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성적 반비례하는 ‘히어로즈 미스터리’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6 16: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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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지원 없이 주축 선수들 팔아도 매년 가을야구 진출
“투자도 없는 구단이…” 야구계 시선은 싸늘

2022 KBO리그는 순위가 정확히 중간에서 위아래로 쪼개졌다. 1~5위권과 6~10위권 격차가 심해 “가을야구 진출팀은 후반기 시작 전에 이미 정해졌다”고 말하는 야구 전문가도 있다. 그만큼 리그가 양분됐다. 상위 5개 팀만 보면 SSG 랜더스의 독주 속에 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KT 위즈, KIA 타이거즈의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그런데 상위권 팀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의아하고도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선두 다툼을 벌이는 키움 히어로즈의 존재다.

7월22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11회말 1사 1, 2루에서 키움 이지영의 1타점 적시타로 키움이 승리하자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22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11회말 1사 1, 2루에서 키움 이지영의 1타점 적시타로 키움이 승리하자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7월22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11회말 1사 1, 2루에서 키움 이지영의 1타점 적시타로 키움이 승리하자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축 선수 내보내도 새로운 인물 대체 ‘화수분 야구’

히어로즈를 제외하고 나머지 4개 팀은 지난 스토브리그 때 돈보따리를 많이 풀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관중 입장이 제한되면서 구단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FA시장에서만큼은 과감한 투자를 했다. SSG는 정용진 구단주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박종훈(5년 65억원), 문승원(5년 55억원), 한유섬(5년 60억원) 등과 다년계약을 하면서 예비 FA 선수들을 붙잡았다. 더불어 메이저리그에서 2년간 활약한 김광현에게도 151억원(4년)이라는 거액을 안겨줬다.

SSG가 이들 4명에게 푼 자금만 331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SSG가 올해 우승해야만 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과감한 투자가 우승으로 이어질 경우 다른 구단들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않겠냐는 것이다.

SSG뿐만이 아니다. LG는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박해민과 FA 계약을 하면서 60억원을 썼고, 내부 FA였던 김현수를 115억원(4+2년)에 잔류시켰다. KT는 히어로즈의 4번 타자 박병호를 영입하면서 보상금 22억5000만원과 함께 30억원(3년)을 썼다. 더불어 황재균(4년 60억원)과 장성우(4년 42억원)를 팀에 눌러앉히며 102억원을 더 풀었다. 거포 부재에 시달리던 KIA는 NC 다이노스 간판인 나성범을 데려오면서 150억원(6년)을 투자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좌완 에이스 양현종과도 103억원(4년)에 계약했다.

그러나 히어로즈가 지난겨울 쓴 투자금은 한 푼도 없다. 오히려 팀 주포 박병호가 KT로 떠나면서 전력이 마이너스가 됐다. 마무리 투수 조상우 또한 군에 입대하면서 투타 모두에 공백이 왔다. 그런데도 지금 LG와 2위 다툼을 하며 선두 SSG를 위협하고 있다. 에릭 요키시와 안우진이 든든하게 선발 마운드를 지키고 김재웅·문성현이 뒷문을 책임지는 영향이 크다. 8월2일 현재 히어로즈는 팀 평균자책점 1위(3.33)를 달리고 있는데, 선발·불펜 모두 평균자책점이 10개 구단 중 1위다.

이에 반해 팀 타율(0.248)은 9위에 불과하다. 팀 홈런 수도 전체 8위(61개). 올 시즌 타격의 정교함에 파워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정후가 나 홀로 타선에서 버티는 모양새인데도 팀이 이길 수 있는 득점은 기어이 뽑아낸다. 히어로즈의 팀 평균 실점은 3.80, 팀 평균 득점은 4.25. 홍원기 히어로즈 감독은 “투수력과 수비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히어로즈는 모 그룹이 없는 팀 사정상 그동안 ‘선수 유출’만 있던 팀이다. 외부 FA 선수 영입은 거의 하지 않고 내부 FA의 경우에도 선수 몸값이 비쌀 경우 가성비를 따져서 붙잡지 않는 기조를 이어왔다. 히어로즈가 외부 FA와 계약했던 사례는 자금 사정 탓에 트레이드를 통해 LG로 보냈던 이택근을 4년 50억원에 재영입했던 딱 한 차례밖에 없다.

그런데도 히어로즈는 2017년 딱 한 해를 제외하고는 2013년부터 매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왔다. 강정호·손승락·유한준·김하성 등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온 것. 모그룹의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여타의 팀들이 스토브리그 때마다 수백억원을 써도 가을야구 티켓을 쉽사리 얻지 못했던 것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히어로즈는 철저하게 선수 내부 육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용규처럼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를 영입하거나 정찬헌·김태진처럼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경우다. 선수 이적에 대비해 미리 차후, 혹은 차차후의 방안을 마련한다. 강정호 대신 김하성이, 김하성 대신 김혜성이 차례로 히어로즈 유격수를 책임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김혜성 다음을 위해 히어로즈는 김휘집을 준비 중이다. 신인 드래프트 때부터 맞춤형 선수를 뽑고 이들을 2군에서부터 숙련시킨다.

 

“모그룹 없고 팬덤 약해 부담 없는 게 강점” 의견도

투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두르지 않는다. 장차 선발로 키우려는 계획이 있더라도 중간 계투로 먼저 ‘프로 맷집’을 키우게 한다. 안우진이 이런 방법으로 실력을 키워왔고, 결국 올해 리그 최고 속구를 자랑하는 투수로 발돋움했다. 파격적으로 신인 계약금 9억원을 안긴 장재영도 현재 안우진과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잠재력 있는 선수는 팀 매뉴얼대로 천천히 기량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혹자는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부담을 갖지 않는 게 히어로즈의 최대 강점”이라고 말한다. 모그룹이 없고 팬덤 또한 약해 선수들이 스트레스 없이 마음껏 제 기량을 펼친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더그아웃 분위기만 보면 히어로즈가 제일 좋다”고도 했다. 몸값 높은 FA 야수가 고정 라인업을 꿰차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선수들의 동기부여 또한 확실하다. 이정후가 신인 때부터 꾸준히 선발 기회를 잡을 수 있던 것도 히어로즈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이가 많다. 다른 팀들의 경우 신인급 선수가 붙박이 선수의 고정 선발 라인업을 뚫기가 쉽지 않다.

개막 전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으며 히어로즈는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히어로즈를 바라보는 야구계의 시선은 서늘하다. “투자 없는 구단이 계속 성적을 내면 리그 발전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아예 “히어로즈가 우승하면 절대 안 된다”고 못 박는 전문가도 있다. 이순철 SBS 야구 해설위원은 히어로즈에 대해 “예전의 해태 타이거즈 같다”는 표현도 썼다. 옛 해태 구단은 타 구단보다 투자가 현저히 적었으나 한국시리즈 우승도 꽤 했고 꾸준하게 성적을 냈다. 하지만 당시 광주 팜이 워낙 좋아 해태에는 아마추어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가 많았다. 히어로즈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하겠다.

후반기 성적 하락을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으나 히어로즈는 아직 건재하다. 투수력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프로 리그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SSG처럼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구단도 있고 히어로즈처럼 내실을 다지는 구단도 있다. 구단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리그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모두 같을 수만도 없다. 그래도 만약 히어로즈가 우승까지 차지한다면 나머지 9개 구단 앞에는 지옥문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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