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푸이그, KBO 입성만으로 확실한 ‘흥행 카드’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8 12: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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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책임감·MLB 재입성 동기부여, 달라졌을 것” vs “다혈질인 데다 풀타임 체력도 문제” 전망 엇갈려

“모두 안녕하십니까.” 야시엘 푸이그(31)가 자신의 SNS에 한글로 남긴 말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예전 LA 다저스에 몸담고 있을 때 함께 더그아웃에서 장난치던 그 푸이그, 맞다. 푸이그는 최근 키움 히어로즈와 100만 달러(약 11억8000만원)에 계약했다. KBO리그 1년 차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이 100만 달러다. 푸이그는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1000만 달러 연봉을 받던 선수였다. 연봉의 10분의 9를 깎이면서까지 그는 왜 한국행을 택했을까.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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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과 푸이그 이해관계 맞아떨어지며 계약 일사천리 진행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도 활약했던 푸이그는 2012년 쿠바를 탈출해 망명한 뒤 다저스와 7년 4200만 달러 계약을 했다. 쿠바 선수 역사상 최고액 계약이었다. 그는 빅리그 등장 때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3년 6월 데뷔했는데 타율 0.436, 7홈런 16타점의 월간 기록으로 이달의 신인상, 최우수선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성공이 독이 됐던 것일까. 화려한 데뷔 시즌(타율 0.319, 19홈런 42타점)을 보낸 이후 성적이 뚝뚝 떨어졌다. 구단 안팎에서 잡음도 흘러나왔다. 불성실한 훈련 태도로 입길에 올랐고, 사생활로도 말썽을 일으켰다. 팀 케미스트리를 망가뜨린다는 이유로 다저스 대표 모범생 클레이튼 커쇼가 푸이그의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일까지 있었다.

2017 시즌 8번 타순에 배치되며 28홈런으로 반등했지만 2018년 말 기어이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다. 2019 시즌 도중 다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했는데, 투수 앞 땅볼을 친 뒤 1루로 달리지도 않고 더그아웃으로 곧장 들어가 관중의 야유를 받았다. 천부적인 야구 재능을 갖고 있지만 경기 때는 제멋대로 행동해 온갖 구설을 몰고 다니는 ‘악동’이었다.

푸이그는 2019 시즌 이후 자유계약(FA) 신분이 됐다.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코로나19 시대가 닥쳤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와 끝내 무산됐다. 메이저리그가 단축 시즌(60경기)으로 진행된 까닭에 또 다른 구단과는 계약할 수 없었다.

정상 시즌이 된 올해 그는 다시 빅리그 문을 두드렸으나 그를 찾는 구단이 없었다. 멕시칸리그 등에서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 복귀를 노렸으나 노사 대립으로 현재 직장폐쇄가 이어지는 터라 여의치 않다. 그가 미국 외 리그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다. KBO리그에서 맹활약한 뒤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에릭 테임즈와 다린 러프 사례도 참고가 됐다. 메이저리그로 가는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키움 히어로즈의 ‘진심’도 푸이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직접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날아가 푸이그를 설득했다. 무작정 그를 찾아가 “한국 키움이란 팀에서 왔는데 한국에 올 생각이 없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푸이그 또한 풀 시즌을 뛰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됐고, 2~3시간 동안 협상이 이뤄졌다. 한때 류현진과 팀 동료였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류현진이 한국 프로구단(한화 이글스)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올해 제대로 된 외국인 타자 없이 시즌을 치렀던 키움은 ‘한 방’을 쳐줄 외국인 타자가 절실했고, 푸이그는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위한 도약대로 풀시즌을 치를 팀이 필요했다. 키움과 푸이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푸이그가 신시내티 레즈 소속이던 2019년 4월25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서 혀로 방망이를 핥는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AP 연합

3번 이정후, 4번 푸이그, 5번 박병호…히어로즈의 퍼즐

전성기 때 기량만 생각하면 푸이그는 키움의 타선을 완성해줄 퍼즐 조각이 충분히 될 수 있다. 올 시즌 타격왕 이정후를 3번으로 두고 4번에 푸이그를 배치했을 때 나타날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직 FA 신분이기는 하지만 박병호가 팀에 잔류할 경우 박병호를 4번 타자 중압감에서 해방시켜줄 수도 있다. 하지만 푸이그의 현재 능력치가 문제다. 그의 능력치는 ‘과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고형욱 단장은 “배트 스피드가 살아있다”는 평을 남겼으나, 어찌 됐든 푸이그는 2년 동안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다. 실력과 함께 체력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국내 한 해설위원은 “푸이그의 예전 모습으로는 기대가 되지만 KBO리그에서 변화구에 얼마나 대처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려면 빠른 공 대처 능력이 중요하지만, KBO리그에서는 포크볼·스플리터 등 나쁜 공을 얼마나 참아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일례로 시카고 컵스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했던 내야수 에디슨 러셀도 작년에 키움 유니폼을 입었으나 성적 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푸이그의 다혈질적인 모습도 입길에 오른다. 푸이그는 메이저리그에서 그라운드 난투극 등에 몇 차례 연루됐다. 고 단장은 “푸이그의 최종 꿈은 메이저리그 재입성이다. 한국에서 플레이하다가 논란을 일으키면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면서 “자신이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했다. 부와 인기를 한 번에 쥐면서 갈피를 못 잡았던 20대 때와 달리 30대의 푸이그는 책임질 가정도 있어 마음가짐이 옛날과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야구계에서는 과거 국내에서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던 펠릭스 호세를 떠올린다. 호세는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2001년 홈런 2위 등의 성적을 냈으나, 그라운드 안팎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디지털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야구장 밖 사생활은 감춰졌으나 요즘은 낮말(낮행동)도, 밤말(밤행동)도 온라인에서 여과 없이 퍼진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김병현은 12월10일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푸이그에 대해 “키움의 자유스러운 팀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적응을 잘할 것 같다”면서 “메이저리그에서도 잘했기 때문에 홈런 20개 이상은 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동기부여를 확실히 해주면 잘하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푸이그는 키움 입단 인터뷰에서 “내년 시즌은 야구라는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여느 해와 다를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천방지축이던 ‘야생마’는 과연 KBO리그 ‘영웅’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일단 그의 등장만으로도 내년 시즌 KBO리그는 확실한 흥행 카드를 갖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푸이그는 전지훈련에 앞서 1월말 즈음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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