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윤 대통령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여인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3 09:3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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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경선 후보 시절 시사저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낮에 국회의사당에서 제 욕을 듬뿍 한 야당 정치인들을 저녁에 청와대로 모셔 식사대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5월24일 민주당 출신인 박병석 국회의장과 민주당 소속인 김상희, 국민의힘 소속 정진석 부의장 등 국회의장단을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박병석 의장은 꼼수와 억지투성이인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에 총대를 멘 주인공이다. 박 의장의 당파적 행동은 검수완박을 ‘부패완판’(부정부패가 완전히 판을 침)으로 규정한 윤 대통령과 다수의 국민 의사, 그리고 헌법 정신을 욕보인 것이다(박병석 의장이 의사봉을 친 검수완박은 6·1 지방선거에서 국민 응징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4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국회의장단 초청 만찬을 위해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상희 부의장, 박병석 국회의장,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4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국회의장단 초청 만찬을 위해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상희 부의장, 박병석 국회의장,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정신이 번쩍”은 깨달음과 겸손, 실천의 언어

말하자면 윤 대통령은 ‘제 욕을 듬뿍’한 야당 정치인들에게 저녁을 산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약속을 지킨 윤 대통령에게 큰 선물이 찾아왔다.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젠더 갈등이다. 대선 국면에서 많은 불필요한 갈등이 있었는데 선거 때와 대선 이후는 다르다”는 김상희 국회부의장의 쓴소리가 선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집권 초에 카리스마 넘치며 정치권에 입문하곤 줄곧 승리의 기억만 갖고 있는 데다 다변인 윤 대통령 앞에서 김상희 부의장처럼 직설적으로 쏘아댄 사람은 드물 것이다. 흥미롭게도 김 부의장의 쓴소리에 윤 대통령은 밝게 응대했다. 그의 다음과 같은 답변은 기록으로 남겨둘 만한 가치가 있다.

“공직 후보자들을 검토하는데 한 여성이 다른 후보자들보다 약간 뒤졌다. 한 참모가 ‘여성이어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누적돼 그럴 것’이라고 하더라.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시야가 좁아 그랬던 것 같다. 이제 더 크게 보도록 하겠다.”

대통령과 야당 정치인의 대화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자기 시야가 좁았다고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윤석열의 ‘정신이 번쩍’ 발언은 과거 대통령들에게서 좀처럼 듣지 못했던 깨달음과 겸손의 언어다. 그는 말로만 끝내지 않았다. 여성 중시 후속 인사를 실천으로 옮겼다. 말만 번드르르한 내로남불 쇼는 문재인 정권에서 질릴 만큼 봐왔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대통령을 보는 것은 정치인의 이중성에 넌더리를 내는 국민들에겐 일종의 쾌감이다. 야당의 직설이 공감을 얻고, 집권자의 언행이 일치하는 정치를 우리는 이렇게 경험했다. 


대통령은 권력자에 앞서 위대한 설득자 돼야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쌓이면 정치는 당파성에서 해방돼 국민성으로 수렴할 것이다. 여든 야든 국민성에 기반한 정치가 성공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맛보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약속을 지키는 정치에 맛을 들였으면 한다. 법과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자에 앞서 말과 행동이 일치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설득자가 됐으면 한다.

윤 대통령은 앞의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야당 당사를 찾아가 진정성 있는 소통 행보를 하겠다”는 말도 했었다. 그 약속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 대통령은 지방선거 승리로 한결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당선 100일'도 다가온다. 대선, 지방선거 과정에서 거짓에 멍들고 분열에 지친 국민의 마음도 위로할 겸 윤 대통령이 여의도 민주당사를 조건 없이 방문하길 권하고 싶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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