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스러운, 관음과 대리만족의 사회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0 17:05
  • 호수 17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문화 키워드로 떠오른 ‘먹방’과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상기시키는 슬픈 현실
사람들과의 애정 어린 접촉 점점 상실돼

혼자 사는 30대 직장인 여성 A씨는 식사를 하거나, 심심할 때 ‘먹방’을 자주 본다. 영상 속 유튜버는 한 입만 물어도 기름이 입안을 가득 채울 것 같은 대창을 2kg씩 구워 먹기도 하고, 소간이나 골수 같은 것들을 입맛을 다시며 먹어 치운다. A씨는 자신은 대창이나 소간, 내장 같은 것들을 먹지 못하지만 유튜브 속 그녀가 먹는 것을 보며 ‘무슨 맛일까’ 상상하기도 하고, 마치 괴기영화를 보는 것처럼 오싹하면서 흥미진진한 느낌을 받는다.

연애를 하지 않는 20대 취업준비생 남성 B씨는 요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휴일이면, 역시 연애를 하지 않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TV 속 남들이 하는 연애를 보며 밀고 당기는 그들의 연애에 이러쿵저러쿵 자신들의 의견과 평가를 주고받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요즘 종류가 무척 많아졌는데, 출연한 사람들이 일반인이어서 오히려 신선하고, 그들은 모르지만 자신들은 알고 있는 그들의 연애 미래를 친구들과 서로 맞추어보는 것이 아주 재미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문화적 키워드는 ‘먹방’과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먹방’은 푸드 포르노(Food Porno)의 일종으로 이른바 어떤 이가 음식을 먹는 장면을 (자발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인데, 외국에서도 ‘Mukbang’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의 독특한 콘텐츠가 된 지 오래다. 원래 푸드 포르노는 1984년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로잘린 카워드가 그녀의 저서 《여성의 욕망(Female Desire)》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시각적인 자극을 극대화한 음식 관련 콘텐츠’를 일컫는 말이었다.

ⓒfteepik
ⓒfteepik

더 자극적으로 먹어보라는 가학적 요구도

푸드 포르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은 음식을 만들거나(쿡방), 음식을 먹는 모습(먹방)이 노골적으로 담긴 영상들이다. 1인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양을 먹는 대식 먹방과, 이름난 맛집을 찾아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미식 먹방, 맵거나 뜨거운 음식, 식감이나 생김새가 독특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먹방, 그리고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아주 적은 음식을 오래오래 맛없이 먹는 소식 먹방 등이 있다. 혹자는 이런 먹방의 대유행을 두고 우리 사회가 원하는 도가 지나친 보디 이미지(날씬해야 한다) 때문에 다이어트가 생활화된 이들이 남들이 맘껏 먹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남이 뭔가를 먹는 장면을 그렇게나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참 편안하지 않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남들이 밥 먹는 모습을 그렇게 보는 것은 실례였다. 식사 시간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그랬고, 만약 누군가 식사를 하고 있으면 짐짓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돌아앉거나 외면해 주는 것이 당연한 예의였다. 크게 입을 벌리고, ‘후루룩’ 소리를 내고, 끊기지 않게 계속 젓가락을 놀려 국수가락을 들이마시다시피 먹는 ‘면치기’ 같은 것은 오히려 핀잔의 대상이었지 자랑할 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입이라는 생리적인 구조도 그렇고, 인기 있는 먹방 유튜버 중 다수가 젊은 여성이란 점도 그렇다. 유독 빨갛게 루즈를 칠한 입술을 벌려 음식을 잔뜩 집어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은 왠지 어떤 성행위를 연상하게 한다. 그에 더해 커다란 핫도그에 노란 소스를 잔뜩 뿌려 입을 크게 벌려 물고 입가에 소스를 묻혀가며 오물거리고, 웃으며 바라보는 그런 것들이 그야말로 진짜 포르노를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시청자들은 그들에게 더 매운 음식을, 더 기름진 음식을, 더 이상한 모양과 식감의 음식을 먹어보라고 가학적인 요구를 한다.

또 다른 인기 있는 키워드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떤가. 연예인들이 가상의 짝을 짓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나아가, 일반인들이 한 공간에서 ‘썸’을 타며 진짜 커플이 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2011년 SBS TV에서 《짝》으로 시작해 《러브 시그널》 《환승연애》 《나는 솔로》 《솔로지옥》 《돌싱글즈》 등 올해만 20여 편이 넘는 프로그램이 지상파와 케이블, OTT, 유튜브를 통해 쏟아지며 높은 관심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는 솔로》ⓒSBS 화면캡쳐

자신의 만남은 기피하면서 남의 연애는 열심히 지켜봐

정작 자신은 연애도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서 남들의 연애를 들여다보고, 연애를 대리체험하고 만족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애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친구의 연애에 훈수를 두듯 남의 연애를 보며 대상화한다. 특히 최근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남들의 연애를 관전하는 연예인 패널들이 있기에 우리의 관음행위를 더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들여다보고 의견을 나누고 있기에 더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 연애뿐 아니라 사랑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으며, 섹스도 하지 않는다. 설령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할 수 있는데, 아예 상대를 만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20년 서울에 사는 성인의 36%가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나왔다. 20대 남녀의 섹스리스 비율은 43%로 각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았다. 20대 남성은 상대를 만날 수 없어서, 20대 여성은 누구를 만날 필요 없이 혼자서도 만족스럽다는 게 그 이유였다. 파트너가 있든 없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도 연애도 섹스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남들의 연애를 들여다보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열심히 본다.

우리 사회의 이런 현상은 정말 걱정스럽다.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며, 쾌락(즐거움)의 근원이다. 특히 사랑의 욕구는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다는 느낌,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얻는 나 아닌 타인과의 친밀감과 유대감, 결속감으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더 용기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식욕과 성욕을 대리체험하고 만족한다는 것은 꽤나 변태스럽게 다가온다. 생리적으로 식욕과 성욕을 느끼는 신경중추는 아주 가까워서 서로 속기도 하는데, 사랑이 모자라면 배가 고프기도 하고, 사랑이 넘치면 포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거다.

혹시 우리는 먹방을 보면서 식욕이 아니라 사랑에 허기진 우리 마음을 속이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직접 당사자로 뛰어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사랑이 주는 충만감을 포기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해야 할 것은 나를 위해 스스로 즐겁게 적당히 먹고, 현실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 사람들과의 접촉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애정 어린 접촉이야말로 우리를 따뜻하고 배부르게, 행복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