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당파성이 타고난 운명이라도 되나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3.02.24 17: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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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6일, 4년 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 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서울고검 검사 변창훈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투신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다. 사흘 후에 열린 국회 법사위에선 여러 야당 의원이 수사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조응천과 금태섭이 그런 발언을 했다. 금태섭의 당시 발언을 들어보자.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방해한 부분을 그때 수사를 방해받았다는 검사들이 바로 다시 수사하는 것은 여당 의원인 제가 봐도 안 맞는 것 같아요. 외부에서 보더라도 누가 신뢰를 하겠습니까. …누가 수사할 건지 어떤 수사팀이 담당할 건지를 당사자인 서울중앙지검장(윤석열)이 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사 절차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적인 의견임에도 금태섭과 조응천의 발언에 청와대가 격분했다고 한다. 다음 날 민주당 의원 박범계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금태섭과 조응천이 검사 출신이라 그렇다는 인신공격을 하면서 “수사를 방해받은… 그 팀이 오히려 더 이 사법 방해를 수사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는 그러한 법리도 있습니다”라는 이상한 주장을 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금태섭은 최근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윤석열 검사를 극구 찬양하고 피해자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를 담당하는 것이 정의를 회복하는 관점에서 맞는다는 희한한 주장을 했던 박범계 의원은 나중에 법무부 장관이 돼 윤석열 검찰총장과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사건건 진흙탕 싸움을 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박범계를 비판하기 위해 이 이야길 꺼낸 건 아니다. 당파성에 관한 이야길 하기 위해 사례를 들다 보니 당파성이 비교적 강한 박범계가 우연히 걸려들었을 뿐이다. 나는 나중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여야를 막론하고 지나치다 싶은 당파적 발언들을 늘 수집하고 있는데, 내가 최근에 가장 놀란 것도 박범계의 발언이었다.

“영장 자판기라 비판을 받는 김ㅅㅇ 부장판사도 외면한 한동훈 장관의 연이은 패착!” 2022년 12월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원이 한동훈 아파트를 침입한 더탐사 관계자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는 언론 기사를 공유하면서 쓴 글이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최측근인 김용과 정진상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이유로 영장전담판사에 대해 ‘영장 자판기’라는 모욕을 가한 것인데, 이래도 되나? 9년간 판사로 일했고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현직 국회의원이 그런 식으로 법관을 모독해도 괜찮나? 더탐사 구속영장 기각을 보면서 ‘영장 자판기’라고 여겼던 자신의 생각을 교정할 수도 있겠건만, 당파성에 눈이 멀면 그런 최소한의 이성조차 마비되는 건가?

아니 어쩌면 ‘당파성 중독’을 부추기는 정당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미국 정치학자는 “(한때) 남부에서 민주당은 전혀 정당이 아니었고, 공직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 파벌의 집합체였다”고 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오늘날의 정당에 대한 가장 적확한 설명이 아닐까? 정당은 공직을 얻기 위한 다양한 파벌의 집합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 게 옳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실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면 정당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당파적 행태들에 관한 수수께끼가 쉽게 풀린다. 그럼에도 한가닥 희망을 포기할 순 없어서 정색을 하고 이렇게 물어보련다. “당파성이 당신의 타고난 운명이라도 되나요?” 당파성이 자신의 운명은 아니라는 것만 인정해도 최소한의 역지사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하는 질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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