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패자’ 민주당이 나아갈 길 [쓴소리 곧은 소리]
  •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cj0208@hanmail.net)
  • 승인 2022.04.02 10: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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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박홍근 등 ‘오만한 패자’ ‘분노한 투사’의 모습…‘뼈아픈 성찰’ 필요
“아직 정신 못 차렸다” 대중심리 작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2차 역풍 불 것

“아… 밤마다 나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펑펑 울고 싶었습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부시 2세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말 언론 인터뷰에서 고백한 말이다. 세상에 부러울 것, 무서울 것 없는 미국 대통령도 정권이 넘어가면 불안하고 초조해 잠을 못 이룬다. 한 달 후면 청와대를 떠나야 할 문재인 대통령도 겉으로는 태연한 듯 보여도 속으로는 좌불안석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퇴임하면, 민주당의 새로운 구심점은? 3·9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살길은 무엇인가?

민주당이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털고 재기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권력의 법칙을 새겨야 할 것이다. 첫째, 박빙 승부의 법칙이다. 시험이든 선거든 박빙으로 승패가 엇갈리면 패자는 아쉬움에 사로잡혀 냉철하게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다는 인간 심리를 말한다. 실패학의 창시자인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교수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실패를 애써 외면하지 말고 실패를 깊이 연구해 집단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비록 0.73%포인트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졌지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니라, ‘졌못싸’(졌고 못 싸웠다)라고 ‘쿨하게’ 인정해야 진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3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총사퇴→성찰→쇄신 3단계의 길 생략

민주당은 그러나 여전히 박빙 패배의 아쉬움에 사로잡힌 탓인지 과거 대선 패배 정당들이 밟았던 3단계 고행의 길 즉. 지도부 총사퇴→뼈아픈 성찰→과감한 쇄신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여 투쟁 모드로 들어갔다. 윤석열 당선인 측이 추진 중인 청와대 집무실 이전 문제와 용산 시대, 공공기관 인사 논란, 코로나 추경 50조원 건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윤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독선과 오만, 제왕적 행보로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 말은 3월25일 민주당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윤 당선인을 비판한 말이다. 이 외에도 ‘안하무인의 불통’ ‘국민 갈등 조장’ 같은 험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3·9 대선이 끝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민주당이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습은 ‘분노한 투사’가 아니라 ‘겸허한 패자’의 모습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상임고문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계해야 할 것은 ‘오만한 패자’의 이미지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라는 대중심리가 작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2차 역풍에 직면할 것이다.

두 번째로 계파 소멸의 법칙이다. 역대 정권의 모든 계파는 시대적 역할을 수행한 뒤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친이계와 친박계가 그랬고, 친노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중심축을 형성해온 586 운동권 중심의 친문계의 운명은?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3월30일 충북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던진 노영민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전북지사와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는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박주민 의원 등 친문계 핵심들을 겨냥한 듯 “부동산 실패 책임자들은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지 마라!”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만약 6월 지방선거 때 조국-추미애-유시민-김어준 등 친문계 인사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등 광역단체장 선거에 친문계 정치인이 대거 나서면 어떻게 될까? 친문계는 이번 대선 때 문재인 정부 심판론의 타깃이 되었고, 한때 586 운동권 용퇴론의 압박을 받기도 했다. 바위처럼 견고했던 친문계는 대선 전후로 크게 이재명계-이낙연계-정세균계로 3분할되면서 결속력이 약해졌고, 급기야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이재명계인 박홍근 의원이 선출되면서 당내 중심세력이 친문재인계에서 친이재명계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문재인도 이재명도 기댈 어깨가 아니다

차제에 민주당은 ‘이념 정당’ ‘갈라치기 정당’ 이미지를 탈피하고 2030을 포함한 중도층 외연 확장에 주력하는 ‘정책정당’ ‘통합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게 시대 흐름이다. 호남 정당 이미지도 벗어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 때 호남에서 80% 이상 득표력을 과시했지만 국민의힘도 10% 이상 득표력을 보였고, ‘광주의 강남’으로 불리는 한 중산층 밀집 아파트단지에서는 40% 가까운 놀라운 득표력을 보였다. 호남 민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다.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도 “문재인과 이재명을 지키겠다”고 외치기보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겠다”고 외쳐야 한다.

세 번째로 공룡의 법칙이다. 21세기 초스피드 시대에 공룡처럼 비대하면 순발력과 적응력이 떨어진다. 이번 대선 때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가 탄력을 받기 시작한 시점도 공룡처럼 비대한 대선캠프를 표범처럼 날렵하게 슬림화한 이후부터였다. 172석의 민주당은 110석의 국민의힘을 다수결의 힘으로 밀어붙여 5·10 대통령 취임식 전까지 검수완박(감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대장동 특검을 달성하고, 국무총리와 장관 인사 청문회 때 다수당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줄 참이다. 그러나 국민이 정치를 주도하는 대중 주도 시대에 거대한 의석의 힘은 자칫 독이 되고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아직 취임식도 하지 않은 윤석열 당선인을 강공 일변도로 몰아붙이다가 ‘발목잡기 프레임’에 걸리면 속수무책이다. 민주당은 밀고 당기는 여야 협치의 묘를 발휘하면서 ‘안쓰러운 패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감성 전략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72석이라는 소수파 집권여당임에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며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었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누구의 어깨에 기대어 울어야 할까? 물러나는 문 대통령도 아니고 재기를 모색하는 이재명 상임고문도 아니다. 국민이다. 국민 중에서도 열성 지지층이 아니라 중도층이다. 중도 개혁! 이게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외쳤던 슬로건이자 정치철학이 아니던가? 박빙 승부의 법칙을 통해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계파 소멸의 법칙에 따라 새로운 중심세력을 구축하면서 공룡의 법칙에 따라 시대 흐름에 빠르게 부응하기 바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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