중이다. 아틀레티코전 후 기자회견에서 가르시아 감독은 “이강인이 지금 같은 모습을 늘 보여주면 좋겠다. 최근 그가 빛나는 건 팀을 위해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강인은 공격적인 능력은 이미 다 갖추고 있다. 탈압박, 슈팅, 세트피스 키커, 라인 사이로 들어가 동료에게 공을 연결하는 건 훌륭하다. 오히려 최근 발전하는 건 다른 부분”이라며 수비적인 마인드와 팀을 위한 헌신의 자세가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마요르카의 이강인이 11월27일 스페인 라리가 헤타페CF와의 경기에서 힘차게 드리 블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결해진 템포,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한층 성장

실제로 이강인은 수비 가담 빈도를 발렌시아 시절보다 훨씬 높였다. 90분당 평균 압박 횟수가 14.5회인데 최근 출전한 헤타페, 아틀레티코전에서는 그보다 더 늘어난 평균 17.5회를 기록했다. 파울도 적절히 활용하며, 발렌시아 시절보다 2배 높은 지표를 기록 중이다. 수비 블록 지표도 새롭게 잡힐 정도로 수비 가담 범위가 넓어졌다. 공을 소유하면서 탈압박을 해야 할지, 전진해야 할지, 아니면 간결하게 패스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도 더 명석해졌다. 가르시아 감독은 “영리한 이강인이 우리 팀 시스템 안에서의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칭찬했다.

이강인 역시 마요르카 이적에 대해 현재까지 대만족을 표시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열린 소통을 통해 자신에게 신뢰를 보내주는 가르시아 감독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이강인은 “마요르카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을 것 같아 이적했고, 팀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르시아 감독은 선수들과 정말 많이 소통한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나도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중”이라며 발렌시아 시절보다 훨씬 홀가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이강인의 성장은 한동안 멀어진 A대표팀으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요소다.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 감독 역시 공격적인 능력에 비해 수비가 아쉬운 이강인 활용에 딜레마를 느꼈다. 이강인은 마지막 A매치였던 지난 3월 한·일전에서도 세 차례 공을 뺏긴 뒤 모두 실점이 반복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전체가 공을 소유하고, 상대를 압박해야 하는 벤투 감독의 축구에서는 공격과 수비가 고루 뛰어난 황인범·이재성이 더 중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분위기로 이강인이 단점을 메워간다면 카타르월드컵 본선행이 유력한 벤투호 재승선 가능성은 살아난다. 11월 월드컵 최종예선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포르투갈에서 휴식 중인 벤투 감독은 유럽파 관찰을 병행 중이다. 월드컵 예비 명단에 들어있는 이강인 역시 여전히 벤투 감독의 레이더망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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