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한에 돈을 송금한 구체적인 경위가 담긴 공소장이 공개됐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당시 경기지사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기 전 경기도 측과 상의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 그가 조성한 비자금 592억원 중 일부가 북한에 전달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비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는 검찰이 추가로 밝혀야할 숙제다.
법무부가 최근 기동민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김 전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김 전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액수를 총 592억원으로 적시했다. 김 전 회장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와 북한에 800만 달러(약 98억원)가량을 밀반출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을 받는다.
공소장에는 김 전 회장이 2019~2020년 대규모 비자금을 조성한 과정이 상세히 담겼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자신의 매제인 전 쌍방울그룹 재경총괄본부장 김아무개씨 등과 함께 임직원 명의로 만든 페이퍼컴퍼니(SPC) 5곳에서 538억원 상당을 빼돌렸다고 적시했다. 김 전 회장 등은 주로 이들 회사가 업무상 보유 중이던 자금을 대표이사 단기대여금 명목으로 인출한 뒤 출처를 알 수 없도록 수차례 수표로 교환하거나 현금화한 뒤 여러 계좌를 거쳐 다른 법인에 송금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김 전 회장이 이런 방식으로 빼돌린 돈을 개인 채무 변제금이나 주식 거래대금, 유흥비 등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회사 등 명의의 채무변제 및 고리 이자대금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그밖에도 김 전 회장은 페이퍼컴퍼니에 부당하게 자금을 지원하며 광림에 11억원의 손해를 입히고, 쌍방울그룹 계열사 4곳에 지인 10명을 허위 직원으로 등재해 급여 등 명목으로 13억원을 빼돌리는 등 43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비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는 공소장에 담기지 않았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개인 용도로 사용한 비자금 중 일부를 대북 송금에 활용한 것으로 보고, 전날 구속된 전 재경총괄본부장 김씨 등을 통해 용처를 확인해갈 방침이다. 수원지법 김경록 영장전담 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날 김씨가 "성실하게 조사받겠다"는 입장을 전하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불출석함에 따라, 김씨를 포함한 김 전 회장 측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 전 회장이 비자금 일부를 경기도를 대신해 북측에 밀반출하기 전에 경기도 측과 사전 협의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공소장에는 김 전 회장이 경기도의 북측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 달러와 이 대표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를 대납하는 등 총 800만 달러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적혔다. 2019년 7월 필리핀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석한 북한측 인사들이 "경기도가 계속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을 요청하는데 성사하려면 3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김 전 회장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후 김 회장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 경기도 관계자들과 대납 방안을 상의한 후 실행에 옮겼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또 김 전 회장이 경기도의 북측 스마트팜 사업 비용을 대납하기 전 이 전 부지사 측의 요청이 먼저 있었다고 봤다.
공소장에 이 대표가 공범으로 적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이 대표 측과의 상의 후 북한에 돈을 전달했다고 보고, 이 대표에 대한 제3자 뇌물죄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의혹에 대해 이 대표는 앞서 "검찰의 소설"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또 외국환거래법 위반 공소장에 '경기도 관계자'라는 표현을 두 차례 쓰면서, 추가 공범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이 대표는 앞서 "검찰의 소설"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이 전 부지사 또한 "경기도를 위해 쌍방울이 북한에 금전을 보낼 이유가 없다"며 "완전한 허구"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대북 송금 비용을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대여한 뒤 변제했고, 빌린 돈은 업무 목적으로만 사용했다며 이런 혐의 중 일부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