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은 8월15일 대통령 윤석열의 취임 100일 성적에 25점을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25점도 후한 점수였다. 사흘 후인 8월18일 이준석은 윤석열에 대해 사실상 사기 혐의를 제기했으니 말이다. 20여 일 전에 꺼낸 ‘양두구육(羊頭狗肉)’ 혐의를 구체화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집을 분양했으면 모델하우스랑 얼마나 닮았는지가 중요한 거다. 모델하우스 가보니까 금 수도꼭지가 달려 있고 (분양받은 집에) 납품된 걸 보니까 녹슨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그러면 분양받은 사람이 열받는 것이다.”
윤석열은 녹슨 수도꼭지를 금 수도꼭지라며 팔아먹은 사기꾼이었나? 녹슨 수도꼭지라는 건 이준석의 주장일 뿐 아직 검증된 건 아니다. 만약 이준석의 주장이 옳다면, 그 아파트 판매의 총책을 맡았던 그는 무슨 죄를 지은 건가? 그가 녹슨 수도꼭지임을 알고서도 판촉에 나섰다면, 이준석이야말로 사기꾼이 아닌가?
이준석을 가리켜 “크게 이길 대선을 질 뻔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이준석이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온몸과 영혼을 바쳐 애를 썼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게다. 그가 윤석열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선거 기간 내내 ‘금 수도꼭지’를 외쳐댔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게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자신이 판매한 제품이 사기이거나 25점짜리라고 주장하면 어쩌자는 건가?
그 주장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아니 감명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진정성은 석고대죄(席藁待罪)까진 아닐망정 자신의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사과를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코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모습이어선 안 된다. 자신이 언제 ‘녹슨 수도꼭지’임을 알게 됐는지 소상히 밝히면서 결과적으론 자신도 피해자임을 납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엔 호전성만 두드러졌을 뿐 그런 진정성은 없었다. 이준석은 당 징계의 위협에 시달리던 7월3일 “제가 제대로 역할을 맡으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하락 문제를 20일이면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20일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어떻게 25점과 ‘녹슨 수도꼭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7월8일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7월26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윤석열의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이준석의 분노와 배신감이 폭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준석과 윤석열의 관계가 아니라 이준석이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유권자에 대한 예의’다.
이준석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한겨레 기자 오연서가 8월23일자 기사에서 이준석을 잘 아는 한 국민의힘 인사의 입을 빌려 답을 제시했다. “이준석은 프로게이머처럼 정치를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말싸움으로 상대방을 공격해 게임처럼 이기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말로 상대방이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을 한다.”
사실 그런 능력에 관한 한 이준석은 라이벌이 없는 국내 최고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없다. 프로게이머로서 전설을 남길 수는 있을망정 정치판의 문법으론 그의 정치는 사실상 전설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순교자 정치’다. 싸움의 흥행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언론이 좀 냉정해지면 그게 잘 드러날 게다. 처절한 원한과 보복의 화신이라는 그의 전설이나마 오래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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