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영웅들의 가슴에 왜 오성홍기가?
  • 김경무 스포츠서울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8 16: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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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한국 대표팀 탈락 후 러시아 귀화 선택… 지금은 중국 코치로 
임효준과 김선태 감독은 성추행 구설 및 폭행 방조로 중징계 받고 중국행

한국 쇼트트랙 영웅들이 바깥으로 떠돌고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 있을 법한 ‘레전드’나 ‘영웅’들이 하필이면 경쟁국인 중국의 오성홍기를 달고 자신을 키워준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마치 총을 겨누는 모양새다. 2월4일 시작돼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3명의 한국인이 한·중 두 나라 사이에서 핫이슈가 됐다. 그들은 왜 대한민국에서는 자리 잡지 못하고 떠난 것일까. 2006 토리노올림픽 3관왕 안현수(36·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와 2018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효준(26·중국 이름 린샤오쥔), 그리고 4년 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총감독이었던 김선태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47) 등이 그들이다.

ⓒ연합뉴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을 사흘 앞둔 2월1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중국 대표팀 김선태 감독(왼쪽 세 번째)과 안현수 기술코치(왼쪽 두 번째)가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올림픽 출전 욕심 때문인가, 돈 때문인가?

“안현수가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이유는 있다. 한국에 못 들어오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 연봉 5억원이라는 거액을 줬기 때문에 기술코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선태 감독의 두 배를 받고 있다. 돈 많이 주니까 간 것이다.” 한국 빙상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가 한 말이다. 그는 “한국도 이제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윤홍근 회장 취임으로 정상화됐으니 ‘안현수 감독’ 취임 운동도 해볼 만하다”며 “그러나 ‘젊은빙상연대’ 등 내부 반대도 만만치 않아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2006년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한국에 금메달 3개를 안겨주며 ‘한국 쇼트트랙 황제’라는 소리를 듣던 안현수. 그는 이후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고, 아들만을 생각하는 부친의 발언 때문에 대한민국 빙상계를 들쑤셔놨던 논란의 레전드다. 한때 그는 한국 빙상계 파벌의 희생양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고, 어찌 보면 그것이 그가 한국에 자리 잡지 못하고 러시아로, 중국으로 떠도는 처지가 된 이유일 수도 있다.

토리노 이후 안현수는 심각한 부상 때문에 2010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쇼트트랙 인생이 꼬이게 된다. 지난 2008년 1월 왼쪽 무릎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4차례의 수술을 받는 등 재활의 시간을 보내다 이듬해 국가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이다. 밴쿠버행이 좌절된 안현수는 설상가상으로 2010년 12월 그의 소속팀이던 성남시청 쇼트트랙팀이 해체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는 2011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로 처지면서 4위까지 주어지는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결국 그는 러시아 귀화의 길을 택한다.

한국에서 설 자리를 잃은 판에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안현수 같은 세계적 스타가 필요했다. 안현수로부터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쇼트트랙에 관한 비장의 기술, 훈련방식 등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는 1억8000만원의 연봉에다 통역사까지 제공하는 등 특급대우를 해줬다.

안현수는 “내 가슴에 어느 나라 국기가 달리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운동에 집중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라고 귀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그런 안현수는 소치올림픽에서 토리노에 이어 또다시 3관왕에 오르며 자신의 건재를 각인시켰다. 안현수가 러시아 국기를 달고 올림픽에서 다시 큰 업적을 이루자 국내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안현수 선수가 다른 나라에서 선수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문체부 감사에서 따졌고,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치올림픽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안현수의 역할은 끝났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IOC가 러시아의 도핑 파동을 이유로 선수들의 참가 불허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안현수도 도핑 때문에 평창올림픽에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것을 금지당하는 111명의 러시아 선수 명단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안현수는 지난 2020년 은퇴를 선언한 뒤 이후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기술코치가 돼 또다시 한국 타도의 선봉에 서게 됐다. 중국에서 그는 안셴주(安賢洙)라 불린다.

임효준은 한 번의 실수로 쇼트트랙 인생이 꼬인 대표적 사례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남자 1500m 금메달을 딴 그는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일곱 번의 수술을 이겨낸 그의 인간 승리에 대한 찬사도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2019년 6월 충북 진천선수촌 대표팀 훈련 때 줄을 타고 매달려 있는 후배 선수 황대헌의 바지를 벗기는 장난을 치다 그것이 화근이 돼 추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절친한 선후배 사이이기도 했지만 대표팀 내 경쟁자이기도 했던 황대헌이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심각하게 성적 모욕을 당했다며 폭로한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을 향해 탄탄대로를 걷던 임효준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게 돼 선수생활에 중대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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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임효준 선수ⓒ연합뉴스

지나친 장난, 한 번의 실수에 인생 꼬인 임효준

당시 빙상연맹 관리위원이었던 한 인사는 “임효준이 장난으로 했던 것인데 일이 커졌다. 당시 빙상연맹에 어른이 있어 잘 수습했으면 임효준은 지금 황대헌과 함께 최강 멤버로 이번 베이징올림픽에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당시 대한체육회에서 파견된 관리위원들이 언론보도에 너무 민감해 과도한 징계를 내린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졸지에 성추행자로 낙인찍힌 임효준은 결국 2020년 6월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귀화해 자신의 새로운 쇼트트랙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징계기간이 길어져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은 꿈을 이어나가기 어렵게 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임효준은 이번 베이징올림픽 출전의 꿈도 무산됐다. 선수가 국적을 변경했을 때는 예전 국적으로 참가한 국제대회로부터 3년이 지나야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IOC 규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귀화 사유였던 그의 성추행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로서는 이미 귀화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 뒤였다.

임효준은 1월29일 SNS를 통해 중국 귀화 뒤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했는데 “중국을 위해 많은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 무대는 밟지 못했지만, 임효준은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황대헌을 향해 도발하는 듯한 글을 SNS에 올리는 등 여전히 많은 논란을 만들고 있다. 중국 매체의 한 기자는 “임효준은 중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26 밀라노동계올림픽에선 중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많은 응원을 받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2월11일 혼성 2000m 계주 결승에서 중국이 금메달을 일궈낸 뒤 김선태 감독이 중국의 판커신을 껴안고 좋아하던 장면은 TV를 통해 지켜보던 국내 팬들을 씁쓸하게 했다. 판커신은 한국 쇼트트랙 선수와 팬들에게는 ‘나쁜 손’으로 악명 높은 중국 여자 간판스타였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2018 평창올림픽 때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총감독으로 금메달 3개를 일궈내며 영웅이 된 지도자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직전 당시 쇼트트랙 대표팀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 폭행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방조한 당시 김선태 총감독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김 감독은 그 책임 때문에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행은 지도자로서 생명을 유지하게 된 절묘한 도피처가 됐다. 김 감독은 중국에서 특급대우를 받으면서 중국 선수들을 지도했고, 쇼트트랙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일궈내며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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