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신화가 된 노무현의 죽음, 사실로 되돌려 놔야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7 08:05
  • 호수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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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전 검사가 최근 쓴 책의 부제는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가 죽이지 않았다. 스스로 죽었다. 노무현 죽음의 책임자는 본인이다.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사건은 ‘본인 책임 아래 자살’이란 사실이 자명한데도 오랜 세월 동안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공공연히 얘기하길 꺼렸다. 자살 대신 예를 표하듯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했다.

3월22일 오전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이 진열돼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3월22일 오전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이 진열돼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자살, 힘든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지여선 안 돼”

극단적 선택이라는 우회적이고 완곡한 어법은 본의는 아니겠지만 “자살을 마치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가능성…선택지의 하나인 것처럼(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 호도하는 효과가 있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자살을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하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곤란하다. 어떤 한 시기에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 국가 최고권력을 행사했으며 역사 기록에도 영원히 남을 대통령은 국민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결코 보여서는 안 될 금지 행위 목록 1번에 자살을 올려놔야 하지 않을까. 일반인도 그렇지만 특히 국가 지도자의 자살 금지 의식과 문화적 기풍은 인간윤리나 사회교육적 관점에서 더 엄중히 요청되어야 한다.

전대미문의 대통령 자살은 그 전에도 후에도 실체적·이성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적었다. 그보다 정치적·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죽음의 원인이나 책임에 관해서는 지인·측근·친척·가족이 저질렀던 부적절한 금전거래와 이에 대한 대통령의 관련 여부 같은 문제가 사실적으로 확인되고 사법적으로 판단받아 후세에 기록으로 남겨져야 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노무현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어졌으니 그를 기소하지도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자(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라는 당시의 주장은 현실 무대에서 노무현의 흔적을 빨리 지우기 위해 사실관계는 따지지 말자는 정치적 처리법이었다.

방향은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의제들이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마지막 승부수는 남아있다(한겨레)”라거나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경향신문)”과 같은 글들이다. 한겨레·경향신문 칼럼의 정치적·문학적 과잉 표현들은 후에 노무현 죽음의 책임론으로 번지기도 했으니 글 쓰는 사람으로서 경계하게 된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그와 관련된 금전거래 문제는 아예 성역처럼 묻혀 버렸다. 대신 그 전까지 폐족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던 이른바 진보세력이 한순간 반전과 재집권의 기회를 잡았다.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슬픔을 검찰에 대한 분노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노무현 자살의 자기 책임론은 희석되고 검찰 책임, 보수정권의 정치적 타살 같은 외부 책임론이 지배적 담론으로 확립되었다.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검사가 보수파 정권이 들어서자 지배적 담론 뒤집기를 시도한 것은 정치적으로 영리한 일일 수 있다. 정치적 계산이야 어떻든 이를 계기로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논의가 좀 더 공정하고 사실에 근거하며 생명 존중의 윤리적 기반 위에서 전개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사실에 대한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신화”

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살했기에 검찰과 당시 정권의 책임론이 나온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일방 책임론이 과잉 정치화되어 자살 자체에 대한 인륜적 비판, 권력 부패의 실체 문제가 증발한 것은 유감이다.

“사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신화”라는 말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도 있고 과도 있는 역사 속 정치인이다. ‘노무현 신화’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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