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제 호황인데, 차이잉원 총통은 왜 민심 잃었나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1 10:0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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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12월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 참패
경제성장 혜택, 소수 IT기업에 집중…소득격차 크게 벌어져

#1. 2022년 12월18일 대만 자이시에서 시장 선거가 치러졌다. 개표 결과 야당인 국민당 후보가 63.8%를 득표해 34.9%를 얻은 집권 민진당 후보에게 대승했다. 마지막에 치러진 자이시 선거 결과까지 포함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은 시장 및 현장 22석 중 13석을 차지해 5석에 그친 민진당에 압승했다. 특히 국민당은 수도인 타이베이를 비롯해 6대 직할시 중 4곳에서 승리했다.

#2. 2022년 12월9~11일 국가정책연구기금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당 지지율이 21.9%로 민진당(20.7%)을 앞질렀다. 비록 오차범위 이내지만, 국민당 지지율이 민진당보다 높게 나온 것은 201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다만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8.2%가 ‘민진당이 국정운영을 잘못했다’고 답했고, ‘국민당이 잘했다’는 응답은 14.9%에 불과했다. 대만민의기금회가 2022년 12월12~13일 실시해 21일에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차이잉원 총통 지지율이 11월보다 13.7%나 급감한 37.5%였다. 이는 2019년 4월의 34.6%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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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야당인 국민당 타이베이 시장 후보 웨인치앙이 2022년 11월24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

“대만 1인당 GDP, 한국 추월할 것” 공언

2022년 내내 모든 한국 언론이 입을 모아 쏟아낸 국제 뉴스가 있었다. 바로 대만 경제의 호황이다. 실제로 대만이 지난 한 해 거둔 경제 성적은 눈부시다. 11월29일 대만 경제부가 발표한 ‘최근 경제 정세 개황’에 따르면, 2022년 대만의 경제성장률 추정치는 3.7%로 세계 주요 국가 중 1위다. 싱가포르(3.3%), 유럽연합(3.2%), 중국(3%), 한국(2.5%)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전 세계 평균치는 2.9%였다. 대만이 최고의 경제 성적표를 얻은 이유는 견고한 수출 증가세 덕분이었다. 2022년 1~10월 대만의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 증가해 중국보다 높았다.

물가상승률은 더욱 놀라왔다. 2022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국제 공급망이 경색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런데 대만은 2%대 중반부터 3%대 중반의 안정적인 물가상승률을 유지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저성장을 기록 중인 일본조차 9월부터 3%대에 진입했고, 11월에는 40년 만에 최고치인 3.7%에 달했다. 대만의 이런 성과에 고무된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의 1인당 GDP가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빈말이 아니듯, 10월 IMF(국제통화기금)은 2022년 대만의 1인당 GDP를 한국(3만3592달러)보다 높은 3만5513달러로 전망했다.

대만 정부는 2023년 경제성장률을 2.75%로 예상했다. 이는 한국의 전망치인 0.9%보다 훨씬 높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 언론은 대만 경제를 흡사 ‘용비어천가’처럼 칭송했다. 게다가 2022년의 국제 정세 또한 차이잉원 총통과 민진당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8월2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다. 1997년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 만에 대만을 찾은 미국의 최고위 지도자였다. 10월10일 대만의 건국기념일 기념행사에는 미국의 축하 의원단이 대규모로 참석했다. 11월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친대만 성향의 의원이 대부분 당선됐다.

2022년 12월23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3년부터 5년에 걸쳐 대만에 100억 달러를 융자 형식으로 지원해 미국산 무기 구입에 사용하도록 하는 국방수권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대만은 미국에서 돈을 빌려 미제 무기를 살 수 있게 됐다. 동맹국과 똑같은 군사 원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2022년은 차이 총통과 민진당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내외 환경이 조성됐다. 그런데도 11월의 지방선거와 12월의 여론조사는 정반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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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2022년 11월26일 민진당 당위원장직을 사임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AP 연합

“反中만으로 대만 보호할 수 없음 깨달아”

첫째, 경제가 수치상으로는 최고이나 밑바닥 민생은 최악이다. 2022년 1인당 GDP를 3만5513달러로 예상하지만, 대만에서 이 정도 연봉을 받는 월급쟁이는 IT산업에서 일하는 소수다. 대부분의 젊은이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대만에서 대졸자의 초임 월급은 3만 대만달러(약 123만원)가 일반적이고, 많이 받으면 4만 대만달러(약 165만원) 정도다. 게다가 2022년 최저임금은 월 2만5250 대만달러(약 104만원)에 불과했다. 대만의 양극화가 한국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얘기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이 부동산 폭등에 시달렸지만, 대만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부터 6대 직할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했다. 2021년 타이베이의 봉급생활자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6.2배로, 서울의 14.1배보다 높았다. 타이베이의 부동산 평균 가격은 서울보다 더 높고, 2022년에도 거품은 꺼질 기미가 없었다.

둘째, 대만의 먹거리가 싸긴 하지만 그 속은 싸구려로 채워져 있다. 대중식당들은 열악한 환경 아래 질 낮은 식재료와 조미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대만에서는 잊을 만하면 식품안전 사고가 터지고 있다. 먹거리 물가가 저렴한 이유는 대만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됐다. 금세기 들어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대만 기업들은 앞다퉈 대륙으로 몰려가 투자했다. 대만 정부는 자국에 남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유지해 주기 위해 임금과 물가를 계속 억제하는 정책을 써왔다. 이러한 희생 전가는 차이잉원 총통의 통치 아래서도 개선되지 않았다.

셋째, 대만인들은 차이 총통과 민진당의 반중(反中) 일변도 행보에 큰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차이 총통은 반중의 최대 수혜자였다. 2019년 상반기 지지율이 밑바닥이었지만, 홍콩에서 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서 ‘중국 위협론’을 부각시켜 2020년 1월 총통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고 2021년에는 중국 당국이 대만의 백신 구입을 방해하면서 반중 분위기가 지속됐다. 하지만 2022년 중국과의 전쟁 위험이 고조되자, 대만인들은 차이 총통의 ‘묻지마 반중’으로 인해 대만이 전쟁터가 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와 우려가 지방선거와 여론조사를 통해 분출됐던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이 많이 살고 민진당 지지율이 높았던 신주, 타오위안 등에서도 민진당은 참패했다. 대만 내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동소이하다. 왕쿤이 대만국제전략학회 이사장은 “지방선거 결과는 유권자들이 차이잉원 정부를 벌주려 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자오춘산 담강대 명예교수는 “민진당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불만이 중국 위협 우려를 압도했다”며 “젊은 층은 이제 ‘중국에 대한 저항만으로 대만을 보호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분석했다.

지방선거 이후 대만의 대표적 IT기업 중 하나인 폭스콘 간부로 근무하는 리웨이(가명)가 필자에게 건넨 말도 의미심장하다. 리는 “현재 대만 경제가 호황을 누리지만 이는 TSMC로 대표되는 반도체 산업과 대형 IT기업들이 전례 없는 특수를 만나 기록적인 실적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과의 과실은 소수에게만 돌아가고 실생활에서 피부로 와닿는 민생의 개선은 이뤄지지 않으니 젊은 층이 분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현재 대만에서 전개되는 정국은 국제 경제 전선에서 대만과 경쟁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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