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격앙시킨 中 정찰풍선의 정체, 핵전쟁 연습용?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0 15: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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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인 척 기구 띄워보내 美 방공 능력 떠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돼
미국의 ICBM 전력 염탐했을 가능성도 제기

왜 중국은 민감한 시기에 정찰 기구(스파이 기구)를 미국 영공에 보내 화를 자초했을까. 애초 풍선 모양의 이 기구가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던 미국은 왜 격추와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방중의 전격 취소라는 강공에 나섰을까. 2월1일 미 몬태나주 상공에서 육안으로 발견돼 5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에서 일어난중국 기구 격추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글로벌 인공위성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중국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기구로 미 영공을 침범한 것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스테이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1월1일 기준 지구궤도에는 모두 4852개 위성이 떠있으며 이 가운데 중국이 보유한 위성이 499개로 2944개인 미국 다음이다. 일본의 207개나 러시아의 169개보다 많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132개 군사위성을 운용한다. 군사위성은 정찰·적외선탐지 정찰, 전자신호 수집, 항행 감시, 군사용 통신·항법·기상관측·측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연합뉴스
미 해군이 2월5일 대서양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비치 해안에서 격추된 중국의 정찰풍선을 회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펠러 정착돼, 가고 싶은 곳 이동 가능”

군사위성은 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격납고나 전략폭격기가 출격하는 군사비행장의 동태, 재래식 전력의 이동·배치·전개를 감시해 전쟁 위험을 조기 경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문제는 주요국들이 인공위성 요격무기 경쟁에 나서면서 기구처럼 유사시 인공위성을 대신할 ‘로테크’ 정찰 도구의 수요가 새삼스럽게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2007년 1월 수명이 끝난 기상위성을 미사일로 제거하는 시험에 성공했다. 미국과 소련(러시아)은 냉전 시기인 1980년대에 이런 시험을 했지만, 미국은 2008년 2월 수명을 다한 정찰위성을 대상으로 다시 요격 시험을 실시해 성공했다. 러시아는 두 차례의 실패 끝에 2015년 11월 시험에 성공했으며, 인도도 2019년 3월 300km 상공의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요격했다. 

미 CNBC는 2월6일 중국 정찰 기구의 미국 영공 침범이 2017년 이후 이번이 다섯 번째라고 보도하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다. 기구를 둘러싼 미·중 대결이 확인된 셈이다. 미 CBS·ABC방송과 AP통신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의 기구가 가깝게는 미국 땅인 괌과 하와이, 멀리는 플로리다 등으로 날아왔다가 다시 돌아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세 차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이번이 두 번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당시 북미방공사령부(NORAD)도 기구의 영공 침범을 탐지하지 못했으며, 나중에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처럼 중국의 기구가 일본 북동쪽과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미 영토인 알류산열도부터 본토 동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까지 날아다닌 적은 없었기 때문에 미 정치권은 더욱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찰 기구의 제원을 살펴보면 중국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측 발표에 따르면 이 기구의 직경은 27m로 통상적인 기상관측 기구의 6m보다 4배가 컸다. 중국 외교부는 이 기구의 조종 능력이 제한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월7일 폭스비즈니스에 “프로펠러가 장착돼 (가고 싶은 곳으로) 기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숨은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2월6일, 중국의 국영 방산기술저널이 지난해 4월 “(기구를 통해) 적이 방공 시스템을 가동하도록 유도한 뒤 전자정찰과 조기경보, 그리고 작전수행 능력을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기구를 활용해 큰 분란이나 비용 지출 없이 미국의 방공 능력을 떠보겠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한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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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찰풍선’이 2월4일(현지시간) 미국 전투기에 격추 당한 뒤 바다로 떨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미 핵무기 배치된 공군기지 정보 수집할 수도”

사실 기구는 냉전 시대부터 미국과 소련에 의해 활용됐는데, 현재 인공위성과 드론의 발달로 기구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단지 생산·운용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 때문에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기계공학 전문지인 ‘포퓰러 메카닉스’에 따르면 미국도 2019년 콜드스타(성층권 장기 체류용 비밀 구조물을 의미)라는 이름의 군사용 기구 개발에 비밀리에 착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북한 핵무기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버몬트주 미들베리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의도를 더욱 적나라하게 분석했다. 루이스 교수는 펜실베이니아 일간지인 인텔리전스에 “중국 기구가 미국 핵무기가 배치된 몬태나주 맘스트롬 공군기지 상공에 머물며 관측할 경우 위성보다 훨씬 자세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맘스트롬 공군기지에는 150기 정도의 미니트맨Ⅱ ICBM이 지하 격납고에서 발사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핵전쟁은 지상에선 루이지애나주 바크스데일에 있는 미 공군지구권타격사령부(AFGSC)가 담당한다. 406기의 ICBM과 178대의 B-1B, B-2A, B-52H 전략폭격기를 운용하는 핵전쟁 사령부다. AFGSC 휘하의 제20공군은 와이오밍주 프랜시스 워런 공군기지에 배치돼 모두 341기의 ICBM을 운용하는 산하 제90, 제91, 그리고 제341 등 3개 미사일 비행단을 지휘한다. 

중국 정찰 기구가 처음 목격된 몬태나주에 바로 제341 미사일 비행단이 ICBM을 운용하는 맘스트롬 공군기지가 있다. 맘스트롬에 있는 미니트맨Ⅱ ICBM은 북한이 ICBM으로 미 본토를 공격할 경우 즉각 보복 공격을 가하는 데 동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중국·대북한 핵 억지력의 핵심 전력이 맘스트롬 공군기지에 자리 잡은 것이다.

중국이 정찰 기구를 통해 미국을 상대로 핵전쟁 연습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는 핵무기 격납고를 인공위성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관측하면서 미국의 ICBM 전력을 염탐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유사시 인공위성 전력이 요격돼 정보 수집 기능이 제한될 경우 은밀히 배치해둔 정찰 기구를 이용해 선공이나 반격을 위한 정보 수집과 이를 전송하는 핵전쟁 연습을 했을 경우다. 미국이 기구 하나에 초강수를 두는 배경에도, 중국이 황당할 정도로 시치미를 떼는 배경에도 비상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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