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소외계층·문화예술 쪽 활동이 바람직”
  •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cj0208@daum.net)
  • 승인 2022.06.21 10:00
  • 호수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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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의 영부인 집무실 ‘이스트윙’, 백신 접종·아동 비만 정책에 적극 참여
국민 사랑받으려면 정치적 관심 줄이고 정책적 내조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도대체 영부인의 파워는 어느 정도일까? 최근 봉화마을 방문과 팬카페 논란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과연 새롭게 달라진 신세대 영부인상(像)을 보여줄까?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12명의 정치적 역할과 사생활을 담은 책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Hidden Power)를 보면, 참 놀랍다. 트루먼 대통령은 아내가 부탁한 고급 향수 ‘샤넬 No5’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여사는 소련의 최고권력자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한다. 바람을 피우다 들통난 클린턴 대통령이 안방 침대 위에서 아내에게 책으로 얼굴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요컨대, 선진국일수록 영부인의 역할은 날로 확대돼 가고 있다. 그렇다면 ‘조용한 내조’를 바라는 여론이 60.6%에 달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김건희 여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영부인들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김건희, 권양숙 여사ⓒ연합뉴스
김건희, 권양숙 여사ⓒ연합뉴스

대한민국 영부인 11명의 역할 변천사

대한민국 영부인 11명의 역할 변천사(史)를 보면, 크게 3단계(개인적 내조형→정책적 내조형→정치적 내조형)로 빠르게 발전해 왔다. 프란체스카 여사처럼 음식, 옷차림 등 사적 일상을 돕는 ‘개인적 내조’(심리적 내조)에서 육영수 여사나 이희호 여사처럼 소외계층을 공식적으로 돕는 ‘정책적 내조’를 넘어 국정 참여나 인사 개입 같은 ‘정치적 내조’로 확장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2022년 시점에서 현대(現代) 영부인들은 위의 3가지 역할을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김정숙 여사도 김건희 여사도 개인적-정책적-정치적 내조를 겸했거나 겸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우먼파워 시대의 세계적 흐름이다. 오늘날 대통령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누구보다 가까운 영부인이 ‘부동의 2인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영부인의 영향력을 국익 차원에서 긍정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즉, 우리 영부인들이 선진국 퍼스트레이디처럼 ‘정치적 내조의 최소화-정책적 내조의 최대화’ 방향으로 가려면, 다음 3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제2부속실 기능의 부활’이다. 요즘 시대 흐름으로 보면, 영부인실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확대해야 옳다. 아다시피 미국 백악관은 이스트윙(East Wing)이라는 영부인 집무실과 전담 대변인, 보좌진을 따로 두고 왕성한 대외활동을 펴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지난해 국내 35개 주 60여 개 도시를 순회하며 코로나19 백신 접종 독려활동을 벌였고, 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재임 중에 아동 비만과 학교급식운동인 ‘레츠 무브(Let’s Move) 캠페인’을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른바 펫 프로젝트(Pet Project·영부인 사업)다. 김건희 여사도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公益)을 위해 소외계층이나 문화예술 분야 활동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50여 년 역사와 노하우를 가진 제2부속실을 그냥 폐지하기보다 제1부속실 안팎에 ‘영부인 지원팀’을 둬 김건희 여사의 일정-메시지-대내외 활동-해외순방 관련 업무가 제도권 내에서 공개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봉화마을-노란 화장지-용산 집무실 논란’이 재발하지 않는다.

왼쪽부터 프란체스카, 육수, 이희호, 미셸 오바마, 질 바이든 여사ⓒ연합뉴스

김 여사 자신을 위해 탄탄한 위기 관리체계 절실

두 번째로 ‘영부인법’ 제정이다. 미국은 영부인의 사업과 예산, 보좌진 등을 법(연방법전 제3편 제105조 영부인 지원 서비스 조항)으로 명시해 놓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법제도가 없다. 오로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대통령과 그 배우자를 경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해외순방과 의상비 논란도 법과 제도의 공백 때문이었다고 본다. 미국의 영부인들이 고급 옷-구두-핸드백 등을 국민 혈세(정부예산-특수활동비)로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는 치약, 치솔, 수건 등 관저의 모든 생활용품을 사비로 구입했다고 강조하곤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대외비다. 김건희 여사는 ‘내돈내산 원칙’(내 돈 내고 내가 산다)을 천명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청와대에서 길렀던 개의 사료나 대소변 처리조차 관저 비서진의 몫이었고 비용도 대외비였다. 윤 대통령 부부가 애지중지하며 기르는 7마리의 반려견과 반려묘의 관리는? 앞으로 김 여사를 비롯해 모든 영부인의 의혹을 최소화하려면 차제에 관련 법규나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영부인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그에 따른 관리·감독도 당연히 필요하다. 혹여 대통령의 부인이 정치나 인사에 개입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능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직접 담당할 수도 있고 국회에서 추천하는 감찰관이 담당할 수도 있다. 김건희 여사는 꿀벌 자수의 흰색 반소매 셔츠와 긴 청치마, 네잎클로버 팔찌, 그리고 배우 송강호가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브로커》의 부부 동반 관람과 팝콘 등등 일거수일투족이 인기 스타를 능가해 언제 어디서 ‘돌발 악재’가 터질지 모른다. 따라서 김 여사 자신을 위해서도 탄탄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국민들이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은 영부인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지난 3·9 대선 때 후보 부인 관련 논란과 의혹들이 워낙 거셌던 탓인지 영부인에 대한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롤모델로 삼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선적이고 스캔들도 많고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 결점투성이였지만, 부인 엘레나 여사의 눈물겨운 도움으로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의 저자 케이티 마튼(Kati Marton)은 “미국 대통령들은 영부인의 헌신적 내조와 단점 보완 덕분에 미국을 부유한 나라로 만들었다”면서 영부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거듭 강조컨대, 김 여사를 비롯한 우리 영부인들이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개인적·정책적 내조활동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영부인실-영부인법-영부인 관리라는 이른바 ‘3영(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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