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이재성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2 11:0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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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에서 주연으로 도약한 이재성, 후반기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 기록
최종 목표인 EPL 도전 준비 착착…소속팀 마인츠는 “제발 잔류해 달라”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2018년 여름 이재성은 독일 프로축구 2부 리그인 2.분데스리가의 홀슈타인 킬로 이적했다. 당시 이재성은 전북 현대 소속으로 K리그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었다. 2017년 전북의 통산 5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며 MVP를 수상한 그는 국가대표팀에도 꾸준히 발탁되며 월드컵 무대까지 나아갔다. 그런 승승장구 이면에는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고민이 있었다. 이미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경험하며 아시아권에서는 더 이룰 목표가 없었던 이재성의 다음 목표는 유럽 진출이었다.

2년 넘게 꾸준히 유럽 무대를 노크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하고, 많은 활동량에 수준급 축구 센스를 지녔지만 화려한 플레이와 폭발적인 득점력이 부족하다는 게 이재성에 대한 대체적 평가였다. 유럽 1부 리그 팀들은 협상 막바지에 관심을 접는 경우가 다수였다. 러시아월드컵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결국 택한 길은 2부 리그에서라도 기량을 증명해 1부 리그로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많은 이는 회의적이었다. 2부 리그에서 출발하면 하부 리그 선수 이미지가 굳어져 탈출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많았다. 게다가 홀슈타인 킬은 당시 2부 리그 상위권에 있었지만 클럽 규모가 작았다. 이재성을 영입하며 쓴 90만 유로(약 13억원)가 팀 역사상 최고 이적료였을 정도다.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인 킬에는 교민도 거의 없어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의 주전 미드필더 이재성 ⓒAFP 연합

이재성 활약 덕에 마인츠도 강등권에서 완전 탈출

홀슈타인 킬 소속으로 3시즌을 보내며 40개가 넘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이재성은 독일 2부 리그에서 손꼽히는 미드필더가 됐다. 그러나 계획했던 1부 리그 진입은 역시 쉽지 않았다.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무릎 꿇었다. 이재성에게 관심을 보인 유럽 내 1부 리그 팀들로의 이적도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킬과의 3년 계약이 종료된 2021년 여름 이재성은 분데스리가 중위권 팀인 마인츠로 이적하며 드디어 1부 리그로 진입했다.

유럽파로서 5번째 시즌을 치르며 인고했던 이재성은 지금 드디어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승부를 결정짓는 해결사 역량까지 더하며 이제는 마인츠의 어엿한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2022 카타르월드컵이 긍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됐다.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에 절치부심의 자세로 임하며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 자신감을 앞세워 후반기에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17라운드 도르트문트전에서 헤더 선제골을 기록했고, 이어진 18라운드 보훔전에서는 경기 시작 44초 만에 골을 넣으며 2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20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는 마인츠 입단 후 첫 멀티골을 성공시켰다. 21라운드 레버쿠젠전에서는 도움을 올렸고, 22라운드 묀헨글라드바흐전에서는 헤더 골 포함해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한 달 사이 무려 5득점 2도움을 기록하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후반기 들어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가 됐다. 7득점 3도움으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팀 내 공격 포인트 1위도 이재성의 차지가 됐다.

이재성 덕분에 팀도 순항 중이다. 월드컵 휴식기 전 강등권과 승점 4점 차밖에 나지 않았던 마인츠는 이재성의 활약 속에 후반기 8경기에서 5승1무2패를 기록하며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최근 4연승으로 리그 7위를 기록 중이다. 강등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리그 5·6위에 주어지는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넘보게 되었다. 6위인 아인트라흐 프랑크푸르트와는 3월9일 현재 승점 4점 차다.

 

영국 언론 “박지성 연상케 하는 에너지 넘치는 공격형 MF”

미드필더임에도 공격수를 능가하는 득점력을 자랑하는 이재성을 향한 독일 현지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축구 전문지 ‘11프로인트’는 “마인츠의 갑작스러운 상승세에는 이재성의 역할이 크다. 스벤손 감독은 아주 강렬한 스타일을 추구한다. 팀원 전체가 경기당 평균 116.45km를 뛰고 인터셉트도 경기당 13.6회로 독일 분데스리가 팀 중 가장 많다. 그런 가운데 마인츠 선수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이고 많이 뛰는 이재성은 스벤손 감독 축구에 딱 맞는다”고 분석했다.

스벤손 감독은 당초 전북 현대에서 활약 중인 국가대표 공격수 조규성을 영입해 전방에 세우려 했지만, 실패한 후 프랑스 국적의 뤼도비크 아조르케를 영입했다. 196cm의 장신 공격수인 아조르케는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공 소유권을 가져와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때 공격 진영에서 많은 영역을 커버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이재성에게 찬스가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마인츠는 새로운 에이스의 활약에 기뻐하지만 문제는 이재성의 거취다. 2021년 여름 마인츠와 3년 계약을 맺은 이재성은 내년 여름이면 계약이 종료된다. 유럽 축구는 계약 종료 1년을 남겨놓고 재계약과 이적의 갈림길에 선다. 독일 최고 권위의 축구 전문지 ‘키커’는 “마인츠가 이재성과의 재계약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슈포르트1’은 “이재성 없는 마인츠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스벤손 감독의 발언을 빌려 팀에 이재성의 잔류와 재계약이 얼마나 절실한지 소개했다.

이재성은 이적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1992년생으로 서른 살이 넘은 이재성은 올 여름의 거취가 유럽 커리어에서 마지막 큰 계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인츠와 재계약하든, 팀을 옮기든 향후 3~4년가량이 유럽 무대에서 현재 기량을 발휘할 마지막 타이밍이다. 그 시점에 이재성은 자신의 꿈을 향한 도전을 원한다. 바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진출이다.

5년 전 유럽 무대로 올 당시 이재성은 단계를 밟아 올라가 프리미어리그까지 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때마침 프리미어리그 측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런던을 연고로 하는 크리스털 팰리스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도 이재성에게 관심을 보였던 팀이다. 영국 언론들도 최근 이재성을 “박지성을 연상케 하는 날쌔고 에너지 넘치는 공격형 미드필더”라며 즉시 전력감으로 홍보 중이다. 이재성의 유럽 에이전트인 ‘유니크 스포츠 그룹’이 리스 제임스(첼시), 아론 완비사카(맨유), 앤서니 고든(뉴캐슬)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유명 선수를 보유한 영국 회사라는 점도 메리트가 크다.

이제 급한 쪽은 마인츠다. 이재성의 높아진 가치를 인정해 현재보다 많은 연봉을 제시하는 재계약이 잔류의 열쇠다. 그러나 마인츠는 분데스리가에서도 중하위권 규모 클럽이다. 프리미어리그 강등권 팀보다 연봉 수준이 떨어진다. 변수는 올 시즌 마인츠가 유로파리그 같은 클럽대항전 출전권을 얻을 경우다. 자신이 이룬 특별한 성과를 직접 누리고 싶다는 쪽에 매력을 갖고 잔류하거나, 재계약을 택할 수 있다.

마인츠의 마르틴 슈미트 단장은 “이재성과 계속 함께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며 재계약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빌트’는 “설령 재계약을 못 해 내년 여름 자유계약으로 풀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마인츠는 이재성과 동행할 것이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적료 수입을 포기하더라도 잡아야 할 정도로 대체 불가능한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재성은 마인츠 구단 선정 2월의 선수를 수상한 데 이어 분데스리가 사무국이 선정하는 2월의 선수 후보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모두의 반대와 우려를 뒤로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은 지난 5년의 시간이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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