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사기꾼 그 사이 어디쯤, 권도형이 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3 10:00
  • 호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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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 나온 컴퓨터 공학자…“스스로 신격화하면서 사기행각 포장한 인물”

“아기 루나(Luna).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제 위대한 발명품을 따서 지었어요. 나중에 아들을 낳는다면 이름을 ‘스테이블(Stable)’로 지을 겁니다. 스테이블 권.”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32)가 딸을 출산한 4월17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권 대표는 스테이블 코인(달러 등 법정화폐에 가격을 고정시킨 암호화폐)인 ‘테라USD(UST)’ 개발자다. ‘루나’는 여기에 연동된 자매 코인이다. 스테이블 코인과 루나에 대한 그의 신뢰가 여실히 드러나는 트윗이다.

ⓒ테라 공식 유튜브 채널 화면캡처
ⓒ테라 공식 유튜브 채널 화면캡처

그러나 대중의 믿음은 한 달도 안 돼 깨져버렸다. UST와 루나의 가격이 5월 중순 대폭락하며 상장폐지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 권 대표는 ‘테라 생태계 부활 계획(Terra Ecosystem Revival Plan)’을 발표하며 재기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딸 이름부터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롱이 쏟아졌다.

‘한국 블록체인을 선도할 천재’ 등 각종 찬사를 몰고 다니던 권 대표. 그는 어쩌다 이렇게 비웃음을 사게 됐을까. 권 대표의 사업계획부터 개인 성격까지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 있다. 트위터다. 그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일부 외신을 제외하고는 오직 트위터를 통해서만 대중과 소통했다. 트위터에서 전문가들과 언쟁도 피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두고 ‘괴짜 트위터리안’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닮았다는 평이 자자했다. 이 때문에 권 대표는 ‘한국판 일론 머스크’로 불리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머스크는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으며 성과를 올렸지만, 권 대표는 스테이블 코인의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사기꾼으로 몰렸다는 점이다. 지난 1년여 동안 권 대표가 올린 주요 트윗을 살펴봤다.

ⓒ시사저널 박정훈
5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 앞에서 한 관계자가 가상화폐 ‘루나’ 시세를 보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 2021년 7월1일

- I don’t debate the poor on Twitter, and sorry I don’t have any change on me for her at the moment.(나는 트위터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줄 땡전 한 푼 없네요.)

권 대표는 자신의 테라 블록체인 시스템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 같은 답장을 남겼다. 그의 조롱을 받은 당사자 중 한 명은 영국 경제학자 프란시스 코폴라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의 칼럼니스트인 그는 UST 생태계의 근간인 탈(脫)중앙화 경제에 대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 코폴라는 “공포에 빠진 투자자들이 자금을 되찾으려고 우르르 몰릴 때 금융 인센티브에 의존하는 자가 수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UST의 작동 원리를 겨냥한 지적이다.

테라 블록체인 시스템은 UST의 가격 하락을 루나가 방어할 수 있도록 서로 연동시켜 놓았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갖고 있는 UST가 1달러에서 0.9달러로 떨어지면, 시스템은 이들의 UST를 1달러 가치의 루나로 바꿔준다. 그러면 투자자는 자금을 보전할 수 있다. 동시에 시스템은 거둬들인 UST를 소각해 가격을 다시 올린다. 반대로 1달러 가치의 루나는 UST 가격이 1달러에서 1.1달러로 올라갔을 때도 역시 교환이 가능하다. 이때 투자자는 차익을 얻고 시스템은 수거한 루나를 소각한다. 동시에 UST를 시장에 풀어 가격을 안정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테라 블록체인 시스템은 UST 가치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 시중의 UST를 빨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최대 20%의 이자율을 제시했다. 코폴라가 말한 ‘금융 인센티브’는 이를 가리킨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 화폐가치를 높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문제는 UST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루나가 너무 많이 발행되면서 불거졌다. 자연스레 루나 가치는 떨어졌고, 동시에 UST 가격마저 무너져 내리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결국 시장에서는 본전이라도 찾기 위해 UST와 루나를 대거 처분했다. 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을 일컫는 ‘뱅크런’ 같은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코폴라는 “높은 이자율과 금융 인센티브는 뱅크런을 촉발시킬 뿐”이라고 꼬집었다.

권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비판하는 전문가를 가난하다며 깎아내렸다. 올 5월6일 비트코인 회의론자로 유명한 경제학자 피터 시프가 트위터를 통해 UST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권 대표는 “저 사람 가난한 게 확실하지?(Pretty sure he’s poor?)”라고 쏘아붙였다. 권 대표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기 일주일 전이다.

* 2021년 10월25일

- Considering a decentralized economy *needs* decentralized money, seems like a pretty good reason to buy some $LUNA then ;) (탈중앙화 경제에 탈중앙화 화폐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루나를 사야 하는 꽤 좋은 이유로 들리네요 ^^)

권 대표의 대다수 트윗에는 조롱과 냉소가 깔려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 네티즌이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UST 같은 미담보 대출(undercollateralized) 코인은 절대 보유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자 권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미담보 대출이란 특정 코인의 담보 가치 이상의 코인을 빌려주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100만원어치 UST를 예치하고 150만원어치 루나를 대출받는 것이다. 이는 상당한 신용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UST 토양인 탈중앙화 경제가 바로 이러한 대출 방식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즉 네티즌은 UST 투자에 대한 위험성을 전했는데, 권 대표는 이를 오히려 UST가 필요하다는 근거로 되받아친 것이다. 권 대표가 쓴 “a decentralized economy needs decentralized money”란 문장은 테라 블록체인 시스템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 2021년 10월28일

- For a brief moment in time I was the richest person in the universe.(잠깐이지만 세계 최고 부자가 됐어요.)

지난해 10월28일 글로벌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루나 가격은 한때 41.6달러를 기록했다. 전날 대비 2.5% 올랐고 작년 초에 비하면 무려 6800% 폭등했다. 권 대표는 루나 가격 현황을 공유하며 “세계 최고 부자가 됐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UST와 루나의 가격 방어를 지원하는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를 통해 각종 암호화폐를 갖고 있다. 일종의 지급준비금이다. 올 5월7일 기준 LFG가 보유한 루나는 약 169만 개다. 지난해 10월28일 가격을 적용하면 당시 권 대표의 루나 자산 가치만 7030만 달러(약 891억원)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외에 LFG가 보유한 암호화폐를 포함하면 총자산은 조(兆) 단위로 추정된다.

이후 루나 가격은 등락을 반복하며 꾸준히 오르다 올 4월5일 116달러를 찍었다. 폭락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다. 한편 LFG는 약 4조50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갖고 있었음에도 루나 가격 방어에 자산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2022년 3월14일

- Cool, I’m in.(좋아, 참가하지.)

성공을 지나치게 확신한 권 대표는 도박사 기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센시 알고드라는 한 암호화폐 투자자는 “루나 가격이 1년 안에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데 100만 달러(12억7000만원)를 걸 사람 있나?”라고 트윗을 올렸다. 그는 예전부터 테라 블록체인 시스템을 비판해온 회의론자였다. 권 대표는 내기 신청에 “좋아, 참가하지”라며 응수했다. 내기는 실제로 진행됐다. 중재를 맡은 암호화폐 전문 유튜버 코비는 양쪽으로부터 각각 100만 달러어치의 암호화폐를 받아 에스크로 지갑에 넣어뒀다. 승부는 1년 뒤인 2023년 3월14일 루나 가격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었다. 지난 3월14일 루나 가격인 88달러를 웃돌면 권 대표의 승리다. 하지만 최근 루나의 폭락으로 이미 패색이 짙어졌다. 심지어 권 대표는 당시 내기에 응한 뒤 “같은 조건으로 1000만 달러(127억원)를 걸자”는 다른 사람의 제안도 받아들이는 대범함을 보였다.

* 2022년 3월17일

- Your Excellency, I am here to serve.(각하. 충성하겠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당선인이 암호화폐 시장 활성화를 약속했다.” 일본 닛케이신문 영문판의 3월15일자 기사 제목이다. 권 대표는 이 기사를 공유하며 위와 같이 썼다. ‘Your Excellency’는 주로 외교 의례에서 국가 원수급 관료를 부르는 존칭어다. 그만큼 권 대표가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례적으로 강한 지지를 표명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암호화폐로 자금을 조달하는 ‘암호화폐공개(ICO)’를 허용하고 코인 수익 5000만원까지 비과세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 2022년 5월2일

(아래 이미지만 공유)

5월2일 권도형 대표가 리트윗한 이미지 ⓒ 권도형 트위터

권 대표가 리트윗(공유)한 이미지에는 한 그래프가 나와 있다. UST 메커니즘의 이해 능력과 지능지수(IQ) 사이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정규 분포도다. 살펴보면 IQ가 70 미만이거나 130 이상인 사람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위에는 UST 슬로건인 ‘탈중앙화 경제에 탈중앙화 화폐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문구를 이해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 IQ가 그 중간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당황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프는 이들을 다음과 같은 문구로 조롱한다. “이런. 일반인들은 탈중앙화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멍청(dumb)해. 탈중앙화 이론이 수많은 사람을 암호화폐 세계로 끌어들일 텐데. 당신들은 확증편향에 갇혔어.”

즉 UST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머리가 나쁜 사람으로 치부한 셈이다. 권 대표의 우월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배경에는 권 대표의 화려한 이력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 대표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인맥 구축 커뮤니티 링크드인에 프로그래밍, 데이터 분석, 머신러닝 등 11개 분야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적어놓았다. 또 스타트업 커뮤니티 F6S에 “고등학교 때 매체를 창간해 60개 학교와 10만 명의 사람에게 배포했다. 졸업 후 해당 매체는 연 매출 50만 달러(6억3000만원) 규모의 비즈니스로 성장했다”고 써놓았다. 그 밖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서 각각 3개월씩 엔지니어로 근무했다고 주장했다. 기간이 짧은 것으로 미뤄보아 인턴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된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권 대표에 대해 “스스로를 신격화·종교화하며 사기 행각을 포장한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잘 모르고 투자한 서민들의 돈 위에 서서 본인의 문제점을 간파한 전문가를 공격하는 어이없는 행태를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 2022년 5월11일

- I understand the last 72 hours have been extremely tough on all of you.(최근 72시간 동안 모두가 극도로 힘들었으리라 봅니다.)

우상향을 그리던 루나 그래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선 그간 줄곧 1달러를 유지해 왔던 UST가 5월8일 그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루나가 5월8일 62달러에서 5월11일 1달러대로 급락했다. 단 3일 만에 98% 폭락한 것.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는 루나를 유의 종목으로 지정하고 입출금을 중단했다.

권 대표는 수습에 나섰다. 그는 5월11일 “모두 힘들었으리라 본다”며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할 것이며 극복 방안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UST의 가격 안정화 메커니즘은 여전히 견고하고, 지금의 가격 하락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한 블록체인 업체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코인 가격을 실물자산이 아닌 또 다른 코인으로 방어한다고 주장할 때부터 가격 하락은 예고됐던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UST와 루나 모두 한 사람이 발행한다는 점에서 가격 조작과 자금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권 대표가 4월30일 테라폼랩스 한국지사의 부산 본점과 서울 지점의 청산을 결정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내 소통 창구를 한 번에 없애버린 것이다. 이를 두고 ‘자산을 빼돌리기 위한 사전 작업 아니냐’는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다.

* 2022년 5월17일

- The Terra community is my family. I will always be here, no matter how hard it gets. Let’s build it back up again - together.(테라 커뮤니티는 제 가족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늘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함께 일으켜 세웁시다.)

UST와 루나의 가치가 사실상 ‘0’으로 수렴했다. 업비트, 고팍스, 빗썸 등 국내 거래소는 퇴출을 예고했다. 그럼에도 권 대표는 트위터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5월14일 이번 사태에 대해 “내 발명품이 모두에게 고통을 줘 비통하다”고 밝혔다. 이어 17일 “다시 함께 일으켜 세우자”며 부활을 예고했다. 권 대표의 계획은 UST를 없애고 새로운 블록체인 시스템을 개발해 코인을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

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이주호 변호사는 “새로 코인을 만들기는 쉽겠지만 거래소에 상장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라며 “권 대표가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각 거래소가 그의 새 코인을 받아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 창펑 CEO는 직접 트위터를 통해 “루나를 사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어 “바이낸스는 거래소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룰을 지킬 수 없다”며 이례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다만 테라 블록체인 시스템의 기술적 기반까지 부정하는 건 급진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출신의 황재영 아우토크립트 법무팀장(변호사)은 “테라의 핵심 가치인 스테이블 코인과 탈중앙화 경제 자체가 나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UST와 루나는 운영상 허점이 많았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가격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법정 공방으로 번질 예정이다. 5월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UST·루나 투자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는 권 대표를 사기 등 혐의로 고소하고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기로 했다. 권 대표는 현재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5월14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한 네티즌이 “투자자를 대리해 권 대표를 싱가포르 경찰에 신고했다”면서 신고장을 올렸다. 시사저널은 트위터와 링크드인, 이메일 등을 통해 권 대표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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