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머리 언어’, 윤석열의 ‘가슴 언어’ [쓴소리 곧은 소리]
  •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oxen7351@naver.com)
  • 승인 2021.12.18 10: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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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의 차이 나는 말값…李는 상황 따라, 尹은 제 생각을 표현
이재명 지지자든 비판자든 그가 뭘 하겠다는지 모르게 돼버려

급기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말하는 방식에 대해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12월15일 같은 당 5선 이상민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여러 문제를 들어 이재명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중 가장 공감 가는 대목은 이 말이었다.

“호남 가서는 호남에 어쩌고저쩌고 말하고 또 대구 가서는 어쩌고저쩌고 너무 지역주의에 편중돼 있는 이야기를 하면 결국 우리가 사그라드는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는 이 후보가 대구·경북 지역 순회 방문 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과를 이야기하며 경제는 잘했다고 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에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부산 방문 시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을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가 호남과 좌파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왼쪽)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2월11일 경북 구미시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지역 대학생과 함께 나누는 대구·경북의 미래 비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2월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국회사진취재단

광주에선 전두환 비석 밟더니 대구 가선 전두환 공 인정

두 후보의 말은 내용은 같지만 맥락은 다르다. 그 맥락 차이를 통해 우리는 두 사람 간 말하기 차이를 알 수 있다. 윤 후보 발언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인사를 정치라고 불렀다. 말의 정확성이 떨어진 것이다. 둘째, 지금 분위기가 굳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소환해야 할 시점이 아니었다. 속된 말로 분위기 파악을 못 한 것이다. 그럼에도 윤 후보 말은 진심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뒤에 사과는 했지만 그 생각은 그대로 갖고 있을 것이다.

이 후보는 윤 후보 발언 파동이 한창이던 10월22일 광주 5·18묘지를 찾았을 때 “광주는 제 사회적 어머니”라며 그곳에 설치된 ‘전두환 비석’을 밟으며 웃었고, 이어 윤 후보를 염두에 둔 듯 “(그분은) 왔어도 존경하는 분이니 못 밟겠네”라고 비아냥댔다.

윤 후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한 적은 없다. 그 발언이 전부다. 그런데 이 후보는 12월12일 대구·경북 방문 시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도 공과가 병존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삼저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은 성과인 게 맞다.”

윤 후보는 실수가 담겼지만 전언 형식이었고, 이 후보는 스스로의 생각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같은 내용의 말을 두고 결국 윤 후보는 광주를 찾아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게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어찌 보면 실언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나 발언 내용만 보면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는 이 후보는 같은 진영에서 비판이 제기되자 “모든 게 100%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삼저 호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름 능력 있는 관료를 선별해 맡긴 덕분에 어쨌든 경제 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라며 끝내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이 후보의 말은 머리의 언어다. 반면 윤 후보는 가슴의 언어다. 머리의 언어는 상황을 중시하고, 가슴의 언어는 자기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특성이다. 또 그것의 선거 유불리도 당시 선거 상황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느냐 정치적 한풀이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그런데 머리의 언어는 차갑다. 이 후보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 시절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여영국 “이재명의 차가운 말 한마디, 그의 인격 자체”

오히려 이 후보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도 공격을 받는다. 이 후보는 12월7일 서울대 강연에서 “신울진 원자력발전소 3, 4호기 건설을 재고할 수 있다”고 발언해 환경단체 ‘탈핵대선연대’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윤 후보 또한 “탈원전 정책은 무지가 부른 재앙”이라고 발언해 나란히 비판을 받았다.

이 후보는 11월10일 관훈토론회에서 진보진영 금기어에 속하는 ‘노동의 유연성’을 언급하고 대기업 강성 노조를 정면으로 비판해 민노총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진보진영을 대하는 언어 또한 냉랭하다. 12월7일 강연차 서울대를 방문했다가 “차별금지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사과하라”는 성소수자 청년들과 마주쳤다. 이때 웃음 띤 얼굴로 청년들의 요구를 듣고는 “다 했죠?” 한마디만 남기고 강연장으로 들어갔다. 마치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식이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다 했죠? 차가운 이 한마디는 이재명 후보의 인격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말값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살아온 이력의 총합이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된 이 후보의 계속된 말바꾸기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 과정에서 이 후보가 잃은 것은 유능한 ‘정책 전문가’ 이미지다. 또 이 후보는 일찍부터 기본소득이 1호 공약이라고 주장하다가 7월경 “1호 공약은 전환적 공정 성장이고 기본소득은 한 장치”라며 물러섰고, 11월 선대위가 출범하자 박정희까지 언급하며 “1호 공약은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의 지지자건 비판자건 이 후보가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거철 후보의 말은 정치인 언어보다는 유세객 언어에 가깝다. 따라서 공감 못지않게 ‘솔깃함’ 또한 그 말에 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점에서 이 후보는 어쩌면 윤 후보를 앞서는지 모른다.

최근 터져 나온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 허위 경력 기재 문제는 윤 후보가 화끈하게 머리 한 번 숙이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초점 잃은 대응으로 점점 비판을 키우고 있다. 반면 12월16일 조간에 이 후보 장남 불법도박 문제가 터져나오자 이 후보는 그 즉시 사과했다. 즉시 소화기로 꺼버린 것이다. 같은 날 윤 후보는 김씨 문제의 불길을 여전히 잡지 못하고 있었다.

불법 경계선을 오가며 치밀하게 계산된 언어를 구사하는 이 후보가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대선판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는 누구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문화부장을 지냈다. 2016년부터 논어등반학교를 세워 《태종실록》(전18권)과 반고의 《한서》를 번역했다. 고전을 통한 현대 리더십의 정립을 목표로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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