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운동권 정치는 끝났다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1 09:3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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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사냥꾼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보고 어떤 사냥감이 지나갔는지 알아챈다고 한다. 꼭 노련하지 않더라도 이재명 후보의 낙선을 보고 40년 운동권 정치의 파산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운동권 정치는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에 이어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40년 민주화 시대를 주름잡았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일까. 운동권 정치가 독재타도와 인권회복 투쟁을 벌여 민주화에 끼친 공은 컸다.

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아 기득권 통치자가 된 뒤의 모습은 ①끼리끼리 나눠먹는 패거리 정치 ②자기들만의 정의에 취해 고무줄처럼 가치 기준을 바꾸는 내로남불 ③이념에 집착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비현실적인 정책실험 ④일단 거짓말을 하고 들통나면 남을 탓하거나 오히려 상대한테 뒤집어씌우는 언어 희롱으로 점철됐다.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기의 압권은 아마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주장일 것이다. 적어도 대장동 사업의 설계자인 이 후보가 입에 담을 말은 아니었다. 과거 운동권 정치가 민주화에 성공한 것은 사실에 기반한 대담하고 조직적인 캠페인 덕분이었는데 요즘 기득권이 된 운동권 정치인들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선전 캠페인만 잘하면 대중을 속일 수 있다는 나쁜 버릇을 들였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를 밝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를 밝히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말의 파산, 신뢰의 상실로 40년 만에 붕괴

위 ①②③④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운동권 정치는 국민의 믿음, 대중의 신뢰를 잃었다.’ 대선 과정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으로 이재명 후보가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하더니 며칠 뒤 “존경하는 그랬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고…”라고 한 대목을 꼽을 수 있다.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목표를 위해 무슨 말이든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식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어두운 측면을 본 것 같아 씁쓸했다. 언어의 신뢰, 믿을 신(信)자, 신뢰가 파산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을 잃으면 다시 찾을 기회가 있지만 신뢰를 잃으면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다. 정치의 근본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먹고사는 경제나 죽고 사는 안보 문제보다 훨씬 치명적인 게 신뢰의 상실, 말의 파산이다.

첫 번째 운동권 권력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때만 해도 지금 문재인 정권만큼 운동권 정치의 폐해가 심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정직했고, 부끄러워했고, 책임을 지려 했다. 반면 지금 정권과 민주당의 운동권 주류들은 정직함이나 수치심,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2019년 조국 사태가 절정이었다. 사슴을 말이라 하고 흰 것을 검다고 우기는 거짓과 궤변, 내로남불이 문 대통령의 비호 아래 극성을 부렸다. 조국의 후임인 추미애·박범계 법무장관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오늘의 윤석열 당선인은 조국 사태에서 잉태되었다. 이재명 후보가 선거 중반 이후 진실과 통합, 미래를 외쳤지만 먹히지 않은 이유는 그가 운동권 정치의 어두운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민주당 “낙원 약속하고 지옥 만든다”는 오명 씻어야

선거에서 졌지만 민주당은 엄연히 국회 제1당이다. 살길을 찾아야 한다.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결국 40년 된 운동권 정치문화를 청산하는 데서 살길이 열릴 것이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민주당에 양식 있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좋은 야당을 만들 수 있다.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비현실적인 이념정치 세력에 대해 “낙원을 약속하고 지옥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이 있다. 민주당이 그런 오명을 씻기 바란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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