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카메라, ‘新영상의 시대’를 켜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7 10: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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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X박찬욱, 영화 《일장춘몽》으로 손잡아
스마트폰 업계가 스타 감독과 협업에 나서는 이유

‘거장’이 ‘가장 작은 카메라’로 특별한 영화를 찍었다. 영화 《일장춘몽》이다.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을 통해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구축한 박찬욱 감독이 애플과 손잡고 영화를 내놓았다. 두 귀신이 관을 두고 싸우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이 작품은 박 감독의 첫 사극이자, 판소리와 마당극을 버무린 새로운 형태의 단편영화다. 이 실험적인 시도를 가능하게 한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아이폰으로만 촬영된’ 영화. 이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이미 스마트폰 카메라가 견인하는 ‘영상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의 《일장춘몽》은 바로 이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박찬욱 감독이 애플과 손잡고 내놓은 영화 《일장춘몽》의 스틸 컷 ⓒ Apple
박찬욱 감독이 애플과 손잡고 내놓은 영화 《일장춘몽》의 스틸 컷 ⓒ Apple
《일장춘몽》의 촬영은 아이폰 13 Pro 카메라로 이뤄졌다. ⓒ Apple
《일장춘몽》의 촬영은 아이폰 13 Pro 카메라로 이뤄졌다. ⓒ Apple

영화 제작 지원으로 촬영 기술 강조

애플은 아이폰13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할리우드가 손안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자동 포커싱 전환 기능, 시네마틱 모드 등 영화 촬영에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광고에 노출시켰다. 지금 스마트폰 업계를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 ‘카메라’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은 이제 익숙하다. 유튜브에, 개인의 SNS에 직접 찍은 영상이 지금도 업로드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스마트폰 카메라다. 대중은 카메라를 따로 소유하는 대신에 카메라 역할을 잘해줄 스마트폰을 찾는다. 그래서 이 시대의 스마트폰들은 렌즈 수를 늘려가며 카메라로 격돌하고, 그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와 손잡는다. 영화 제작을 지원하면서 촬영 기술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미디어의 진화’에 따라 영화 촬영 방식은 변해 왔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영화계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배우 유해진은 《일장춘몽》 제작보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갈 때, 익숙한 필름 소리가 없어지고 카메라의 몸집도 작아졌다. 메모리칩도 생소했다.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는 35mm 필름카메라가 대세였고, 2000년대에는 디지털카메라가 상용화됐다. 3D카메라를 넘어 휴대폰으로도 영화를 찍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2010년. 시초는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이었다. 영화 《말아톤》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 등 12명이 아이폰으로 단편영화를 촬영해 공개했다. 다만 영화의 모든 제작 과정이 ‘폰카’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을 기점으로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홍경표 감독이 2010년 9월26일 서울 신사동 촬영 현장에서 아이폰을 이용해 촬영하는 모습 ⓒ 연합포토
2010년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을 기점으로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홍경표 감독이 2010년 9월26일 서울 신사동 《Bang!》 촬영 현장에서 아이폰을 이용해 촬영하는 모습 ⓒ 연합포토
2011년 극장에서 개봉한 《파란만장》은 아이폰4로 촬영된 영화다. 이 영화는 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 Apple
2011년 개봉한 《파란만장》은 아이폰4로 촬영된 영화다. ⓒ Apple
《파란만장》은 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 Apple
《파란만장》 스틸 컷. 《파란만장》은 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 Apple

스마트폰 영화 《파란만장》이 이뤄낸 쾌거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화가 빛을 본 건 이듬해. 박찬욱 감독을 통해서였다. 《파란만장》이란 제목의 이 단편은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모두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만들어졌다. 이 30분짜리 스마트폰 영화의 실험적인 시도는 극장 개봉까지 연결됐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다. 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대상인 황금곰상을 거머쥔 것이다. 현지에서는 “작품성은 물론 촬영 효과와 영상기법 측면에서도 뒤지지 않고 돋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영화의 명성은 아이폰 판매사인 KT에 막대한 마케팅 효과까지 안겨줬는데, 실제로 《파란만장》이 프랑스 칸국제광고제에 초대되면서 ‘마케팅 캠페인의 새로운 선례’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럼 지금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화는 그때와 또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1년 《파란만장》은 아이폰에 일반 DSLR 렌즈를 장착해 촬영됐고, 앱을 통해 화면을 조절하는 과정도 거쳤다. 《일장춘몽》은 ‘폰카’ 그대로 촬영됐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처음에는 스마트폰에 카메라 렌즈를 끼워서 촬영하려다가, 기존에 존재하는 시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폰 카메라가 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시네마틱 모드 등을 이용해 아무 장치 없이 제품 그대로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화질도 개선됐다. 《파란만장》은 큰 화면으로 보기에 적합한 화질의 영화가 아니었다. 제작 과정에서도 화질이 깨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트릭을 써야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박 감독은 “《일장춘몽》을 큰 모니터로 봐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글로벌 감독에 갤럭시 지원 나선 삼성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의 카메라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이 최근 공개한 갤럭시 S22시리즈는 역대 S시리즈 중 최다 사전판매량을 기록했다. 삼성은 2월10일 진행된 ‘갤럭시 언팩 2022’ 행사에서 AI 기술을 이용해 야간에도 피사체를 기록하는 나이토그래피, 플레어 현상이나 빛 잔상 없이 선명한 촬영이 가능한 슈퍼클리어글래스(S22울트라) 등 특화된 카메라의 기능을 소개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스마트폰 자체의 ‘스펙’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의 관심이 향하는 부분 중 하나는 카메라다. 온라인에서도 아이폰과 갤럭시의 카메라 성능을 비교하는 글과 영상이 줄을 잇는다.

삼성도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을 내세우는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 《언택트》는 갤럭시 S20과 노트20으로 촬영됐다.
삼성도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을 내세우는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 《언택트》는 갤럭시 S20과 노트20으로 촬영됐다. ⓒ 삼성전자

이미 영상이 가장 강력한 스토리텔링 도구라는 것을 아는 삼성도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을 내세우는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다. 2020년 왓챠를 통해 공개한 《하트 어택》은 갤럭시 S20울트라로 촬영된 작품이다. 충무로의 신예 이충현 감독과 배우 이성경이 참여한 영화로, 본편은 물론 예고편과 메이킹필름, 포스터까지 모든 촬영을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진행했다. 박찬욱 감독과 애플처럼, 스타 감독과 삼성도 손을 잡았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으로 유명한 김지운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 《언택트》를 통해서다. 비대면이 일상인 사회상을 반영한 이 로맨스 영화의 주연은 배우 김고은과 김주헌이 맡았다. 일부 특수촬영을 제외하고 장면 대부분이 갤럭시 S20과 노트20을 활용해 촬영됐다.

지난해 삼성은 전 세계 영화감독들과 협업해 갤럭시 S21울트라로 촬영한 영화를 제작·공개했다. 갤럭시 사용자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Filmed #withGalaxy’ 캠페인이다. 글로벌 영화감독들과의 협업을 통해 만드는 영화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전문적인 영화 촬영 능력까지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결과물과도 같다. 영상미와 감각적인 연출로 유명한 영국의 거장 조 라이트 감독이 촬영한 《프린세스 앤 페퍼노스》, 중국의 샤모 감독이 시골 학교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 《키즈 오브 파라다이스》 등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폰카 촬영’, 제작자 성향과 촬영장 분위기도 바꿔

이 같은 다양한 영화적 시도는 단순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홍보하는 성격에 그치지 않는다. 스마트폰 촬영이 실험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며, 일반인들의 촬영과 창작에 대한 장벽을 낮췄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하나 더.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촬영한다는 것은, 제작자들의 성향과 촬영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는 요소다. 스마트폰 촬영은 감독들이 기존에 고수해 오던 작품 스타일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장춘몽》은 박찬욱 감독의 첫 사극 작품이다. 삼성과 함께 《언택트》를 내놓았던 김지운 감독은 “본격 멜로 드라마 장르는 사실상 처음”이라고 했다.

특히 휴대가 간편한 스마트폰 카메라의 특성상 다양한 촬영 방식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한데, 《하트 어택》의 이충현 감독은 “큰 카메라나 장비로 할 수 없는 앵글이나 움직임을 잡아내면서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농구공에 스마트폰을 감아서 공중으로 날리거나, 스마트폰을 매달아 촬영하는 등의 방식이 영화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현장 분위기도 바꾼다. 카메라에 집중된 현장의 권력이 변화된 촬영 방식에 따라 분산된다는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언택트》 공개 이후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장편 극영화 현장은 카메라의 컨디션에 집중돼 있다. 현장의 모든 권력이 카메라에 있다고 느낀 적도 있다. 이번엔 카메라가 작아 기동성도 빠르고 조작도 쉽다 보니 극영화 현장에서 카메라가 주는 권위나 위엄에서 한결 자유롭고 가벼운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언급했다. 박찬욱 감독 역시 《파란만장》을 촬영한 이후 “누구나 영화를 쉽게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을 확인하게 해준 영화”라며 “스마트폰이 촬영장에서 기존 권력을 분산시켜 수평적인 촬영 환경을 만들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 휴대폰 카메라의 역사는

휴대폰에 카메라가 들어온 것은 2000년대 이후다. 삼성전기에 따르면 2000년대 초 휴대폰 카메라의 화소는 불과 30만 화소에 불과했고, 휴대폰에는 사진 20장 정도만 저장할 수 있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도 혁신으로 여겨지던 시기. 당연히 영상, 그것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카메라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후 고정 초점만 가능했던 카메라를 2000년 이전의 역사 저편으로 넘겨버렸고, 자동 초점의 시대가 열렸다. 2012년 이후에는 일명 ‘손떨방’이라고 불리는 OIS 기능을 탑재한 휴대폰 카메라가 등장했다. 2014년 이후부터 듀얼(2개)을 넘어 트리플(3개), 쿼드(4개)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영상 촬영도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제 스마트폰 카메라는 1200만 화소는 기본, 1억 화소 이상까지 넘어서는 ‘스마트 카메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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