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유흥가가 다시 만들어낼 ‘진실게임’ [임명묵의 MZ학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9 14: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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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해제 따라 곳곳에서 ‘불야성’
사회 갈등과 대중 관심을 온라인이 빨아들인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

학기 말 일정이 바빠지기 전인 5월 하순을 노려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일이 있었다. 모임의 주선자는 필자였는데, 수도권 각지에서 모이는 일행들을 고려했을 때, 어디를 모임 장소로 잡아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기에, 최적의 장소로 홍대 앞을 선택했다.

오랜만에 이뤄진 모임은 즐거웠다. 먼저 반가운 얼굴끼리 인사하고, 소주와 맥주를 식탁에 올려놓고 중요한 얘기부터 허튼소리까지 오랫동안 나누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막차가 끊기고도 한참 지난 새벽 2시였다.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가게를 나와 혀가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 “야! 택시 잡자!” 하지만 택시를 잡으러 거리로 나왔을 때 술이 확 깼다. 새벽 2시인데도, 그야말로 인산인해라고 할 수 있는 인파가 홍대 번화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럽과 주점에는 젊은 남녀들이 ‘불금’을 즐기러 줄을 서고 있었고, 인파는 이리저리 거리를 오가며 마치 거대한 강줄기와 같이 움직였다. 그날 필자가 보았던 풍경은 2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볼 수 없었던, 코로나 이전의 한국 풍경이었다. “한국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이유는 전날 밤새 술을 마시고 노느라 아침에는 다들 자기 때문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오랜만에 떠오를 정도로 대단한 인파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첫날인 4월18일 붐비는 서울 홍대 거리 모습ⓒ시사저널 이종현

한국에서 일상처럼 돼버린 ‘인터넷 고발’ 문화

4월18일부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전 해제된 이후, 번화가의 풍경은 언제 코로나가 있었냐는 듯 빠르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필자는 이 급속한 회복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안일하게(?) 금요일 저녁 홍대 쪽에 약속을 잡았고, 인산인해 속에서 택시를 잡느라 머나먼 길을 하염없이 걸어야 했던 것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그 이후에도 주말에 홍대나 강남 등 번화가에 갈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영국 기자 다니엘 튜더가 한국 사회를 두고 왜 “하루 종일 일하고 밤새도록 놀고”라고 표현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회복은 서울만의 현상도 아니며 도시만의 현상도 아니다. 얼마 전 필자의 어머니는 24시간 영업이 회복된 뒤 당신이 운영하는 김밥천국의 심야 매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알려왔다. 한국의 ‘불야성’이 정말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불야성의 귀환은 과거에 익숙했으면서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잊고 지냈던 긴장을 한국 사회에 다시 불어넣고 있다. 밤의 번화가, 특히 유흥가는 한국인들의 ‘흥’을 상징함과 동시에 한국인들의 폭력성을 날것 그대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폭음 문화는 주취 상태로 행패를 부리는 ‘주폭’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 번쩍이는 유흥가를 거닐 때 신경을 긁는 고성과 귀를 파고드는 욕설을 듣는 것은 그리 낯설거나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실 주폭까지 가지 않아도 그런 종류의 시비와 싸움은 술과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유흥가는 활달하고 외향적인 젊은 남녀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니 성(性)과 관련된 사고나 갈등, 심하면 범죄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술을 더 마시고 싸움과 폭력도 더 잦았던 과거와 비교한다면, 기껏해야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유흥가로 돌아간다는 게 왜 특별한 일인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진행되던 변화와 팬데믹 기간에도 여전했던 사회현상을 생각한다면 ‘밤’의 부활은 또 다른 갈등 전선을 만들어내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이제는 한국에서 일상처럼 돼버린 인터넷 고발 문화다.

 

젠더 갈등과 합쳐지며 온라인 논란 주도

인터넷은 그 시작부터 공식적인 사법 절차나 핵심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도 사건을 공론화할 수 있는 힘으로 주목받아왔다. 이런 공론화는 때로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여론의 힘으로 정의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개 온라인 공론화는 디지털 린치라고 불릴 수 있는 집단적 처벌의 장으로서 각인되었다. 2005년에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반려견의 분뇨를 치우지 않고 그냥 가버린 유명한 사건은 순식간에 전 국민적인 비난을 몰고 왔고, 해외에서도 온라인 여론을 통한 집단적 처벌의 미래를 알려주는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익숙하게 쓰는 세대가 청년층을 형성하고 인터넷 사회의 문법에 훨씬 능숙해진 2010년대에는 인터넷 고발 문화가 한 차원 더 진화했다. 온라인상의 수많은 사건을 거치며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고발이 얼마든지 사실과 상관없이 조작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집단 여론이 얼마나 빠르게 타오르고 꺼지는지도 체감했다. 이제 인터넷 고발은 단순히 고발의 대상과 처벌자들만 있던 법정을 넘어,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들끼리 싸우는 전장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여론을 모으기 위해 고발을 하면, 그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이 왜 저 고발이 거짓이며 근거가 고발자에게 유리하게끔 편집되었는지를 찾아낸다. 그러면 다시 그에 반박하기 위해 새로운 폭로나 고발이 등장한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개인이 사진·녹음·영상 자료를 만들고 유포하기 쉬워지면서 고발과 그에 뒤따라오는 진실게임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스포츠’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인터넷 고발 문화는 한국의 온라인 문화를 관통하게 된 다른 흐름인 젠더 갈등과 합쳐졌다. 2018년 11월에는 새벽에 이수역 인근 주점에서 남성과 여성 간 폭행 시비가 있었고, 당사자들이 온라인에 이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이수역 폭행 사건’은 삽시간에 온라인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2019년에는 구로동에서 취객 난동을 여경이 제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림동 여경 논란’이 벌어졌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개인이 생산한 영상 및 사진 자료가 온라인에 공론화되며 고발이 이뤄지고, 그 주장의 적합성을 따지는 논쟁이 이어지면서 온라인 사회 전체가 관련 갈등으로 빠르게 끓어올랐다는 데 있다. 그 불은 마침내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주류 미디어에까지 옮겨 붙어 온라인 바깥 사회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이런 사건들은 코로나 이후의 모습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유흥가의 주취 난동 자체가 이미 하나의 콘텐츠가 돼있음을 알 수 있다. 5월8일에는 부산 남포동에서 한 인터넷 방송인이 주취 난동을 벌인 사건이 최대 관심사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로의 회귀이기도 하지만, 사회 갈등과 대중의 관심을 온라인이 빨아들인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다시 새벽까지 술을 마시게 되면서, 대중 재판과 진실 투쟁이라는 자극적이면서도 불길한 안주 또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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