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준석의 ‘순교자 정치’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2.08.26 17: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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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은 8월15일 대통령 윤석열의 취임 100일 성적에 25점을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25점도 후한 점수였다. 사흘 후인 8월18일 이준석은 윤석열에 대해 사실상 사기 혐의를 제기했으니 말이다. 20여 일 전에 꺼낸 ‘양두구육(羊頭狗肉)’ 혐의를 구체화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집을 분양했으면 모델하우스랑 얼마나 닮았는지가 중요한 거다. 모델하우스 가보니까 금 수도꼭지가 달려 있고 (분양받은 집에) 납품된 걸 보니까 녹슨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그러면 분양받은 사람이 열받는 것이다.”

윤석열은 녹슨 수도꼭지를 금 수도꼭지라며 팔아먹은 사기꾼이었나? 녹슨 수도꼭지라는 건 이준석의 주장일 뿐 아직 검증된 건 아니다. 만약 이준석의 주장이 옳다면, 그 아파트 판매의 총책을 맡았던 그는 무슨 죄를 지은 건가? 그가 녹슨 수도꼭지임을 알고서도 판촉에 나섰다면, 이준석이야말로 사기꾼이 아닌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준석을 가리켜 “크게 이길 대선을 질 뻔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이준석이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온몸과 영혼을 바쳐 애를 썼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게다. 그가 윤석열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선거 기간 내내 ‘금 수도꼭지’를 외쳐댔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게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자신이 판매한 제품이 사기이거나 25점짜리라고 주장하면 어쩌자는 건가?

그 주장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아니 감명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진정성은 석고대죄(席藁待罪)까진 아닐망정 자신의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사과를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코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모습이어선 안 된다. 자신이 언제 ‘녹슨 수도꼭지’임을 알게 됐는지 소상히 밝히면서 결과적으론 자신도 피해자임을 납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엔 호전성만 두드러졌을 뿐 그런 진정성은 없었다. 이준석은 당 징계의 위협에 시달리던 7월3일 “제가 제대로 역할을 맡으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하락 문제를 20일이면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20일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어떻게 25점과 ‘녹슨 수도꼭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7월8일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7월26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윤석열의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이준석의 분노와 배신감이 폭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준석과 윤석열의 관계가 아니라 이준석이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유권자에 대한 예의’다.

이준석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한겨레 기자 오연서가 8월23일자 기사에서 이준석을 잘 아는 한 국민의힘 인사의 입을 빌려 답을 제시했다. “이준석은 프로게이머처럼 정치를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말싸움으로 상대방을 공격해 게임처럼 이기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말로 상대방이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을 한다.”

사실 그런 능력에 관한 한 이준석은 라이벌이 없는 국내 최고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없다. 프로게이머로서 전설을 남길 수는 있을망정 정치판의 문법으론 그의 정치는 사실상 전설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순교자 정치’다. 싸움의 흥행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언론이 좀 냉정해지면 그게 잘 드러날 게다. 처절한 원한과 보복의 화신이라는 그의 전설이나마 오래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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