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 드리운 두 갈래 길, 관건은 ‘당 장악력’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3 10:00
  • 호수 169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내 기반 취약, 향후 행보에 물음표 많아…“李와 친문의 불편한 동거 불가피” 전망도

[시사저널 감명국 기자]

선거가 끝나면 후보들의 신분은 당선인과 낙선자로 나뉜다. 낙선자에도 두 부류가 있다. 당선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던 군소 후보가 있는 반면, 최종까지 경합하다 아깝게 고배를 마신 유력 후보가 있다. 유력 후보는 한동안 낙선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외유를 선택하거나 정계은퇴를 발표하기도 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역대 대선을 보면 패배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다음 대권에 재도전했던 낙선자도 많았다.

대표적인 이가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리, 문재인 대통령 등이다. YS는 1987년 대선에서 2위 낙선한 뒤 1992년 대선에 재도전해 승리했다. DJ 역시 1987년(3위)과 1992년(2위)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했지만 1997년 대선에서 기어이 당선에 성공했다. YS와 DJ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행사했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대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낙선 8개월 뒤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총재에 오르며 당을 장악했다. 그는 3김 이후 ‘제왕적 총재’로서의 마지막 권력을 행사하며 2002년 대선에 재도전했다. 문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 아쉽게 낙선했지만, 친문 세력 결집 등 당내 장악력을 높이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대표에 올랐고, 그 기세로 대권주자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월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월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尹 정부에 맞서 친문이 당 장악하면 李 입지 좁아져

이들의 공통점은 당내 기반이 확고했다는 점이다. 반면 1992년 대선에서 3위로 낙선한 정주영 후보는 재벌그룹 창업주란 성격 탓에 대선 후 정권으로부터의 탄압을 우려해 스스로 당(통일국민당)을 해체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1997년 대선에서 3위 낙선한 이인제 후보 역시 이후 여당이 된 DJ의 민주당에 입당하며 재기를 모색했으나, 취약한 당내 기반 탓에 결국 당 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에 밀려 재출마의 꿈을 접어야 했다. 2007년 대선에서 2위 낙선한 정동영 후보는 비교적 당내 기반이 탄탄한 편이었음에도 저조한 득표율로 선거 후 입지가 약화됐고, 이후 국회의원 공천 탈락에 불복해 탈당하는 등 퇴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2017년 대선에서 2위 낙선한 홍준표 후보도 이후 총선에서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다시 복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당내 경선에서 외부 인사인 윤석열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역대 최다 득표수 낙선, 최소 득표율 차 낙선이란 두 가지 기록을 만든 이재명 후보 또한 당내 기반이 취약한 비주류였다는 점에서 그의 향후 재기 가능성에 물음표를 제시하는 이가 많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과반 이상의 압도적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친문’이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당내 ‘이재명계’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이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당(친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선대위 측의 불만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의 향후 행보는 민주당 지도부 체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3월10일 비대위 체제 전환을 밝혔지만 당장 5월 원내대표 선거, 6월 지방선거, 8월 전당대회 일정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탓에 향후 일정이 상당히 유동적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11일 의원총회를 열고 윤호중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루되, 원내대표는 당초 일정을 앞당겨 이달 내에 선출할 계획이다. 따라서 차기 원내대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이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제1당 의석수를 무기 삼아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는 의회 세력으로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될 경우 더욱 친문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고, 이 후보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수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기본적인 지지층이 탄탄한 친문이 여전히 민주당의 주류로 있는 한 이 후보의 당내 입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고, 이 후보가 이런 당내 주류를 교체하려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이 뒤따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이재명 선대위에서 활약한 한 관계자는 선거 직전 “선거운동 기간 중 당과 캠프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만약 낙선한다면 당은 이 후보를 희생양 삼아 당의 모습을 바꾸려 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가 과연 그런 주류 세력에 맞설 힘이 당 내에 있을지 모르겠고, 그렇다면 결국 당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윤석열 정부의 대장동 수사 등에 시달리며 향후 입지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반이 훨씬 넘는 정권교체 여론 속에서도 그나마 이 후보의 개인 능력으로 이 정도 접전을 펼칠 수 있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 패배의 책임이 이 후보 못지않게 문재인 정부와 친문에도 있는 만큼 그런 여론이 ‘86 용퇴론’과 함께 쇄신 요구로 이어지면 비주류인 이 후보에게도 다시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순 있지만, 당분간은 이 후보가 민주당 내에서 일정 지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당 입장에서도 딱히 (이 후보를) 밀어낼 명분이 없고, 또 대안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친문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그들을 대표할 만한 계승자가 없다는 점에서 당분간 친문과 이재명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3월10일 패배를 선언한 뒤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다음 도모하려면 대장동 리스크 털고 가야”

민주당 사정에 밝은 당 출신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후보가 당장 전면에 나서기는 어렵겠지만, 2년 후 총선 출마를 계기로 당권에 도전한다면 차기를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당장 민주당은 선거 전 대국민 약속도 있고 해서 강한 정치 개혁 드라이브로 윤석열 정부에 맞서 정국을 주도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민주당의 내부 이탈 및 분당설에 대해 “국민의힘에서 김한길·김병준 등이 나서 민주당 일부 비주류 의원에게 손짓한다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지금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전면에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그쪽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비주류가 친문에 맞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면 이 후보가 그 구심점이 될 수도 있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이 후보의 운명을 가늠할 또 하나의 강력한 변수는 ‘대장동 리스크’다. 새 정부에서 만약 이전 정권에 대한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낸다면 이 후보가 관련된 대장동 의혹이 그 첫 번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후보가 다음을 도모하려면 무엇보다 대장동과 법인카드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 특히 대장동은 향후 윤석열 정부에서 수사가 예상되는데, 이 후보 자신이 특검 수사를 받겠다고 말한 만큼 특검 수사든 검찰 수사든 의혹이 어느 정도 해소돼야 정치적 재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