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목표가 1~2개? 엄살일까, 현실일까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3 10: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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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쇼트트랙 악재 등 냉정한 현실”
선수들 “우린 개인 목표로 대회에 임한다” 자신감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6개, 2014 소치동계올림픽 3개, 2018 평창동계올림픽 5개. 그런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의 한국 선수단 금메달 목표가 1~2개(종합 15위)다. 금메달 수만 놓고 보면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6개)보다도 훨씬 적고, 2002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때(2개) 수준으로 회귀한 목표치다. 한국은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 알베르빌동계올림픽 때부터 대회마다 금메달을 2개 이상 따왔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봤듯이 도전, 그 자체만으로 박수를 받는 시대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는 한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 획득 메달 수는 그 나라 스포츠 수준을 말해 주는 객관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에 도쿄올림픽을 겪어본 대한체육회의 엄살일까, 아니면 실제 한국 동계 스포츠 종목이 처한 현주소일까.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 다섯 번째)과 선수단이 1월5일 베이징올림픽 G-30 미디어데이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 다섯 번째)과 선수단이 1월5일 베이징올림픽 G-30 미디어데이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효자종목’ 쇼트트랙 성적이 관건…최민정·황대헌에 기대

일단 대한체육회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많은 금메달을 따기 어려운 환경”(이기흥 회장)이라는 판단이다. 2020 도쿄올림픽 때를 돌아보면 수긍이 되기도 한다.

도쿄올림픽 개막 전에 한국은 금메달 7~8개, 종합 10위권을 겨냥했지만 태권도·유도·레슬링에서 우승자를 전혀 배출하지 못하면서 금메달 6개(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16위에 올랐다. 코로나19 탓에 국외 훈련이 제한되고 국제대회 참가 또한 어려워지며 상대를 파악하기 힘들었던 측면이 있다.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 준비도 도쿄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

핵심은 역시 하계올림픽의 태권도·양궁 같은 존재인 쇼트트랙에 있다. 주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얼마나 많은 메달을 따느냐에 한국의 성적이 달려 있다. 2018년 평창대회 때까지 한국은 쇼트트랙에서만 24개 금메달(은·동메달 합해 총 48개)을 땄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에서 딴 금메달(31개·총 70개)의 77.4%에 이른다.

그런데 쇼트트랙에 그늘이 드리웠다. 2018년 평창대회 때도 3개의 금메달을 따냈던 쇼트트랙이지만 이후 여러 내홍에 시달렸다. 평창 금메달리스트였던 임효준(26)이 후배와의 불미스러운 일로 중국으로 귀화했고, 지난해 막판에는 심석희(25)의 사적인 메신저 내용이 공개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심석희는 쇼트트랙 대표팀 선발전 때 여자부 1위를 했던 터라 타격이 더 크다. 심석희는 국가대표 2개월 자격정지로 베이징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

평창 2관왕인 최민정(24)이 건재하지만 쇼트트랙 특성상 팀플레이 없이 메달을 따기는 벅차다. 가뜩이나 쇼트트랙 최대 맞수인 중국의 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중국은 한국 대표팀 출신의 김선태 감독과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을 코치로 선임해 단단히 벼르고 있다. 중국은 지금껏 쇼트트랙에서 한국에 이어 가장 많은 올림픽 금메달(10개·총 33개)을 따낸 바 있다.

한국은 쇼트트랙에서 여자 1500m(최민정), 여자 3000m 계주, 남자 500m(황대헌), 남자 5000m 계주 등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황대헌(23)은 2021~22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1~4차 월드컵에서 금메달 3개(1000m 2개, 500m 1개)를 수확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여기에 이번 올림픽에 최초로 도입되는 혼성 2000m 계주에서도 한국은 초대 챔피언을 노린다. 에이스인 최민정과 황대헌의 역할이 커졌다. 최민정은 “베이징에서 ‘역시 대한민국은 쇼트트랙’이란 말을 듣도록 잘 준비하겠다”는 다짐을 보인다.

쇼트트랙 외에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겨냥하고 있는 종목은 ‘배추 보이’ 이상호(27)가 기대감을 드높이고 있는 스노보드 알파인이다. 평창 은메달리스트인 이상호는 이번에 한 단계 더 도약을 노린다. 시즌 성적도 꽤 좋다. 이상호는 이번 시즌 7차례 참가한 월드컵 개인전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2010년 밴쿠버대회 때부터 괄목할 만한 성적을 보여온 스피드스케이팅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나마 평창 때 17세의 나이로 시상대(남자 팀추월 은메달)에 섰던 정재원(21)의 기량이 물이 올라있다. 평창 때 이승훈(34)의 페이스메이커였던 그는 베이징대회에서는 대표팀 에이스로 매스스타트에 나선다. 정재원의 세계 순위는 4위. 스피드스케이팅은 당일 컨디션에 따라 성적 변동이 심한 만큼 경기 당일까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가뜩이나 그의 옆에는 세 번의 올림픽에서 5개의 메달을 따낸 관록의 이승훈(세계 5위)이 있다.

ⓒ연합뉴스
1월5일 충북 진천선수촌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대표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한체육회 목표는 선수 개개인에 큰 의미 없어”

한국은 베이징동계올림픽에 60명 남짓한 선수단을 파견한다. 2010년 밴쿠버대회(46명) 이후 가장 규모가 작다. 평창(146명), 소치(71명) 때와 비교해도 많이 줄었다. 쇼트트랙 등에서 출전권을 적게 따내면서 소규모 선수단이 꾸려졌지만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여느 때보다 단단하다. 대한체육회의 소극적 목표에도 반론을 제기한다.

평창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은메달리스트 김보름(29)은 “선수들은 모두 개인 목표를 세우고 대회에 임한다. 대한체육회에서 설정한 목표는 선수 개개인에게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목표는 목표일 뿐이라는 얘기다.

여자컬링 ‘팀 킴’의 리드 김선영(29) 또한 “대한체육회가 예상 금메달 개수를 적게 잡았다고 우리가 메달을 못 따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담감이 줄었다. 실망하지 않고 더 집중해 메달 획득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평창 때 컬링 대표팀의 은메달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선수들의 집중력이 겨울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2010 밴쿠버대회 때도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등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긍정의 바이러스가 선수단 전체에 번져 파란을 일으켰다. 단기전 결과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가뜩이나 아시아권에서 하는 올림픽이라 시차나 환경 적응도 어렵지 않다.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땀으로 물들 2022년 2월. 쇼트트랙 베테랑 곽윤기(33)는 이런 말을 했다. “코로나19로 훈련이 아주 힘들었지만 앞서 열린 도쿄올림픽을 보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힘이 많이 됐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힘을 얻은 이는 비단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표팀 선수들만이 아니다. 일반 국민 또한 대표팀 선수들의 열정에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이젠 베이징이다. 메달 획득 여부를 떠나 고난의 바이러스 시대에 땀 흘려온 선수들과 함께 거센 심장박동을 느낄 시기가 오고 있다. 15개 종목에 108개 금메달이 걸려 있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은 2월4일 개막해 22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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