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잊힌 사람’ 거부한 문 대통령 [쓴소리 곧은 소리]
  •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db827@naver.com)
  • 승인 2022.03.26 10: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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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과 정면 권력 충돌…친문 세력의 중심 되려는 포석인 듯
안보 이유로 대통령실 이전 제동은 생뚱맞아…尹도 점령군 행세 안 돼

대선 이후 신구 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현재 갈등의 핵심에는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이 자리 잡고 있다. 윤 당선인은 취임 전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계획을 확정했지만 청와대는 “촉박한 시일 안에 무리”라면서 안보 공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이런 반대 배경엔 문 대통령이 여전히 40%대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고,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운영 전망 기대치는 낮으며, 용산 이전에 대한 반대 의견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 작용한 것 같다. 미디어헤럴드·리얼미터 조사(3월14~18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42.7%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사상 초유의 신구 권력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왼쪽 사진은 윤 당선인의 장제원 비서실장, 오른쪽은 문 대통령의 이철희 정무수석. 두 사람은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 조율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 지방선거 앞두고 지지세 결집 노려

한편, 국민 절반에 못 미치는 49.2%가 윤 대통령 당선인이 국정 수행을 ‘잘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3월19~20일)에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해 58.1%가 반대했다. 집권 5년 내내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눈감고 평화를 외쳤던 문 대통령이 별안간 안보를 거론하면서 윤 당선인과 기싸움을 벌이는 것 자체가 생뚱맞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반대에는 다른 속내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안보를 구실 삼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범여권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의도라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이 ‘문재인 당’에서 ‘이재명 당’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보인다. 대선에서 역대 최소 차이로 패배한 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치며 이재명 전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띄우면서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려는 친이(李) 세력의 의도를 막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향후 정국이 ‘문재인 대 윤석열 대결 구도’로 재편되면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10년 동안 당의 주류를 장악한 친문 세력이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이를 통해 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위기에 처한 진보의 상징적 인물로 활동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본다. 이런 정치적 추론이 주는 함의는 권력 인수인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정권교체기에 신구 권력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례는 제17대 이명박 인수위 때다. 인수위가 통일부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신구 권력 간 첨예한 대립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정운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발생한 ‘광우병 파동’으로 국정이 마비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와 비교해볼 때 상당히 취약한 통치 환경에 직면해 있다. 대선에서 초박빙 차이로 승리하면서 민심은 둘로 쪼개졌다. 국회는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안정적으로 국정을 유지할 수 없다. 더구나, 미디어 환경도 진보 세력이 오랫동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열악하다.

 

윤 당선인, 적폐청산 등 예민한 이슈는 경중완급 가려야

윤석열 당선인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권력 이동의 연착륙을 이뤄내야 한다. 무엇보다 ‘협치 제도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헌법 기구인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헌법 제90조 ①항엔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②항에는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헌법에 명시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조직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이 이를 관철시키면 ‘진보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전임 대통령을 극도로 우대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임 대통령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 둘째, 신권력이 점령군처럼 굴지 않아야 한다. 지난 17대 이명박 인수위 시절 인수위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로 정부와 인수위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크게 불거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마치 점령군 같은 태도를 보인 인수위에 대해 “인수위는 정부와 정책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공약을 재점검해 다음 정부의 정책을 준비하는 곳이지, 호통치고 자기 반성문 같은 것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당선인이 반복적으로 의지 표명을 통해 현 정부와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 적폐청산·정부조직 개편 등 예민한 이슈는 경중완급을 가려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전 정부의 범죄 혐의가 짙은 권력형 게이트로 의심되는 사안에 대한 수사에 돌입하면 대충돌이 예상된다. ‘문재인 살리기 제2의 서초동 집회’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부패를 덮으라는 것이 아니라 완급을 조절하라는 것이다. 국회와 인수위 간 갈등은 통상 새 정부의 조직 개편안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인수위가 자신의 조직 개편안을 지나치게 고수하는 경직된 태도를 보이면 새 정부는 극단적 여소야대 상황에서 온전한 내각도 구성하지 못한 채 식물정부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조직 개편안의 경우, 고도의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하고,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대통령 당선인의 결단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모두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도 무리하게 힘을 사용하지 않는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와 상대를 공존과 협력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런 민주주의 규범이야말로 문·윤 권력 이동이 연착륙할 수 있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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