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자꾸 북핵 언급 말고, 한반도 평화공존만 얘기하자”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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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터뷰]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여야 정치권 향한 쓴소리
“북한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야 실마리 나와…이제 미국에도, 중국에도 할 말은 해야”

☞ 앞서 보도된 「이종찬 “대통령이 여당 대표로 나서 야권과 협치하는 정치행위 필요”」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추석 연휴 동안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른바 ‘선제 핵공격’ 법령 채택을 밝혔습니다. 안팎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한반도 리스크가 다시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를 우리가 대할 때 가장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게, 사안을 우리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김정은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김일성 시대는 북한을 통치할 수 있는 여건이 100이라고 한다면, 김정일은 50, 지금의 김정은은 10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북한도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자꾸 공포정치를 하는 겁니다. 북한 핵이 만약 없어지면 김정은 입장에선 정권이 무너지는 겁니다.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지난 8·15 때 윤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비핵화 협상 나서면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는데, 그 역시도 우리 입장에서의 생각입니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고, 우리는 계속 비핵화를 주장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평행선일 수밖에 없는 건데요?

“그러니까 자꾸 북핵을 언급하면 상황이 더 어렵습니다. 한반도 공존 문제만 얘기하자는 겁니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자. 우리는 너희를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 공존하는 쪽으로만 가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북핵을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국제적으로 북핵을 인정하지 않는데 우리가 인정할 순 없는 것이고, 그건 있는 그대로 그냥 두고 서로 평화공존만 얘기하자는 겁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우리 쪽에서) 참수작전이 어떻고 선제공격이 어떻고 하는 건 오히려 북핵을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런 말로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희는 절대 핵무기를 못 쓴다. 핵무기를 쓰는 순간 너희도 죽는다. 그러니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해선 평화공존을 모색하자고 해야 합니다.”

지금 한미간 핵우산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일각에선 우리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건 굉장히 위험한 목소립니다. 그러면 우리도 NPT를 탈퇴해야 합니다. 일부 우파에서 그렇게 주장할 순 있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주장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윤 정부 출범 이후 한미 동맹 강화를 복원시키는 기조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바이든 정부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내놓았습니다. 한미 동맹 강화의 대가가 이것이냐는 국민적 반감이 불거지는 양상입니다.

“트럼프 집권 이후 그런 경향이 미국의 주류가 됐다고 봅니다. 미국이 오히려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를 부정하는 주범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위협 때문에 꼬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이렇게 자유무역체제 전체를 무너뜨리는 지경에까지 왔습니다. 사실 중국을 미국이 성급하게 WTO에 가입시킨 게 패착이라고 봅니다. 중국은 자유무역을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국가가 좌지우지하는 거죠. ‘한한령’이란 게 국가가 하는 것이지 중국 기업에서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제 와서 중국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도 자유무역체제를 부정하는 건 미국의 졸렬한 정책입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WTO 체제로 가도록 미국에 강한 요구를 해야 합니다. 무역이 국가경제의 굉장히 큰 포지션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선 큰 피해를 초래하게 됩니다.”

한미 안보동맹과는 별개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WTO 체제에선 보조금을 못 주게 되어 있는데, 지금은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아예 노골적으로 보조금을 준다는 것 아닙니까. 이건 WTO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죠.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성명 한마디 못 내고 있어요. 우리도 미국에 공장 세웠으니 우리도 보조금 달라는 얘기만 자꾸 하고 있어요.” 

중국의 서열 3위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장이 방한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두고 이른바 한국의 줄타기 외교가 본격화되는 느낌입니다.

“문재인 정부 외교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눈치를 너무 봤다는 겁니다. 그 결과 중국이 우리를 깔보게 됐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도 중국 의존율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지금 너무 많은 걸 중국에 의존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선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이 너무 컸다고 반성하고 있어요. 우리도 다변화해야 합니다. 물론 이건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국에도 할 말은 해야죠.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태생적 친중파이지만, 지금 시진핑 정책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일대일로가 뭡니까. 확장정책입니다. 중국같이 큰 나라가 확장정책으로 가면 세계 평화가 깨지는 겁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런 것 아닙니까.”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9월 1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도중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9월 1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도중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끝으로 여야 입장을 떠나서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숙제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어떤 점이 있는지, 정치권의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가지로 정리를 해드리면, 첫째 국내 정치가 안정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 지도부만, 영수만 만나서 될 게 아니라, 의원 하나하나가 나서서 각각 다 만나고 대화해야 합니다. 지금 국회의원은 너무 협치에 대한 노력이나 의식이 부족합니다. 둘째로 우리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적 성격으로 가고 있어요. 당내 민주주의가 만발해야 합니다. 팬은 있을 수 있어도 팬덤은 안 되는 겁니다. 셋째 지금 야당이 다수당인데, 민주당은 모든 국정을 정부 책임, 여당 책임으로만 돌려선 안 됩니다. 시급한 대한민국의 과제는 여야가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다수당의 책임이 있는 겁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 남북기본합의서를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원래 김대중 총재의 통일 방안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홍구 통일부 장관이 김 총재를 찾아가서 설명을 하고 설득을 했습니다. 김 총재가 누구입니까.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박한 분인데도, 이 장관이 설명하자 그에 수긍하고 합의에 동의해준 그 현장에 제가 직접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서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는 겁니다. 넷째로 경제와 안보가 결코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경제안보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 냉혹한 국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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